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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유 Oct 26. 2024

만족을 대행하는 중입니다.

나는 왜 쉽게 지칠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장작처럼 열정이 활활 타올라 무언가를 하다가 식어갈 때쯤 문득 드는 생각입니다. 열심과 노력만으로 보장되지 않는 순간을 마주하며 공허함을 느끼곤 하죠. 노력하는 만큼 되는 일이 없다고 느껴질 때, “그만하자”는 말은 깔끔한 포기가 아닌 찝찝한 후퇴의 기분을 남깁니다. 자신에 대한 무능함, 무가치만을 확인하면서 만족스럽지 못하게 여겨집니다. 번아웃 혹은 우울 증상으로 이어지는 모습이지요.   

 

만족(滿足, satisfaction)은 어떤 욕구가 충족되어 마음이 가득 찬 상태를 말해요. 사전적으로는 '바라는 것이 이루어져 흡족한 상태' 또는 '부족함이 없이 충분한 상태'로 정의됩니다. 심리학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욕구나 기대가 충족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적 반응을 말해요. 만족은 긍정적인 정서입니다. 사람들은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심리적 만족을 느끼고, 이로 인해 삶의 전반적인 행복감이 상승합니다. 인간의 에너지가 충전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행복감에 있어요. 행복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야 하는 이유지요. 수시로 채워지는 만족은 행복을 위한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어요. 우리는 이 만족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요?


자신의 욕구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제대로, 그리고 스스로 알아차리는 게 쉽지 않아요. 특히 인간관계에서는 상대의 욕구와 내 욕구가 뒤엉켜 더 복잡해지죠. 가까운 관계일수록 선명하게 분별하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내가 느끼는 감정이 다른 사람의 감정이라고 느끼는 투사가 일어나기도 쉬운데, 심리학에서는 내가 감당하기 힘든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밀어낸다고 말합니다. 아무래도 가깝거나 편한 사람에게 내 감정을 던져 놓고 상대방의 것이라 착각하기가 편하니까요. 돋보기도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잘 보이는 것처럼 친밀한 관계일수록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 바라는 것이 선명해집니다.   

  

욕구와 기대의 기준이 뒤엉키기 가장 쉬운 친밀한 관계는 주로 부모-자녀관계 혹은 배우자와의 관계지요. 저는 아이와 관련된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열혈 엄마였어요. 회사를 그만뒀더니 마치 아이의 모든 것이 제 업무 성과처럼 느껴졌죠. 일하듯 아이를 관리했습니다. 특히 학업은 수치화되는 부분이 많아 당장 눈으로 성과가 확인되잖아요. 집중하기 더욱 좋았어요.

    

그러다 처음 부딪힌 난관은 아이가 내 마음 같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일은 계획하고 노력하면 성과가 나오는데 아이 학업은 그렇지 않더군요. 계획은 엄마가 대신할 수 있더라도 노력을 대신할 순 없으니까요. 그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아이가 답답했어요. 미안하게도 아이에게 이런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었고,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 불만을 품기 시작했어요. 당시에 아이를 통해 저의 욕망을 실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아이는 대리 만족의 대상이 아닌데 저도 모르게 가스라이팅한 것이죠.  

     

반면, 아이는 엄마에게 넘겨받은 욕구가 자신의 것이라 착각하고 살았어요.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컸습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잘해야 한다.’, ‘칭찬받고 싶다.’는 인정 욕구로 이어져 자신을 몰아세우게 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이는 엄마의 욕망 실현을 위해 강제 동원된 희생양이었어요. 오로지 엄마의 인정과 칭찬만을 갈망하며 대리 만족을 대행하는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죠. 그 끝은 아이의 학습무기력. 결국 번아웃이 왔어요.

   

지금 정신적으로 자주 지치는 경험 중이라면, 우리가 하는 행위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점검해봐야 해요. 나를 위한 일이라고 믿고 있던 것들이 의외로 다른 사람의 욕망을 해결해 주기 위한 수단일 때가 많거든요. 가장 많이 헷갈릴 때는 ‘인정 욕구’가 뒤섞일 때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기본적으로 있지요. 인정을 통해 얻는 만족감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로지 인정을 통한 만족감에만 집착할 때 생깁니다. 어느 순간 나의 만족이 아닌, 오로지 다른 사람의 만족만을 위해 고군분투 하는 역전 현상이 발생하죠.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은 끊임없이 그 사람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의 에너지를 빼서 다른 사람을 채워줘야만 해요.


HSP(Highly Sensitive Person)는 인정 자체를 더 민감하게 해석할 가능성이 커요. 다른 사람의 반응이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깊게 받아들이기 쉬운 특성 때문이죠. 일레인 아론은 그의 저서에서 HSP는 긍정이든 부정이든 피드백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설명합니다. 긍정 피드백으로 크게 고양될 수 있고, 가벼운 부정 피드백으로도 크게 심리적 타격을 받는 것이죠. 여기에 인정 욕구까지 크다면 아마 다른 사람보다 에너지가 배로 소모되고 있을 거예요. 이 사실을 바로 알아차리고 잠시라도 멈출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게 됩니다.     


