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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유 Oct 27. 2024

다정함 높이기

나를 이해한 후에 오는 것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가 제일 많이 듣는 말은 무엇일까요?


엄마 뱃속에서부터 태명으로 불리기 시작해, 우리는 각자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죽더라도 세상에 남는 것은 자신의 ‘이름’이죠. 몸은 사라져 없어질지라도 ‘이름’은 그대로 남아 후대에 계속 알려지니까요. 그래서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가 생겼나 봅니다.       


이름은 단순히 누군가를 지칭하고 부르는 수단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존재를 나타내고, 대표하며, 정체성을 부여해 주는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처럼 아무 의미 없던 들풀의 한 송이 꽃도 누군가 이름을 붙여주었을 때 흔한 들꽃이 아닌 특별한 존재로 되살아나는 것처럼요. 이름을 정하고 불러주는 행위는 한 사람의 존재와 정체성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런 사실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나’라는 1인칭 대명사 대신, 자기 이름을 부르길 좋아하니까요. “찬우는 이걸 할래.” “미진이는 저걸 하고 싶어.”라는 식으로요. 스스로 이름을 부르며 자신이 세상에 존재함을 계속 각인시킵니다.

    

이름을 통한 관계의 확장     


이름은 어떻게 부르는지에 따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각기 다른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방식에 따라 어떻게 작용하는지 느껴본 적 있나요? 부르는 형태에 따라 차갑게 들릴 때도 있고, 반대로 아주 친근하거나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죠. 이름을 어떻게 부르는지에 대한 작은 디테일이 실제로 관계를 더 깊게 만들 수도, 멀어지게 하는데 이 사실을 종종 놓치곤 합니다.   

   

아이들이 서로 이름을 부르는 모습을 관찰하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앞에서 아이들은 이름을 통해 자기를 인식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름이 주변 사람들과 관계 맺기에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는 점이에요.     

 

하루는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주었을 때의 일입니다. 유치원 등원 시간에 늦어 이미 다른 아이들은 실외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죠. 준비하던 아이들은 딸을 보고 반갑게 외쳤습니다.


“김사랑!”

“김사랑!”


경쟁하듯 서로 딸 아이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는데 하나같이 풀네임으로 부르고 있었죠. 그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신기할 정도로 항상 서로의 성까지 붙여 이름 부르거든요. 풀네임 부르기는 조금 더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행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아직 무언가를 의도하거나 의미를 담아 표현하는 게 어려운 단계니까요.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 저의 경험이 떠올랐어요. 중학교 때였죠. 여전히 친구의 이름을 풀네임으로 부르는 습관이 있던 저는 친하게 지내던 친구로부터 불만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너는 왜 항상 성까지 붙여 내 이름을 불러? 안 친해 보여 싫어!”


분명 친하게 지내는 친구라 생각했는데 안 친하게 느껴진다고 하니 순간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는 더 가까운 관계로 발전하고 싶었던 욕구가 있었던 것이죠. 저에게 충분히 자기 의사도 밝혀 주었고요. 하지만 그 상황이 어색하고 미안해져 오히려 반대로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유치하게 행동한 것이죠. 더 크고 장난스럽게 친구의 풀네임을 불렀고, 결국 관계를 더이상 확장하지 못한 채 졸업 했습니다. 각각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계속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지만, 풀네임을 들을 때면 항상 그 친구가 생각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사람들의 이름을 풀네임으로 부르는 습관은 바뀌지 않았어요. 특히 처음 만난 사람들이나 공식적인 관계에서는 더욱 그랬죠. 다만 중학교 때 그 친구를 생각하며 친해진 사람에게는 의식적으로 성을 떼고 이름만 부르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깨달을 수 있었어요. 이름에서 성을 떼고 부르는 것이 다정함의 표현이자 관계의 진전을 의미한다는 것을요. 성을 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서로 더 친밀감을 느끼게 됨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이름을 부를 때는 잠시 멈춰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느낄 만한 이름은 무엇인지요. 상황에 따라 적절한 호칭을 선택하는 것이 관계를 더 따뜻하고 친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는 풀네임을 사용하지만, 친한 친구에게는 이름만을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죠. 누군가는 지금도 당연하게 하는 행동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섬세하게 느끼고 의식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주는 것은 작은 배려이지만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훌륭한 증거가 될 수 있어요. 이름은 그저 불리는 수단이 아니라, 관계에 다정함을 더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정함의 진정한 가치   


다정함에는 우리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노력이 더해져야 하는 부분이지요.아이들은 특별히 다정함을 의도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이름 전체를 부르는 것이 편하고 자연스러울 뿐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어른이란 이름으로 성숙해지면서 그 자연스러움을 다정함으로 진화시키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관계를 유지하고 더 발전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더 다정해져야 하는 때가 오는 것이죠. 이것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노력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누구도 혼자서 살 수 없지요. 우리는 가족, 친구, 동료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행복을 너무 멀리서 찾으려고만 합니다. 주변 사람들과 비교, 경쟁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얻는 소소한 행복을 놓치곤 하지요.


한국은 인구 밀도가 높아 좁은 지역에 더 가까이 붙어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서로의 감정과 생각에 영향을 주고받지요. 그렇다면, 이왕 서로 영향을 많이 주고받는 관계이니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함을 보여주는 노력은 결국 나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다정함을 위한 노력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노력을 한 내가 가장 먼저 행복해지니까요. 모든 말과 행동, 감정은 타인에게 전달되기 전에 내가 먼저 경험합니다. 나쁜 말을 할 때 내가 먼저 그 부정적인 감정과 반응을 느끼고, 좋은 말을 할 때는 내가 먼저 그 말에서 행복을 얻습니다. 결국,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다정함을 실천하는 것은 나를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성숙함은 다정함을 통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우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다정함은 인간 사회에서 잘 살아남는 독보적인 역량이니까요. 우리가 나이 먹는 과정에서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관문을 열어주는 가장 중요한 열쇠일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정함은 우리의 인간 관계에서 더 빛을 발휘할 것입니다. 직장에서 동료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할 수도 있고, 친구가 당신과 더 가까워졌다고 느낄 수도 있지요. 가족들과의 소통에서도 작은 따뜻함으로 관계 회복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다정함은 상대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됩니다. 철저하게 상대방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지요. 우리는 이럴 때 HSP가 가진 민감성을 마음껏 활용해 상대를 위한 다정함을 높여야 해요. 다정함은 함께 사는 인간 사회에서 더 가치가 빛나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감하지 않게 태어났지만 인류의 20%가 여전히 민감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 쓰임 받을 곳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의 민감성을 강점으로 활용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에너지는 우리를 분명 더 행복하고 성숙한 인간의 삶으로 안내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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