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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Jun 28. 2019

사람에게도 디스켈링이 필요해! 너를 위해 너에게 멈춤을

톱날을 갈아라

사람에게도 디스켈링이 필요해! 너를 위해 너에게 멈춤을 허락하라          


내가 가장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는 “살 빼야하는데”이다. 난 왜 살이 찔까? 나라는 엔진이 연료가 주입되는 만큼(먹는 만큼) 작동하지(활동, 운동) 않기 때문이다. 혹은 내가 출력할 수 있는 엔진양은 일정한데 휘발유를 연료통에 가득 채워 넣고 그것도 모자라 말통에 휘발유를 꽉꽉 채워 트렁크에 넣고 다니기 때문에 나는 무겁다.      


(질량으로서) 무거운 이야기로 글을 시작했다.      


요 며칠째 나의 Y5 일리 머신은 나를 디스켈링하라 외치며 파업을 하고 있다. 하루하루 미루다가 오늘 마음 잡고 디스켈링 했다. 최첨단 기계라 그런지 지가 알아서 디스켈링이 필요한 시기도 파악해서 알림을 주고, 버튼 몇 개만 누르니 장작 30분을 알아서 디스켈링하며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정비하더라.      


우리 인간도 디스켈링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언제 나를 위해 잠깐 멈춰야 할까?

잠시 멈춰 나를 정비할 때 멈춤에 조급해 하진 않을까?

우리 사회는 정비를 위한 혹은 준비를 위한 멈춤을 퇴보라 보는가? 난 그 자리인데

이렇게 잘 알면서 나는 왜 멈춰있을 때 스스로 불안해하는가?     


디스켈링 메시지를 볼 때, 취업을 준비하는 동생 혹은 교육생이 자신에 대해 부정적일 때, 나 스스로를 돌아볼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스티븐 코비 할아버지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중 마지막 습관 “톱날을 갈아라”를 떠올린다. 톱날을 갈아라. Shapen the saw. 참 심플한 표현이지만 내게는 내 삶의 균형에 깨우침을 준 문장이다.      


두 나무꾼이 있다. 한 나무꾼은 정말 부지런한 나무꾼이다. 한시도 쉬지 않고, 잠자는 시간까지 아끼며 톱으로 나무를 베는 사람이다. 물론 다른 한 나무꾼도 부지런한 사람이다. 한 나무꾼은 말한다! “쉴 시간이 어디있어! 그럴 때 톱질 한번이라도 더해야지! 그래야지 나무를 더 많이 베지.” 다른 한 나무꾼은 수시로 자신의 톱을 체크한다. 그러다 톱날이 무뎌지면 잠시 그늘에 앉아 그 톱날을 숫돌로 간다.      


둘의 목적은 간다. 나무를 많이 베는 것이다. 


일하는 시간은 첫 번째 나무꾼이 훨씬 많다. 그는 땀도 훨씬 많이 흘린다. 그는 스스로를 평가할 것이다! 나는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다라고.. (좀 더 나아가보면) 어쩌면 그늘에 앉아 톱날을 가는 나무꾼을 보며 쯧쯧하며 혀를 찰 수도 있다.      


그런데 누가 나무를 더 벨까? 더 베고 말고라는 비교를 떠나 설사 똑 같은 나무의 양을 벤다하더라도 누가 더 효율적이었을까? 당연히 톱날을 간 나무꾼일 것이다. 무딘 톱날로 하는 100번의 톱질은 날카롭게 선 톱날로 한 톱질 10번과 같은 작업량을 보이지 않을까? 그런 결과 앞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한 나무꾼은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뻔한 우화 같은 이야기가 실제 우리의 이야기는 아닐까?     


사람에게 효율이라는 단어를 적용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글을 시작하며 쓴 글처럼 우린 애초부터 먹은 만큼도 움직이지 않는 존재이기에. 그리고 각기 다른 가치를 두고 사는 우리이기에 개인마다 효율의 기준이 다르기에 사람에게 효율이라는 표현하기에는 적용이 어렵다.      


하지만 간단한 점 하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 하나는 우리는 좀 더 나은 효율을 위해 정비하는 시간, 잠시 멈추는 시간, 에스프레소 머신의 디스켈링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혹시 위의 나무꾼에 대한 글에서 첫 번째 나무꾼이 어리석다고 느껴졌다면 그런 공감을 나와 함께 했다면 우리 잠시 멈춰보자.      


멈춘다는 것은 소비적 에너지 사용(신나게 놀기)을 말하진 않는다. 물론 즐거움을 주는 휴식도 소중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의 톱날을 갈기 위한 멈춤은 성찰, 계획, 다짐의 시간이다. 톱날을 가는 행위와 톱날 위에 고기를 구워먹는 것은 다를 테니까. 너를 위해 너를 위한 시간을 허락하자.      


나는 톱날을 간다고 홀로 말하며 자주 쉰다(논다). 그 후에 내 안의 톱날을 바라본다. 전혀 용도에 맞게 갈려져있지 않다. 너의 톱날은 너만의 숫돌로 갈 수 있다. 너의 숫돌은 무엇인가? 너는 어떻게 너의 톱을 가는가?      


이야기가 자꾸 확산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의 말미에 하고 싶은 말 하나는 톱날을 가는 것도 중요한데..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더 중요한 사실 하나는 내가 열심히 간 나의 톱날로 자르고 싶은 나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정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무로 무엇을 만들 것이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 무슨 나무를 잘라야 하는지 스스로 정해야 한다. 물론 한 번에 내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아는 것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럼 관심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최소한 나무 자르는 기술, 톱날을 가는 방법, 이 가구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것은 배우고 파악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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