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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작소 Mar 27. 2021

사는 것. 참... 쓰다.

하나를 내줘야 값진 것을 내어주는 것이 삶인가 보다.

씨가 흐리다.  비가 올 것 같다.

기분이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우울 증상을 갖게 된 후로 알게 되었다.

우울증으로 인해  감정과 날씨의 관계 말고도 알게 된 것들이 있다.

큰 아이 친구 엄마 형숙 씨가 늦게 들어오는 남편에게 갖는 서운함이 어째서 이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희연 씨는 몇 년째 밖을 나서기 힘들어하고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하는지. 그들의 행동이 아니라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제저녁엔 큰 아이가 나를 찾았다.

"오늘 원래 10시에 들어오려고 했는데, 버스를 놓쳤어. 왠지 엄마한테 이야기해야 할 거 같아서."

"무슨 일 있었어?"

"작업실에서 나오려 했는데 콘센트에 전원을 내렸는지 돌아가서 자꾸 확인을 해야 해. 내렸다는 걸 아는대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 몇 번 반복하다가 버스 시간을 놓쳤어. 그리고 지하철 화장실에 들어가서도 자꾸 내가 남자 화장실에 들어온 게 맞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 아마 누군가 나를 씨씨티비로 보고 있다면 그 행동이 더 수상하게 보일 거야."

"아... 너, 많이 불안하구나! 많이 힘드니?"

"이번엔 힘들다기보다 너무 불편해."


군대 전역 후 어떤 사건 촉발로 아이의 불안이 드러났다. 

해결이 어느 정도 되었는 줄 알았는데, 결국은 이론서에 있는 행동을  똑같이 하고 있다.  내 아이라고 예외는 없나 보다.

아이의 불안이 고스란히 전해 지고 마음이 아팠다.

불안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에... 지금은 고개가 숙여진다)을 불편해하고 미숙하게 봤던 내가 그 불안을 고스란히 전달받는 다니 그것 참,  낯설다.

우울증이 찾아오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겪는 감정에 함부로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어떻게 그 아픔을 함부로 재단할 수 있을까.  그게 아들이라도 말이다.


'네 삶은 이젠 정말 네가 감당해야 할 몫이되어 버렸구나. 엄마가 나서서 감당해 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구나. 에휴. 어쩌니. 삶이 주는 훈련에 이렇게 빨리 접어들게 되다니. 너무 많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의 아픔을 이런 생각과 함께  목구멍으로 삼켰다.  


온갖 생각이 오가는 아침이다.

사는 것 참, 녹록지 않다.

오늘 기분이  날씨 처럼 어둑한 회색이다.


#강박증 #불안장애 #우울증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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