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또 가고 싶음을 느끼게 해주는 지표가 여러 개 있다. 무엇보다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점점 빨라지는 일몰 시간. 아무리 바삐 집으로 걸음을 옮겨도 오는 길에 이미 온 세상에 어둠이 깔려있다. 분명 파란 하늘을 보고 지하철을 탔다 깜깜한 세상을 마주할 때면 다른 시공간으로 타임워프한 듯 생경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 외에도 나도 모르게 캐럴을 흥얼거리는 순간이나 달력을 뜯다 가벼워진 무게에 놀라는 순간, 그리고 아빠의 합창 공연을 보러 갈 때 한 해의 끝을 실감한다.
아빠가 처음으로 합창팀에 들어가 무대를 올린 것은 이미 어언 8~9년 전부터 이다. 매년 연말에는 가족들과 지인들을 초대하는 정기 공연이 올리고, 봄이나 여름에는 보다 작은 규모로 특별 공연을 올린다. 이를 위해서 아빠는 매주 화요일 밤마다 노래연습을 간다. 화요일마다 아빠 없이 저녁 시간을 보내왔던 기억이 선명한 걸 보면 아빠는 꽤나 성실하게 합창단원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끔은 집에서도 노래 연습을 한다고 목소리 높일 때도 있는데 주로 나와 동생은 안 들리는 척한다(…) 가족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음악에 대한 아빠의 열정!
사실 나는 아빠가 한 해 동안 연습한 노래를 들으러 공연장에 가는 것을 꽤나 좋아한다. 평소의 나는 특히나 아빠에게 다정한 딸은 못된다. 합창 공연 일정이 잡히면 비로 구글 캘린더에 저장해 놓으면서도 두세 번 물을 때까지 참석 여부도 확실히 안 밝힐 때도 있고, 이번 공연장은 멀어서 가기 힘들다며 불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차려입고, 가족들이랑 꽃이나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공연을 보고, 사진을 찍으며 고생 많았다며 공연의 마무리를 축하하는 일련의 과정을 매우 좋아한다.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 코로나 이후여서 공연장 규모가 작았다. 소규모로 가족들 정도만 부른 그날의 공연장에 우리는 늦어서 첫 곡이 끝나고 겨우 들어갔고 정해진 자리에 앉지 못했다. 어두운 객석 한구석에서 본 무대는 빛났다. 반백의 합창단원들이 무대에 올라 있었고 나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바로 아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빠는 우리를 찾지 못해서였을까 초조한 기색으로 우리를 찾고 있었다. 갸웃대는 고개에서 좌우로 돌아가는 시선에서 느낄 수 있었다.
문득 어릴 때 학예회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올렸던 공연도. 대단한 거 아니라고 별거 없으니 안 와도 된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막상 당일이면 나는 엄마아빠가 잘 오고 있는지 초조해했다. 잘 준비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그때의 나와 매년 연례행사 같은 공연이라며 무심하게 말했지만 내심 가족들이 오길 기대할 아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매주 연습했을 아빠의 시간이 떠올라 뭉클해졌지만, 여기서 우는 건 주책이라는 생각에 차오르는 눈물이 막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버텼다. (나는 공연 도중 분명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지만, 아빠는 무대에서 내려가자마자 대체 어디 있냐고 카톡 했다. 결국 찾지 못하고 실망한 셈이다ㅠ)
올해의 공연은 아빠말대로 작년의 공연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새롭게 좋았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그렇게 마음을 울렸다(… 현실 반영?) 아빠의 합창 공연이 반복되는 가족 연말 루틴으로 내년에도 이어질 수 있기를, 아빠의 성장을 목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