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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를e Mar 03. 2021

나이 마흔에 첫 가출

프롤로그_라면 봉지를 뜯어내며

"나 더 이상은 못해. 둘이 죽든지 살든지 알아서 하셔"

문을 쾅 닫았다.

엄마와 아버지는 내 이름을 계속 불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와서 급히 시동을 걸었다.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고속도로로 차를 올리고, 액셀을 밟았다.
아버지에게 계속 전화가 왔고 나는 계속 끊었다.

찾긴 왜 찾는 건지. 또 뭔가 시키려고 그러나 보다 싶었다.


"네 엄마 불쌍하지도 않냐?"


문을 닫으며 문틈으로 새어 나온  말.

아버지가 간곡히 소리쳤다.
말이 어눌한 아버지가 주어부터 서술어까지

문장 전체를 뱉었다

다급했던 것 같다.

탁 트인 바다가 보고 싶었다.

아무리 멀어도 가보려고 했지만 차들이 너무 많았다.

한 여름 막히는 고속도로는 답답했다. 더구나 이렇게 답답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가까운 톨게이트로 일단 나갔다.

그늘에 차를 세우고 잠시 방금 상황을 되새겨 보았다


어머니는 단기 기억장애를 앓고 있다. 알츠하이머


작년에 발병한 (원인불명의) 지주막하 뇌출혈 후유증이다.

엄마는 나라에서 인정하는 뇌 병변 중증 장애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는 이미 모야모야병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말이 어눌하다. 반면 고집은 세다.


그 두 사람의 하나뿐인 아들. 이제 갓 마흔을 넘긴 유일한 혈육인 나는,

분가 이후 10년만에 다시 동거를 시작했다.

처음 생각은 단순했다.
1.편찮으시니 부모를 부양한다.
2.갑작스러운 엄마의 사고를 보며, 돌아가시기 전까지 짬짬이 소소한 추억을 쌓으면 좋겠다. 아름답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부양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나는 방금 집을 나왔다. 정확히는 도망쳤다.
두 명의 노인 그리고 장애(치매)가 있는 사람을 돌보는 것 너무 힘들었다.
엄마와 아버지였지만 힘들었다. 하기 싫어졌다.

도망치고 싶었고, 도망쳤다.


그렇게 도망친 난

처음 와본 톨게이트 앞에 멍하니 앉아 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날씨조차 답답한 게

나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전화가 왔다. 화면에 '어머니'라고 떴다.


"엄마? 엄마?"
엄마는 전화를 못 하는데...


이전에는 잘 사용했지만 현재 엄마 인지능력으로는 스마트폰은 사용이 불가능하다.
아버지는 엄마의 스마트폰을 사용할 줄 모른다. 쭉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

뭔가 미심쩍었지만, 일단 받았다.

"응, 아들? 집에는 언제 와? 들어올 거지?"

엄마였다.
전화 거는 게 불가능 한데. 목소리는 분명 엄마였다.

"엄마, 근데 왜 전화했어?"

엄마 약 한 시간 전 그 상황을 기억하진 못한다. 기억한다면 기쁜 일이다.

"어, 그냥. 무슨 일 있나 하고, 집에 언제 와? 저녁은 들어와서 먹을 거지?"

사고 이전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묻는다.


자기 새끼가 불안한 상황인 것은 망가진 뇌가 아니라 몸이 감지한 것 같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가출한 정황을 기억하진 못하는듯 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화를 했고,


약 1시간 전에 자신을 버리고 나간 아들을. 그 자식새끼를.
엄마는 걱정하고 있었다.



"어, 이따 갈게."

일단 안심을 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라는 본능. 그 촉. 그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정말로 몸이 본능적으로 감지해서 망가진 뇌를 다그친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 본능 덕에 마흔에 시도한 첫 가출은 이렇게 약 1시간여 만에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전히 차는 많고, 속도는 느렸고, 답답했다.
처음 겪어보는 문제로 속을 끓이고 있는

마흔 먹은 철부지 외동아들은

앞날이 막막하고, 두렵다.


두려운 맘, 조금이나마 누그러 뜨리려 차속에서 혼자 중얼거려 본다.

 

"엄마. 아버지. 한 달만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는데.
저는 육 첩 반상 같은 효도는 못할 그릇이네요.
그럼, 뭐 어떻게.이렇게 도망도 못 가는데.
라면이라도 끓여 들여야지."

그 해 여름 이렇게 효도라면은 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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