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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Feb 26. 2024

금요일 밤이 아쉬워서

요새는 영화독서모임 <영독모>를 한다. 영독모라고 하면 좀 있어 보이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원래도 자주 보는 대학교 동기들끼리 한 달에 한 번은 만나 책과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매번 만날 때마다 술이 이기나 우리가 이기나, 이겨도 저도 부끄럽기 그지없는 싸움을 하다 보니 좀 지겨워졌다. 추억팔이 소재도 점점 떨어지기 마련이니 은근슬쩍 껴넣어본 것이 책과 영화다.


벌써 일 년도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모임은 느슨하다.  규칙은 있지만 없는 것과 무방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이번달 모임이 금요일 밤에 줌으로 진행될 뻔(?) 했다. 아무리 우리 사이라도 금요일 밤 열 시에 각자 집에서 줌이라니? 이건 좀 선 넘는다. 이제 다들 낡고 지친 직장인이 된 이들에게 금요일 밤이란 좀 신성하다. 합심한 이들의 물밑작업으로 줌으로 대체해야 한다면 일요일 밤에 해야 한다고 가까스로 미뤄본다.


그렇다면 지켜낸 금요일 밤에 무엇을 할 것이냐 하면 역시나 술을 마신다. 오랜 관계는 일종의 관성을 지니기 마련이고, 우리는 어느새 우리가 마주할 미래를 시간이 오기도 전에 느낀다! 저녁 7시에 만난 이들과 끝이 어떠할지 보인다. 내 십 년 뒤 미래는 아득할지라도 오늘 밤 맞이할 미래는 아주 선명하다. 1차에서 시킨 소주 한 병과 맥주 세 병이 언제쯤 바닥을 드러낼지는, 안주 선택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 술자리 끝에 잡게 될 택시는 한 대라는 것 정도는 예측할 수 있다.


친구의 집 일층 오피스텔에서 술을 더 사와 마시고 잠에 드는 패턴도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떠 보니 익숙한 천장이다. 뭉그적 대고 있다 보면 누군가는 슬금슬금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할 것이다. 해장은 하고 가야 하지 않냐는 말 한마디에 다시금 자리에 앉을 터이고, 배달 앱을 뒤적이다 무언가를 시키고 TV를 틀 것이다. 도착한 해장 음식을 먹는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합주와 같이 자연스러운 전개다. 먹으면서 나는 말한다. 파묘도 개봉했던데. 친구가 핸드폰을 집어 들더니 받는다. 어 세시에 상영하는 거 있다.


금요일 밤이 아쉬워서 만났는데 어느새 토요일 밤이다. 24시간을 꽉 채우고 나서야 이제 좀 아쉬움이 풀린다. 언젠가는 맞이할 2034년 즈음의 어느 금요일 밤도 이 밤과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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