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부터 본론이다. 졸리 프로그의 세 번째이자 최고의 매력은 식당이다. 꼭 숙박을 하지 않아도 깐짜나부리를 여행하는 많은 여행객들이 졸리 프로그의 식당에 식사를 하러 온다. 이유는, 싸기 때문이다. 말도 못하게 싸다. 스테이크가 고작해야 3천 원에서 4천 원 정도였다. 1999년도의 일이다. 지금은 얼마일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게다가 메뉴가 거의 김밥천국 수준으로 다양하다. 볶음밥이나 볶음국수를 비롯한 태국 요리에서부터 스파게티나 피자, 팬케이크 같은 서양 요리도 웬만하면 다 된다. 온갖 과일 주스도 다 된다. 심지어 모든 요리가 웬만하면 다 맛이 있다. 최고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이 정도면 가격 대비 훌륭하다. 불가사의한 식당이다.
하지만 종업원들은 불친절하다. 손님을 거의 파리 취급한다. 무표정한 얼굴에 귀찮은 태도로 요리를 테이블 위에 던지다시피 한다. 태국 사람들은 대개 친절하고 순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업소의 종업원들은 불친절하다. 친절하기 힘들 것이다. 이 사람들도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들에게 세계 각국의 방식으로 당할 만큼 당했을 것이다. 어느 날 밤 식당에 갔더니 어린 이스라엘 남녀들이 술에 잔뜩 취해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는 천방지축들이었다. 직원들의 태도도 이해가 되었다.
친절하건 불친절하건, 나야 음식에 파리만 들어 있지 않으면 된다. 나는 유명한 졸리 프로그의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3천원짜리 스테이크는 도대체 어떤 맛일까. 음, 그건…… 엄청나게 질긴 맛이었다. 운동화 밑창의 고무를 구운 맛이나 비슷했다.(물론 먹어본 적은 없다.) 운동화 밑창의 고무에 소고기 다시다를 뿌리면 이런 맛일 것이다. 아무리 씹어도 삼킬 수가 없는 맛이었다. 그럼에도 소고기가 귀한 나라에서 온 나는 감사히 먹었다. 어릴 때부터 비싸다고 소고기를 안 사주는 가정에서 자란 나는 이게 어디냐고 생각하면서 먹었다. 속으로는 계속 ‘이건 소고기야. 이건 소고기’라고 자기최면을 걸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스테이크의 정체는 물소 고기였다. 기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논에 서 있는 물소를 보았는데 회색 갑옷 같은 피부에 멋진 뿔을 가진 소였다. 그냥 보아도 맛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정확하게 운동화 밑창의 고무 맛이 날 것 같아 보였다.
졸리 프로그의 게스트하우스는 저렴하고 낡고 지저분하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humble’ 하다. 겸손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나는 그곳의 주인이 아니니까 겸손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그렇다. 물론 분위기는 좋다. 2층짜리 목조 가옥이다. 방은 꽤 넓다. 화장실도 딸려 있다. 문을 열면 바로 그 예쁜 잔디 정원이 보인다. 정원사 아저씨가 매일 같이 잔디에 물을 주고 나무를 관리한다. 1층은 포치를 쓸 수 있고, 2층에도 발코니가 있다. 포치에는 빨래도 널 수 있고 나무로 만든 테이블도 놓여 있다. 포치에 앉아 있으면 콰이 강의 시원하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대나무 대 위에 빨래를 널어 말린다. 한 시간이면 기분 좋게 말라 있다. 밤에는 테이블에 앉아서 불을 켠 채로 책을 읽기도 했다.
하지만 방 안은 빛이 거의 들지 않아 어두컴컴하다. 한낮에도 어둡다. 눅눅하기도 하다. 더운 나라라 일부러 집 안에는 해가 들지 않도록 지었을 것이다. 침대는 한가운데가 푹 꺼져 있어서 자다가 가운데로 몰리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덩이나 수렁에 빠진 기분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기어 나와야 할 정도다. 아마도 몇 십 개국에서 온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이 침대 위에 누웠을 것이다. 잠만 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중에는 살아서 상종도 하기 싫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이스라엘 젊은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나쁜 사람들, 어쩌면 살인범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숙소의 침대라는 것은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이 그 위에 누웠겠지만, 바로 전날 밤만 해도 어떤 커플이 뜨거운 밤을 보낸 흔적이 남아 있겠지만, 그 흔적을 완벽히 감춰야 한다. 그것이 숙소의 침대의 의무이다. 언제나 새로 도착한 여행자가 제일 먼저 누워 보는 침대인 척해야 한다. 졸리 프로그의 침대는 바로 그 점에서 낙제다. 밤새 가운데 구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기를 쓰고 양쪽 가장자리에 달라붙어야 했으니까.
화장실은 방보다 더 끔찍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어둡고 긴 공간에 변기 하나와 샤워기 하나가 달랑 달려 있던 기억이 난다. 방충망도 없이 창문이 그대로 뚫려 있는 데다 강가라 그런지 벌레가 엄청나게 많았다. 도마뱀이야 귀여운 수준이고, 커다란 메뚜기 비슷한 벌레들도 자주 출몰했다. 최대한 빨리 샤워를 마쳐야만 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소음이었다. 밤에 자다가 누가 우리 방문을 열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소리에 기절할 것처럼 놀라서 벌떡 일어났는데, 알고 보니 2층을 쓰는 사람들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였다. 그 사람들의 발소리는 물론이고 목소리까지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렸다. 층간소음이 한국의 아파트는 비교할 수준조차 못됐다. 숙소에 묵는 내내 잠을 설쳤다.
졸리 프로그는 예쁜, 귀여운, 멋진 개구리라는 뜻이다. 누가 이런 이름을 붙여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센스가 좋은 것 같다. 나중에 나도 혹시라도 식당 같은 것을 열게 된다면 꼭 동물 이름을 넣고 싶다. 나는 고래를 좋아하니까 고래 식당일지도 모른다.(대왕오징어에 꾸준히 사로잡혀 있는 아들은 몇 년째 짬이 날 때마다 인터넷으로 대왕오징어 사진을 검색하는데, 아마 그 아이가 식당을 차린다면 당연히 대왕오징어 식당일 것이다.)
때로 인생의 구덩이나 수렁에 빠진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누군가 우리 방에 침입한 것 같은 소리에 겁에 질린 채로 침대 가운데에 빠지지 않도록 기를 쓰고 가장자리로 달라붙어야 했던 악몽 같던 졸리 프로그의 밤들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졸리 플로그에는 누구에게나 공짜이던 콰이 강의 따뜻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예쁜 잔디 정원 위에서 뒹굴던 낮들도 있었다. 식당에는 운동화의 고무 밑창을 씹는 것처럼 질겼던 물소 고기 스테이크와 불친절한 직원도 있었다.
죄 없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갔던 철도도 있었고 그들이 잠든 소박하고 아름다운 묘지도 있었다. 그 철도 위를 달리던 기차에는 목에 카메라를 건 채로 감탄사를 내뱉던 순진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모든 것들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