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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재성 Oct 07. 2018

한밤의 브런치, 413프로젝트

부제 : 누가 나의 파스타를 빼앗았는가



한밤의 브런치, 413프로젝트




413프로젝트의 약도. 6번 출구에서 도보로 7분 32초 거리에 있다. 배고픈 소설가의 걸음 기준이다.



작가와 식食은 가깝다. 혹은 멀다. 어쨌든 먹어야 무언가를 쓴다는 점에서는 매일매일 가깝고, 그럼에도 굶는 일이 일쑤라는 점에서는 멀고도 멀다. 오늘은 금식에 나선 선승만큼 끼니와 먼 날이었다. 아침은 커피 한 잔, 점심은 뚜레주르 바게트 두 조각, 저녁은 아직. 정신없이 바빠서 배고픈 줄도 몰랐다가 하루가 다 가 버렸다. 그날그날 교정을 봐야 하는 원고가 밀릴라치면 밥 먹을 시간은 자체 반납이나 다름없다.     


이럴 때는 시간에 따라 선택지도 달라진다. 모니터의 시계는 8시 13분. 열두 시가 넘어서 허기가 지면 모를까, 정신이 들었을(?) 때가 비교적 이른 시각이라면 갈 만한 곳은 많다. 근처에는 순대국밥집도 있고 백반집도 있다. 만두집, 퓨전 볶음밥집, 중식당에 혼자 먹을 수 있는 1인 파스타 가게도 문을 닫지 않았을 시간이다. 뭘 먹지, 뭘 먹을까? 휴대폰을 켜고 고민하다가 문득 바탕화면의 앱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결정했다.     


아, 오늘은 브런치다.

꼭 브런치 연재 첫 메뉴라서 브런치로 정한 건 아니고.






브런치의 사전적 의미는 아침을 겸하여 먹는 점심 식사다. 지금 시간은 애프터 눈을 아득히 지났지만 그게 대수겠나. 대한민국의 카페 및 다이닝펍에서는 24시간 브런치 주문이 가능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처음 먹어 본 브런치도 점심을 한참 지났을 때였다. 나보다 두 살 연상이었던 그녀는 한강진역 근처에서 약속을 잡았다. 벌써 4년이 지났지만 메뉴도 정확히 기억난다. 나는 소시지 두 개와 스크램블 에그, 치즈와 버섯과 아스파라거스, 그녀는 피시 앤 칩스에 카프레제 샐러드. 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처음 먹어 본 브런치라서일까, 그 때 그 사람과 이제는 만날 수 없게 되어서일까.



가는 길에 있는 스타벅스. 서울 시내에서 스타벅스를 찾기란 백 원짜리 동전을 줍기보다 훨씬 쉽다.




















대충 옷을 주워 입고 집을 나가서, 쭉 걸어올라가면 역삼역이 나온다. 정확히는 국기원사거리 방향. 이 근처에는 언제나 괜찮은 카페가 있었고, 사라졌고, 다시 생겼다가 또 사라지곤 한다. 오늘 가려고 하는 브런치 카페도 그 중 하나다. 이름은 413프로젝트, 발코니로 스며드는 빛과 희미하게 부유하는 햇살 덩어리를 바라보면서 커피와 브런치를 즐기기에 딱 좋은 카페다. 가격은 일반 카페에서 판매하는 브런치보다 2,000원~3,000원 가량 비싼 정도. 대신 전문성, 플레이팅, 맛 모두 그만한 값어치는 한다. 예전에 한창 자주 올 때는 아보카도 스테이크 버거와 루꼴라 샐러드가 가장 맛있었다. 그리고 도착 직후, 나는 치명적인 난관에 봉착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오늘은 재고 소진으로 조기 마감이라서요."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브런치 시간을 보면 맞는 말이지만...)



원래는 몇 시에 마감이에요? 묻자 여덟 시까지가 라스트 오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방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슬금슬금 뭘 먹을까,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얘기다. 더 억울한 것은 날 제외하고 홀에 있는 모든 손님들이 식사 중이었다는 점이다. 올라가는 동안 테이블들을 훔쳐보자 조만간 재방문해야 할 이유가 눈과 귀와 코로 스며들었다. 나의 루꼴라, 파스타, 버섯, 그 외 기타 등등아, 일찍 오지 못해서 미안해.     



카페의 외관은 덩굴로 휘감긴 펜션 같다. 오늘은 주차장에 주차된 차들까지 북적북적해서, 정말 펜션 같은 뷰가 만들어졌다.



귀여운 명함과 진동벨. 이곳의 시그니쳐는 우물에 매달린 두레박이다.


 

 

올라오는 계단, 그리고 재즈가 흘러나오는 전축. 전구 주변을 드라이플라워가 꽃다발처럼 감싸고 있다.



 내부의 분위기는 꼭 중세 성과 벽돌집을 합쳐 놓은 느낌이다. 벽은 전부 벽돌이고, 거친 질감의 시멘트 노출벽과 예쁘게 쌓인 벽돌들이 패턴을 형성한다. 얼핏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분위기는 건물 내외관을 가리지 않고 인테리어된 화분의 풀, 피어난 꽃, 따뜻한 주황빛 조명과 거꾸로 매달린 드라이플라워가 환기한다.           




내가 앉은 자리의 뷰와 생자몽 주스. 음료 밑에 카페 명함을 코스터처럼 비치해 봤다.




브런치의 꿈이 무산됐으니 시킬 건 음료뿐이다. 고심 끝에 주문한 생자몽 주스는 목이 긴 컵에 꽉 차도록 나온다. 내가 생과일주스에서 점수를 주는 기준은 딱 두 가지다. 첫째는 과육이 얼마나 많이 들어갔나, 둘째는 들어간 과육이 신선한가. 오늘 나온 생과일주스는 10점 만점에 8.5점 정도. 길거리의 테이크아웃 카페들을 보면 정말 주스로 사회환원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사장님들도 계신데 이곳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물론 만족도를 느낄 만큼은 충분. 컵의 6~70%를 채운 과육은 신선하고, 씹는 맛도 제법 충실하다.      



나오면서 본 야외 정원. 분위기는 좋지만 오 분 이상 앉아 있으면 모기들이 브런치 파티를 벌일 것이다.



40분쯤, 카페를 구경하며 주스 한 잔을 다 마신 다음 일어섰다. 돌아오는 길에 어디라도 들어가서 저녁식사를 할까 했지만 기각. 저 주스 하나가 뭐라고 배고픔이 다 가셨다. 먹고 싶었던 음식 대신 다른 요리로 배를 채우는 건 혼밥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조만간 종주할 플레이트 로드에는 꼭 제 2, 제 3의 예비 코스를 만들기로 했다. 평일 낮에 혼자 출격해서 이태원을 터뜨려 버릴 것이다. 특히 우X밥상, X카밥상, 우카X상 등등...



(이래 놓고 그날 새벽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소설가는 언행불일치의 족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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