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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희 May 18. 2016

내 좋은 친구들에게

우리는 사실 별로 잘하는 것이 없는 인간들인지도 몰라.

M. 너는 나에게 수년간 빵 만드는 것을 배워 볼까 생각한다고 말했었지. 나는 이제껏 너에게 그러기를 응원해 마지않았고. 하지만 이번에 내 생각은 좀 달라졌어. 



나는 네게 말했지. 네가 만약에 빵을 정말로 굽고 싶었다면 너에게는 그럴 수 있는 수많은 기회들이 있었다고. 너는 이사를 하면서 작은 오븐도 하나 샀고 너에게는 시간이 아주 많을 때도 있었고 지금보다 돈을 잘 벌던 때도 있었지. 그리고 사실 밀가루와 이스트를 사는 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일 중 가장 돈이 덜 드는 일에 가까워. 또 인터넷을 뒤져 빵 만드는 레시피를 검색하는 것 또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일 중 가장 힘이 덜 드는 일에 가깝지.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았어. 너는 그 기회를 잡지 않았어. 그렇다고 너를 비난하는 건 아니야. 그저 너에게는 그 정도로 빵을 만드는 일에 대한 열정이 없었던 거지. 그게 비난받을 만한 일은 아니잖아? 우리가 모든 걸 다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S. 너는 나에게 글을 써보려고 한다고 말했었지. 아마 지난 십 몇 년 간 너는 그 이야기를 해왔을 거야. 그리고 이제 비로소 제대로 써보려고 한다고 말했었지. 그러기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버는 일조차 하지 않겠다고 말했었지. 그런 일을 하게 되면 글을 쓰지 않을 핑계가 생길 것 같다고. 


내 생각은 말이야, S, 네가 정말로 글을 쓰고 싶었다면 너에게는 글을 쓸 수많은 기회들이 있었어.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았지. 


S, 나이가 들면서 재능에 대한 내 생각은 많이 달라졌어. 재능은 손만 대도 빵의 온도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게 아냐. 재능은 펜만 들면 아름다운 문장을 빵처럼 구워내는 것도 아니고. 재능은 손만 대도 빵의 온도를 느낄 수 있을 단계에 이를 때까지, 지치지 않고 연습하고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가 시켜서가 아니라 단지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것이겠지. 



펜만 들면 아름다운 문장이 빵처럼 구워진다고? 그런 사람이 정말로 존재하기는 한 걸까? 이 세상의 작가들은 모두 온갖 유혹과 괴로움과 게으름을 떨치고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 수 있는 불굴의 의지력을 가진 사람들이야. 그리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쓰고 또 쓸 수 있는 사람들, 엉덩이가 지독하게 무거운 사람들이라고. 


너에게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런 재능이 있느냐고 하면, 있다고도 할 수 있어. 하지만 진짜 재능은 그런 것이 아니기에 나는 너에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 미안해. 하지만 우린 ‘뭐든 해봐. 잘 될 거야.’라고 말해 주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잖니? 



사실은 M과 S, 나도 그런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 무엇을 해야 할까. 나에겐 어떤 재능이 있는 걸까? 과연 재능이란 게 있는 게 하긴 한 걸까? 20대일 때는 정말 몰랐지. 내가 마흔을 코앞에 두고도 이런 걸로 고민을 하고 있을 줄은. 


할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았던 그 일들은, 실제로 하게 되었을 때 별로 좋지 않았어. 결국 내 인생은 이것저것 들쑤시기만 하다가 이대로 끝나는 걸까, 라는 생각에 우울해지는 적도 많지. 


M과 S, 우리는 사실 별로 잘하는 것이 없는 인간들인지도 몰라. 우리는 대단한 일을 할 수도 없을 거고, 대단한 사람이 될 수도 없을 거야. 그래서 그냥 순간순간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야. 


그래, 그거야. 우리는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해. 일할 기회가 생겼다면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하고, 놀 기회가 생겼다면 최선을 다해 놀아야 하고, 배울 기회가 생겼다면 최선을 다해 배워야 해. 그리고 다른 것들은 생각하지 않는 걸로. 그 다른 것들, 우리가 이룰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걸로. 이룰 수 있었다면 언제든 우리는 이루었을 테니까. 

쉽지는 않은 일이지. 나도 알아. 



후기 

M은 드디어 빵 만들기를 배우고 있다. 그 애가 내게 자기 힘으로 구운 빵을 한 봉지 가득 가져와서 빵 만들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이야기했을 때, 나는 정말로 기뻤다. 나는 그 애와 무려 38년이나 최고로 친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 애가 그 정도로 열정적인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더 나이가 들어 둘이서 정답게 빵을 구울 날을 고대한다. 


S는 여전히 글을 쓰지 않고 있다. 하지만 S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다정한 친구다. 나는 S와 아마도 평생을 함께하리라 생각한다. 다들 아시겠지만, 그 정도로 믿을 만한 친구를 갖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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