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이 위협받고 있다
23시 | 슬슬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오늘은 아니기를 기도하면서.
23시 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며 나의 긴장감은 분노로 변한다.
자정 | 점점 커지는 말소리와 음악 소리. 나의 분노는 억울함으로 승화 중이다.
1시 | 이게 무슨 프로그램일까 고민한다. 억울함과 짜증과 분노가 뒤섞인다.
2시 반 | 불면증에 좋다는 약과 귀에 쑤셔넣은 이어폰으로 겨우겨우 잠을 청했다.
요 몇일간, 비슷한 시각에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유독 내 방에서만 소리는 잘 들린다. 영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는 거의 내 나이만큼의 나이를 먹었다.오래된 만큼, 수도도 방음도 낡았다. 샤워하는 동안 물은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하기 일쑤고, 청소기만 돌려도 드르륵 소리가 울리는 건 덤이다.
그래도 내 기억 속에서 우리집은 이 곳 하나 뿐이고, 어딘가에서 돌아와 잠을 청할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이었다.
휴식의 공간이'었'다. 층간소음에 위협받기 전까지는.
늦은 밤 잠기운이 충만했지만,
요란한 환호소리나, '야 이 XX야' 라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나, 화려한 오케스트라 소리에 잠기운이 달아나 버릴 때, 그리고 그것이 내가 의도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다른 사람이 TV를 보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을 때
나의 휴식을 위한 공간, 나의 집이 위협받고 있음에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고 집에 돌아와 TV를 보며 낄낄대며 잠에 드는 것, 나쁘지 않은 일상이다. 올해 트렌드 키워드도 소확행(작은 행복을 잡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행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행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천장에 대고 야동을 틀어줘라' '천장에 우퍼를 달아라' 등등, 너도 똑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조언 뿐이다. 나의 복수를 위해 또 다른 사람의 행복을 뭉개보자고? 이건 아니다.
사실 층간소음은 누가 내는지 모른다. 그래서 무작정 윗층 주민을 미워할 수도 없는 일이다.
윗집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고 찾아갔더니 윗집에서도 '도대체 누구야?' 하면서 나왔다는 이야기,
옆집인 줄 알았더니 사실 두 층이나 아랫집에서 나는 소리였다는 이야기, 흔히 들을 수 있는 사례다.
누가 이 소리를 내는지 알 수 없으니 귀마개를 꽂고 자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왜 예의가 없는 아무개 씨 때문에 내가 고통받아야 하는가, 라는 억울함만 차곡차곡 쌓이는 중.
오늘은 제발 층간소음의 굴레에서 벗어나 꿀잠을 잘 수 있기를 기대해 보며,
간절하고 간곡하게 읍소문을 붙여볼까 생각 중이다.
"TV는 제발 조용히 봅시다. 이어폰이 없다면 빌려드릴게요." 라는 내용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