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요새는 근황을 들을 일이 잘 없다. 특히 인스타를 시작하고 나서는 더더욱 그렇다. 보지 않아도 나는 내 주변인들의 근황을 아주 잘 안다. 틈틈이 올라오는 지인들의 일상을 보고, 그들의 소소하지만
즐거워 보이는 일상을 공유받게 된 것에 대해 하트로 기쁜 마음을 내비친다. 그러다 보니 만나서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근황에 대해 듣기 전에도 먼저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된다.
그러던 중 오늘은 오랜만에 타인의 근황을 알림 설정해 둔 글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꽤나 오랜만에 올라온 글이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녀의 아이디는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네이버 카페를 통해 알게 되었다. 뇌질환 환자 카페였다. 그녀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어머니가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적었다. 취준생이자 이십 대 중반이었던 나는 이미 결혼도 하고, 회사에도 다니고 있다는 그녀의 글과 대처가 어른스럽다고 느껴 그 아이디를 오래도록 기억했다.
어머니가 입원하셨던 그 시기에는 그 네이버 카페만이 내 세상의 전부였다. 겨울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던 10월이었다. 나는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누군가를 찾아 헤매다 그 카페에 들어갔다. 모두가 자신의 사례를 그 가상공간 속에 털어놓고 있었다. 누군가의 하소연이 나에게는 실낱같은 동아줄이 되어줄 수도 있는 곳이었다. 수많은 글들을 점차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읽고 또 읽었다.
내가 그곳에서 찾고 싶었던 건 단서였다. 나는 사람들이 글에 남긴 단서 조각들을 잘 꿰어 엄마의 미래를 예측해내고 싶었다. 지금 인지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혹은 수술 후의 섬망 증상인 건지, 혹은 혈관성 치매인 건지 나는 알아내야 했다. 항상 최악을 이야기하는 의사와 희망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다독이는 카페의 환우 가족들 사이를 오가며 나는 그 시기를 버텼다.
그때 큰 힘이 되어준 것이 그녀의 글이었다. 나는 그녀의 글을 구독했고, 어머니가 퇴원하고 나서도 종종 알림이 뜨면 그녀의 근황을 읽었다. 어머니가 재활에 힘쓰던 1~2년 간은 정말 친구의 근황을 접하듯 글을 탐독해서 읽었고, 회복하신 후에는 또 휘몰아치는 일상에 치여 한동안 그 시절을 통으로 접어두고 펼쳐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오늘 문득 또다시 알람이 울려 정말 오랜만에 글을 통해 그녀의 근황을 알게 되었다.
십 년이라는 긴 세월을 통과하며 그녀의 삶에 새겨진 변화를 나는 글을 통해 아마 오롯이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 퇴사가, 9년여간의 가족 돌봄이, 어머니의 영면이 어떤 내상을 남겼을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오늘도 그저 읽을 뿐이다. 자신의 근황과 함께 온 식구가 아프지 않았던 과거의 한 순간을 떠올리는 그녀의 글에서 나는 가족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읽어낸다.
평온하기를,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상투적인 응원의 말이 그 시절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듯 이번에도 그녀에게 진정성 있게 온전히 가닿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