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반변성은 거의 70대에나 찾는 노인성 질환인데, 나 같은 경우는 '특발성 황반변성'이란 이름으로 불필요한신생혈관이 황반에 타격을 입힌다고 했다.
처음엔 왼쪽 눈에 찾아와 12회 정도 안구에 주사를 맞았었는데, 작년 초인가부터 오른쪽 눈에도 찾아왔다.
어제, 지난달에 주사를 맞고 한 달만에 주사를 맞게 되었다.
이상하게 이번엔 주사 효과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선생님, 계속 진행이 되고 있는 건가요? 전엔 주사를 맞으면 3주 정도가 되었을 때 괜찮아진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엔 아니네요."
"확인해 보니 그러네요. 흐음... 예전 차트를 찾아보니 2018년도에 좌안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네요. 그래서 스테로이드를 맞았었고요."
"스테로이드를 맞는 건 훨씬 신중해야 할 문제인가 보네요.제 눈인데 어쩌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걸까요. 너무 주사를 자주 맞아서 그런가..."
"2019년에 백내장 수술했었죠? 스테로이드를 주사하면 안압이 올라갈 수도 있어요. 백내장이 올 수도 있고 녹내장이 될 수도 있어서 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죠. 환자분 경우에는 주사 후에 백내장이 급격하게 심해져서 우안도 그렇게 될 상황이 커요."
"아... 그래서 백내장 수술을 했었죠."
갑자기 찾아온 황반변성이 내 인생에 획을 긋는 사건이었고, 이제 받아 들일만 하고 익숙해지기도 했는데, 이렇게 예측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마음이 영 무겁고 우울해진다. 이제 눈에 주사 맞는 일은 거의 엘리트급 인대도 말이다.
실명이 될 수 있는 질환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큰 배움이 하나 있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떠야만 기적이 아니라 ,
매일 내 주변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잠을 자고 눈을 떴을 때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찌그러진 모습이 아니라 생긴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러고 났더니 내가 아무렇지 않게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썩은 냄새도 맡을 수 있다는 것, 화장실에 앉았다가 두 다리와 배에 힘을 주고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한 영화 대사에서 "호의가 계속되면 그것이 권리인 줄 알아." 런 말. 너무나 당연해서 원래 그래야 하는 것처럼 여겼던 것 나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보이고 운전은 할 만큼의 시력이 존재함에 감사한다.
언제까지 지금의 시력이 주어질지 몰라 매일 그 모습 자체의 아름다운 것들을 눈에 담아 두려고 한다.
때때로 보고, 읽는 것에 강박적이게 되긴 하지만 말이다.
가진 것을 상실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고 그래도 그 자리에서 다른 선물을 얻는 것이 삶이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란생각을 오늘 또 해본다.
매 번 맞던 아바스틴을 주사하고 이번에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다음 달엔 스테로이드를 맞기로 했다.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받아들여하는 것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이번 주사가 잘 들어주길 마음으로 바래본다.
아픈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질병과 삶, 질병과 건강을 날카롭게 분리한다. 건강은 정상적인 것이고, 아프다는 건 비정상적인 상태라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상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현대의학은 여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헌데, 이렇게 정상/비정상의 관점으로 다루게 되면, 질병은 곧바로 열등한 것, 불행한 것이 되어 버린다. 아프니까 열등하다, 아프니까 불행하다고?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건 어디까지나 현대의학과 자본의 기준일 뿐이다. 생명과 우주의 차원에선 아픈 것도 삶의 또 다른 과정에 해당한다. 그런 점에서 원초적으로 장애란 없다! 또 질병과 불행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질병은 생명의 능동적 전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