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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Dec 08. 2022

걀레뜨 꽁쁠레뜨

접으면 특별해지는 메뉴



  아버지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 연배의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위적인 모습이나 가르치려고 드는 꼰대 기질이 없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장점이 될 수 없었다. 물질이 정신을 넘어선 시대를 살아남기에는 너무나 유약했다. 


  그가 가장이었던 지난날, 나의 성장기는 그의 장점이 일으키는 문제를 제외한다면 완벽하게 희극이었다.

  인간이 경제적 동물이라면 그는 다른 이름을 가져야 하는 인간형이었다. 

  돈, 숫자 대신 책과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현실 속 삶을 살아야 했던 아내와 시시 때 때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충돌이랄 수도 없겠다. 현실의 폭풍우 한가운데 난파되기 직전의 삶을 가까스로 끌고 가는 아내의 하소연으로 시작한 대화는 이상적이다 못해 세상 저편의 논리로 인해 한숨으로 마무리되고는 했기 때문이다.


  집에 어울리지 않는 오디오 시스템을 구비해 놓은 그는 아침이면 차이코프스키 1812년 서곡을 틀었다. 대포가 울릴 때쯤이면 귀를 막고 튀어나오는 삼 남매의 투정을 즐겼다. 

  여름날 밤, 쇼팽의 녹턴을 듣다가 혼잣말처럼 소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는 했다.


  아버지는 농담에 재능이 있던 사람이었다. 

  농담도 지능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이론이 맞는다면 그는 천재적이었다.

  일상에 녹아든 농담뿐 아니라 어떤 진지한 상황도 농담으로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카오스적 상황을 코스모스적 일상으로 만드는 사람이었다.

  체벌이 필요하다고 아내가 이야기했을 때 그는 삼 남매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방바닥을 치면 너희는 아픈 척하는 거야. 삼 남매는 종아리를 때리는 척, 혼내는 척하는 상황극에 제법 혼신의 열연을 했다. 늘 들키고야 말았지만.


  어린 삼 남매의 눈에도 현실과 괴리된 유약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던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말을 잃었다.

  긴 여행에서 돌아온 그의 발음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가족들 누구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서서히 줄어든 단어와 문장은 일 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사라졌다. 

  뒤늦게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지만 원인불명의 매우 특이한 케이스로 임상 연구를 하고 싶다는 진단을 받았다.

  실어증이었으나 실어증의 증세와는 달랐다. 계속 반복하면 발음을 할 수 있었고,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던 노래는 발음의 제약 없이 부를 수 있었다. 다만 그 어떤 단어나 문장도 발화되지 못한 채 혀끝에 머물러야 했다. 

  삼 남매는 일상으로부터 거리가 있었기에 안타까움이 생활 속에서 가끔씩 드러날 뿐이었다. 

  동거인이자 삼 남매의 어머니, 그의 아내는 소통의 문제로 힘겨워했다. 그 어디에서나 보호자 또는 통역사로서의 역할이 버거웠다. 하지만 아버지 본인만큼 황당하고 괴로운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농담을 좋아하고 대화하는 것을 즐기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는 아버지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반경 20m 안의 유일한 상대방이 된 아내는 답답할 수밖에 없는,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무력감만이 남은 상황의 연속이었다.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흐르면 상처들은 꾸역꾸역 새살로 덮이고 통증은 언제 그랬냐는 듯 무뎌진다.

  아버지의 실어失語는 가벼운 지병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목소리를 기억할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기억하던 그의 농담과 흥얼거리던 노래, 웃음소리가 기억나지 않는다. 농담은 텍스트로 기억되고 노래는 음반으로만 남아있다. 

  

  딸의 집에서 머물러야 했던 짧은 겨울.

  가장 닮은 두 사람은 말이 없이도 행복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프랑스 메뉴를 만들고 함께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재즈를 들었다. 중요하다고 믿었던 말이 없어도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말이 전할 수 없는 마음이 있었다. 

  그에게 전하는 마음을 생각하며 요리를 했다.  

  그는 말 대신 엄지를 세워 환하게 웃었다. 

  백 마디 말보다 좋았다.


<만드는 법>

재료/ 메밀가루, 계란(반죽용과 요리용 2개), 물, 소금, 졍봉, 그뤼에르

1. 프랑스산 메밀 250g

2. 계란 1 개

3. 물 70ml

4. 소금 약간

다 섞어서 12~24시간 정도 냉장 숙성


ㄱ. 달궈진 팬에 숙성된 반죽을 얇게 편다.

ㄴ. 가운데쯤 계란 하나를 톡 까놓는다.

ㄷ. 노른자를 잡고 흰자를 펼치면서 흰자만 익힌다. 

ㄹ. 졍봉(얇은 햄)을 올리고

ㅁ. 그 위에 그뤼에르나 꽁떼 등 하드 치즈를 갈아 올린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레시피. 사진의 걀레뜨 꽁쁠레뜨는 변형된 메뉴로 공식적인 레시피에 싱싱한 샐러드를 올리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살짝 뿌렸다. 그 외에 다양한 올리브 절임, 버섯, 졍봉 대신 다른 재료를 얹어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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