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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작소 Oct 28. 2021

황반변성과 맞 바꾼 것

아픈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

 40대 초반부터 황반 변성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꽤 되었다.


황반변성은 거의  70대에나 찾는 노인성 질환인데, 나 같은 경우는 '특발성 황반변성'이란 이름으로 불필요한 신생 혈관이 황반에 타격을 입힌다고 했다.

처음엔 왼쪽 눈에 찾아와 12회 정도 안구에 주사를 맞았었는데, 작년 초인가부터 오른쪽 눈에도 찾아왔다.


어제, 지난달에 주사를 맞고 한 달만에 주사를 맞게 되었다.

이상하게 이번엔 주사 효과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선생님, 계속 진행이 되고 있는 건가요? 전엔 주사를 맞으면 3주 정도가 되었을 때 괜찮아진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엔 아니네요."

"확인해 보니 그러네요. 흐음... 예전 차트를 찾아보니 2018년도에 좌안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네요. 그래서  스테로이드를 맞았었고요."

"스테로이드를 맞는 건 훨씬 신중해야 할 문제인가 보네요. 제 눈인데 어쩌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걸까요. 너무 주사를 자주 맞아서 그런가..."

"2019년에 백내장 수술했었죠? 스테로이드를 주사하면 안압이 올라갈 수도 있어요. 백내장이 올 수도 있고 녹내장이 될 수도 있어서 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죠. 환자분 경우에는 주사 후에 백내장이 급격하게 심해져서 우안도 그렇게 될 상황이 커요."

"아... 그래 백내장 수술을 했었죠."


갑자기 찾아온 황반변성이 내 인생에 획을 긋는 사건이었고, 이제 받아 들일만 하고 익숙해지기도 했는데, 이렇게 예측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마음이 영 무겁고 우울해진다.  이제 눈에 주사 맞는 일은 거의 엘리트급 인대도 말이다.


실명이 될 수 있는 질환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큰 배움이 하나 있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떠야만 기적이 아니라 ,

매일  주변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잠을 자고 눈을 떴을 때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찌그러진 모습이 아니라 생긴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러고 났더니 내가 아무렇지 않게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썩은 냄새도 맡을 수 있다는 것, 화장실에 앉았다가 두 다리와 배에 힘을 주고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한 영화 대사에서  "호의가 계속되면 그것이 권리인 줄 알아."
런 말. 너무나 당연해서 원래 그래야 하는 것처럼 여겼던 것 나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보이고 운전은 할 만큼의 시력이 존재함에 감사한다.

언제까지 지금의 시력이 주어질지 몰라 매일 그 모습 자체의 아름다운 것들을 눈에 담아 두려고 한다.

때때로 보고, 읽는 것에 강박적이게 되긴 하지만 말이다.


가진 것을 상실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고 그래도 그 자리에서 다른 선물을 얻는 것이 삶이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란 생각을 오늘 또 해본다.

매 번 맞던 아바스틴을  주사하고 이번에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다음 달엔 스테로이드를 맞기로 했다.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받아들여하는 것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이번 주사가 잘 들어주길 마음으로 바래본다.


아픈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질병과 삶, 질병과 건강을 날카롭게 분리한다.
건강은 정상적인 것이고, 아프다는 건 비정상적인 상태라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상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현대의학은 여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데, 이렇게 정상/비정상의 관점으로 다루게 되면, 질병은 곧바로 열등한 것, 불행한 것이 되어 버린다.
아프니까 열등하다, 아프니까 불행하다고?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건 어디까지나 현대의학과 자본의 기준일 뿐이다.
​생명과 우주의 차원에선 아픈 것도 삶의 또 다른 과정에 해당한다.
그런 점에서 원초적으로 장애란 없다!
또 질병과 불행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질병은 생명의 능동적 전략이기도 하다.

아픔을 통해서만이 삶의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기 때문이다.


- <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고미숙 (지은이)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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