우리가 겪는 어려움 중 사람과의 관계 문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서로가 너무 달라 각자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자주 생기지요. 똑같은 현상도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고,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느끼니까요. 그런데 인간은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려는 본능이 있어요. 이 본능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과 다름이 엮이며 갈등과 고민이 계속 늘어나게 됩니다.
취업, 결혼, 출산 같은 중요한 일들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깊은 연결고리를 만들어 냅니다. 직장 동료, 새로운 가족, 아이, 그리고 아이의 친구 부모들까지 관계가 가지를 치며 확장됩니다. 문제는 이 모든 관계가 항상 순조롭지만은 않다는 거예요.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면, 마치 나뭇가지가 뒤엉켜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스스로 정체될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내고, 건강한 가지가 자랄 여유를 주는 일종의 '관계 가지치기'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외향적인 HSP(Highly Sensitive Person)의 관계는 조금 복잡해요. 외향적 HSP는 깊이 느끼고 감정을 다루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람들과의 교류를 즐기지만, 그 과정에서 쉽게 피로를 느낄 수 있죠. 외향성과 민감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이들은 관계를 넓히려 할수록 과부하에 시달릴 위험이 큽니다. 관계가 많을수록 정신적으로 더 충만해진다는 알고 있는 외향인의 통념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어요.
사실 외향적 HSP에게 관계의 폭을 넓히는 것은 달콤한 유혹과도 같습니다. 마치 불에 타 죽을것을 모른채 불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과 처럼요. 새로움을 통해 충만함을 느낄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와 피로는 더 깊어지니까요. 때로는 관계의 단순함이 오히려 내면에 평온과 명료함을 가져다준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관계를 가지치기하고 단순하게 만들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유로움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으니까요.
민감한 외향인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단순함과 경계 설정의 명확성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연결을 즐기지만, 지나치게 많은 요구에 쉽게 휩쓸리곤 하니까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신념으로 타인의 요구에 쉽게 양보하고 배려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기 주장을 포기하거나 상대의 의견에 휘둘리기도 하잖아요.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은 민감한 사람들이 겪는 이같은 어려움의 원인을 경계의 불분명함으로 꼽았습니다. 우리는 관계에서 경계를 확실하게 만드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버릴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영리함이 필요한 것이죠.
외향적 HSP는 자신을 둘러싼 관계 환경을 끊임없이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의 에너지는 한정적이기에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관계를 줄이고 양질의 관계를 남겨야 하는 것이죠. HSP는 부정적인 감정에 쉽게 영향을 받지만, 동시에 긍정적인 감정에도 쉽게 고양됩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만 남겨 놓으면 에너지가 큰 폭으로 상승할 수 있어요. 마치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 물건을 정리하듯, 인간관계 역시 불필요한 관계를 줄여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렇다고 관계를 무조건 끊어내라는 말은 아닙니다.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죠. 집안을 정리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버리기’인 것처럼, 관계에서도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야 여유가 생깁니다.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지만 쓰지 않는 물건을 과감히 버리듯, 관계에서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의미 없는 관계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필요할 때 자신에게 연락만 하는 사람, 혹은 지속적으로 에너지만 소모시키는 사람들을 걸러내는 데 도움을 줍니다.
특히 에너지를 앗아가는 ‘뱀파이어’ 같은 사람들은 경계의 대상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감정을 소모시키고 심리적 안정감을 해칩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관계를 정리하고, 함께 있을 때 긍정적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향적 HSP는 주변의 감정에 민감하기 때문에, 긍정의 에너지도 더 잘 흡수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긍정의 감정을 받으며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양질의 관계로 주위를 가꾸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버리기 어려운 관계일 때 발생합니다. 우리 인생의 큰 이벤트로 인해 형성된 관계들, 예를 들어 취업, 결혼, 출산 등으로 연결된 관계들은 정리하기 쉽지 않지요. 가정을 유지하고, 자녀를 돌보며, 직장에서도 역할을 다 해야 하니까요.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정신적 피난처'입니다. 집을 정리할 때 중요하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보관하는 것처럼, 마음의 피난처를 마련해 자신의 중요한 감정을 보호하는 것이죠.
피난처는 꼭 눈에 보이는 물리적 장소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활동들이 큰 도움을 줄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산책을 하거나 글을 써보는 일, 명상을 하는 활동들이 정신적 피난처가 되어 내면의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루 중 특정한 시간을 정해 자신만의 피난처에서 에너지를 회복하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전쟁터 같은 회사를 퇴근해 가정으로 돌아왔을 때, 집이 나만의 피난처가 되면 가장 이상적이겠지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아이가 어리거나 힘든 양육 상황일 때, 가정마저 전쟁터처럼 느껴질 수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 HSP는 번아웃에 노출되기 쉬워요. 외부 환경이 언제든 바뀔 수 있기에, 나만의 정신적 피난처를 갖추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감정을 보호하고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관계를 단순화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과의 교류를 끊는 것이 아니예요. 소중한 사람들과 더욱 진실된 관계를 맺기 위해 불필요한 관계에서 에너지를 절약하는 일이죠. 관계의 단순함을 통해 절약된 에너지로 내면의 힘을 키우고, 자신의 가치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내향적인 시간을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들숨과 날숨이 번갈아 가며 조화를 이뤄야 몸이 안정되는 것처럼 외향과 내향은 한쪽으로 치우치는 게 아니라 균형을 가질 때 에너지도 안정되는 것이죠.
관계의 단순화와 정신적 피난처 마련은 외향적인 HSP에게 필수적이지만 도전적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사람을 구분하고 자신에게 맞는 관계로 선택하기 위한 안목이 필요하니까요. 이 안목은 나 자신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때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관계에 끌려다니기보다 자신의 내면을 더 단단하게 지키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도 가져보자고요. 버려낼수록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선명해지고,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으니까요. 불필요한 관계를 알아차리고 버리면 버릴수록, 우리는 자신을 더 신뢰하고 단단하게 성장시킬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