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이다. 하지만 떠나지 않고는 돌아올 수 없다.
여행 후기를 올리는 것은 이글이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다른 주제를 가지고 글을 다시 남길 수도 있겠지만 당분간은 쉬겠습니다. 마무리하는 글과 좋아하는 사진들을 올려 봅니다.
페이스북에 남겼던 메모들을 브런치에 단순히 옮겨 적는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인들에게만 공개했던 글이 아닌 불특정 다수가 보는 글이라는 생각에 글을 다듬기 시작했고 조회수가 늘어가며 부담이 되어 버렸다. 남겼던 메모뿐 아니라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고 살을 붙이는 것에 끝나지 않고 개인적인 생각들까지 정리해 봐야 하는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첫 글을 올린 후 3개월이 지나 이제 마지막 정리의 글을 남기려 한다.
14개월의 여행을 뒤돌아 보면 즐거웠던 일도 있었지만 아쉬운 것들도 많다. 타지의 로맨스도 없었고 수영이 두려워 다이빙, 스노클링, 서핑 등의 새로운 즐거움을 맘껏 즐기지도 못했다. 휴대폰 카메라에만 의존하다 보니 현지인들의 일상이나 인물사진이 너무 부족하다. (무턱대고 카메라를 들이댈 수는 없다. 순간을 찍어야 하는 경우는 원거리의 도촬도 필요하다.)
돌아보면 인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너무 빨리 너무 많은 곳에 가려했다. 조금 더 여유 있게 조금 더 많은 것을 해 보았어야 했다. 잠시 멈추었으면, 아니 발길을 돌려 다시 갈 수도 있었지만 줄곧 한 방향으로만 이동할 뿐이었다. 바쁨에 매몰되어 있는 일상이 싫어 떠난 여행이었지만 그 여행에서도 바쁘기만 했다.
그래도 좋다. 덕분에 그 사람들을 만났으니... 다음도 있으니...
세계일주를 하면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깨달을 것 같다. 아프리카 어디쯤, 남미 어디쯤 가면 삶에 대해 무엇인가 대단한 의미를 깨달을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뿐이다. 단지 자신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많이 한다는 것뿐이다.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 가 보고 경험하지 못한 것을 조금 더 해 보는 것뿐이다. 무엇인가를 느끼는 주체는 결국 자신이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로 향하는지? 왜 가야 하는지? 그런 질문들의 반복이다.
창백한 푸른 점을 돌았던 14개월 여행의 남는 생각들이다.
1. 결국 사람이다.
그곳의 풍경이나 경험보다는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좋은 곳이 되고 싫은 곳이 된다.
2.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다.
항상 바뀌는 것이 계획이다. 신중한 결정보다는 결정하는 시기가 중요하고 계획은 수시로 바뀌어야 한다.
3. 바꿀 수 있는 것은 미래뿐이다.
지난 일은 생각하지 말자. 지난 일은 바꿀 수 없다. 앞으로의 일에 최선의 선택을 하자.
4. 가 보아야 하고 해 보아야 한다.
가서 실망하는 것이 가지 못하고 아쉬워하는 것보다 낫다. 가고 싶은 곳은 가고, 하고 싶은 것은 해 보고 나서 실망하자.
5.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바로 세상이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세상은 그냥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다.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자리가 나의 세상이다.
6. 가장 먼 곳은 내 마음 속이다.
아무리 멀리 떠나도 채워지지 않는 내 안에 있는 무엇이 있다. 빈자리는 작아질 뿐 채워지지 않는다.
7. 두려움은 해봄으로 줄일 수 있다.
새로운 장소를 가는 것, 새로운 것을 해 보는 것은 항상 불안과 두려움을 갖게 한다. 하지만 가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실수를 통해 배운다.
8. '무대포'가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가자' 보다는 미리 확인하는 편이 훨씬 편하고 안전하다. 기본적인 것들은 미리 확인하자.
9.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몇 배 좋다.
아이 손에 쥐어준 볼펜 하나라도 주는 즐거움이 받는 즐거움보다 크다. 하지만 준 것은 잊고 받은 것은 기억해야 한다.
10. 무엇인가 우리는 빚이 있다.
이 시기에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것은 상당한 행운이다. 어쩌면 다른 세상에 그만큼의 빚이 있다.
11. 'Thank you', 'Sorry'가 인색했다.
한국인은 이 짧은 단어가 너무 인색하다. '고맙다', '미안하다' 이 말 한 마디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 같다. 이 가벼운 말을 조금 더 많이 내뱉고 싶다.
인간은 아이일 때는 누구나 철학자다. 아이들은 해, 달, 별, 꽃, 새, 나무, 돌, 산, 숲 등 세상 모든 것들에 호기심을 갖고 세상이 마법과 기적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루하루 자라면서 마법과 기적을 거부하고 정해진 규칙들을 스스로에게 주입한다. 딱딱하고 정답이 정해진 교육이 유연한 사고를 가로막고 우리는 '왜?'라는 것에 점점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된다.
해, 달, 별, 꽃, 새, 나무, 돌, 산, 숲들은 비록 존재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인간만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다. 오직 인간만이 본질에 우선하는 존재이며 존재 자체를 위한 존재이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미리 정의된 본질도 없다. 끊임없이 선택하고 창조하고 자아를 새롭게 만들어 낸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은 그 자신이 전체 일생을 살아가며 쉬지 않고 하는 행동들의 총합이다.
하나의 세상에 70억의 인간이 사는 게 아니라 70억의 인간이 각자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모두가 자신의 세상에서 주연이다. 희극인지 비극인지는 연극이 끝나 봐야 알 수 있다. 대본은 없고 결말은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다.
사람은 논리적인 학습보다는 실수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한다. 우리는 계속 실수할 것이고 계속 더 커질 것이다. 일단 시작해 보는 거다. 살아가며 끝없는 선택을 한다. 지금의 나도 수많은 선택의 결과이다. 책임질 수 있는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그것만 고민하자.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 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 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