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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Jul 01. 2024

한없이 유치해져만 가고

진짜 우리 인류가 정말 발전하고 있는 것인가 하면 의아해질 때가 있다. 실수가 반복되는 인류의 역사나 점점 심각해져만 가는 환경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익명 사이트나 기사의 댓글창까지 갈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참여한 카톡방의 대화 내용을 되돌아가며 읽어보기만 해도 충분히 의아해진다.


나에게는 역사 깊은 카톡방이 여러 개 있는데, 이 중 흔들림 없이 가장 오래 지속된 카톡방의 이름은 ‘니나박과 아이들’이다. ‘니나박’은 나의 온라인 닉네임을 지칭하는 것이고, ‘아이들’은 나의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 3명을 지칭한다. 네 명의 친구들이 모두 수평적인 관계임에도 나를 중심으로 주변인들을 위치시켰다는 면에서 카톡방의 이름은 매우 자기중심적인 면모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이 카톡방의 대화 내용은 더욱 가관이다. 카톡방의 대화를 거슬러 올라가며 읽다 보면, 대화에 참여하는 네 명의 인물이 ‘대화’라는 단어의 뜻은 과연 인지하고 있는 것인지 매우 의아해진다. 모두가 각자 독백에 가까운 자신의 발화만을 반복하고 있다. 각자 주제에 대하여 느끼는 바 만을 내뱉고 있을 뿐 서로의 말에 반응하거나 이야기를 이어갈 의지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삼십 대 중반의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3인칭 화법과 뜻이 불분명한 의성어가 가득하다.


이 네 명의 대화 참여자는 모두 각자의 사회적 위치에서 거뜬히 1인분의 몫을 해내고 있는 엄연한 사회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대화는 19살 때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쪽지를 주고받던 시절과 질적 측면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이는 현상 유지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까지 십여 년 쌓아온 연륜에 비해 퇴보한 것일까!


문제는 마흔 살이 되고, 오십 살이 되어도 여전히 똑같을 것 같다는 점이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우끼끼’ 같은 의성어를 외치는 것은 멋진 인생이라고 볼 수 있을까, 혹시 이렇게 발전 없는 인간형이 되는 것은 아닌가 문득 두려워지는 순간, 업무 카톡이 온다. 나는 여전히 ‘낄낄’ 웃으며 긴 단어를 두 글자로 줄여 말하기 놀이를 좀 더 하고 싶지만, 그런다면 상대방이 당혹스러워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직장인의 페이소스를 담아 답장을 보낸다.


그리고 억눌렀던 마음을 담아 ‘니나박과 아이들’ 카톡방에 아무 말을 내뱉는다. 진짜 내가 “뷁”이라고 외쳐도 여기에서는 아무도 놀라지도, 어쩌면 반응조차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나는 그 어떤 검열도 없이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 아마도 어떤 종류의 유치함은 이렇게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던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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