욕구의 소유자 구분하기  
   


HSP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쉽게 전이되는 경향이 있어요. 다른 사람과 나의 감정, 욕구가 뒤엉켜 어느 것이 진짜 내 감정이고 욕구인지 더욱 헷갈립니다. 그래서 HSP는 누구보다 감정과 욕구를 분명히 구분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본래 동물이 자신의 영역을 본능적으로 지키려 하잖아요. 개들이 길 가면서 수시로 영역 표시하는 것이 대표적이죠. 사람도 이런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 중 가장 본능에 가까운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우리가 어렸을 때 책상 가운데 선을 그어놓고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행위도 그러하니까요.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싶은 본능입니다. 이것이 사회화를 거쳐 나눠주고 공유하는 개념을 배워가는 것이죠. 내 욕구를 분명하게 알아차렸을 때 안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과 바라는 것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점검하려면 세상을 더욱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바라봐야 해요. 철저하게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죠. 누군가는 이런 시점이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HSP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태도예요. 이제는 좀 1인칭 시점으로 봐도 됩니다. 그동안 전적으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만 살았잖아요. 내 감정과 욕구가 뭔지, 이것부터 명확히 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세상을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면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연습이 충분히 선행되어야 합니다.  



만족의 주인공이 되는 연습
   


더 이상 누군가의 만족을 위해 대행하는 삶을 살지 않으려면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세상을 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먼저, 현재 자신이 느끼는 불안, 불편함, 혹은 심리적 무거움이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전이된 감정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합니다. 이 가능성을 열어두고 일종의 ‘감정 일지’를 작성해 봅니다. 하루 동안 겪었던 감정과 그 원인을 하나씩 기록하다 보면, 무엇이 진짜 나의 감정이고 무엇이 타인으로부터 유발된 감정인지 분별하기 쉬워지거든요. 중요한 것은 일어난 현상에만 초점 맞추지 않고, 경험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느꼈는지 구체적으로 탐색해 보는 것이죠. 감정에 대한 구분과 정의를 익숙하게 연습하면 욕구는 자연스럽게 드러나거든요. 욕구 자체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때, 감정은 좋은 이정표가 되어줍니다. 그러니 나의 감정을 따라가는 ‘감정 일지’에 집중해 보세요.     


칭찬과 인정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자신으로부터 얻어지는 만족감이 없으니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채워 완성하려는 것이죠. 그래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인 자신에 대한 신뢰예요. 스스로 자기를 믿고 인정하면 굳이 남들의 인정이 없어도 충분히 만족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듯이 누구나 좋아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얻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부단히 타인의 욕구와 기준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죠. 심지어 그 욕구와 기준은 일정하거나 고정되어 있지도 않아요. 대상마다 다르고, 그날의 분위기와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온통 다른 사람을 향해 에너지를 집중할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한다고 완전히 맞춰지는 것도 아니지만요.   

   

자기 신뢰를 쌓기 위한 첫걸음 작은 성공 경험을 만들어 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작은 성공이라도 거기서 오는 만족감을 경험해 보는 거예요. 만족은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니까요. 작은 성공 경험을 자주 느껴보는 겁니다. 작은 성공 경험일지라도 극적으로 느끼는 방법이 있어요. 경험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했고, 과정 중 어떻게 내가 바뀌었는지 글로 정리해 보는 거예요. 이번에는 이른바 ‘성공 일지’를 작성해 보는 거예요. 그리고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칭찬해 보는 연습을 하는 거죠. “이 일을 해낸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야.” 라고 외칠 수 있게끔 맹렬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인칭 주인공 시점입니다. 세상과 떨어져 관찰만 할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해요. '감정 일지', '성공 일지' 작성하는 일이 귀찮고 특별할 것 없어 보일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작은 움직임들이 쌓여 나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다른 사람 인정에 기대지 않고도 주도할 수 있는 자신감을 분명 만들어 줍니다. 우리의 성취와 행복을 다른 사람의 평가로 정의하지 않을 권리가 우리에게 있어요.      

HSP(Highly Sensitive Person)가 가진 다른 사람 감정을 쉽게 흡수하는 특성은 양날의 검과 같아요.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역량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지만,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면 나를 더욱 소모하게 만들죠. 다행히 칼자루를 넘겨주지는 않았군요. 칼날을 어느 방향으로 돌려 사용할지 우리가 분명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타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살아왔더라도, 이제는 나의 욕구에 관심 가져야 할 때예요. 더 이상 지치면 칼날을 돌릴 힘 마저 없어지니까요.


우리는 삶에서 지치는 이유와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당장 물음에 답하지 못할수 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만족을 대행해 주다가 지쳐가는 존재가 아님은 분명해요. 세상에 태어난 거창한 사명감은 없을지라도, 누군가의 마리오네트 인형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닐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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