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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추임새 May 03. 2020

감정이 메말라졌다.

31살은 원래 이런 건가요.

어렸을 적 내 꿈은 화가였다.  

아. 조금 있어 보이는 단어로 말하자면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다. 

글 쓰고 그림 쓰며 대로변 건물 1층 유리벽으로 오픈된 내 작업실과 갤러리를 운영하며 

와인잔 들고 있는 그런 영화 같은 인생을 상상하기도 했다. 

왜. 지금이라도 못할 거 또 없지 않은가. 

그래서 1년에 한두 번은 옛날 일기장 펼쳐 보듯이 내 꿈을 다시 시작할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회사일이 바쁠 때 혹은 감정적인 일들이 파도처럼 몰아칠 때면 

그림을 틈틈이 그려야겠다는 꿈은 너무 쉽게 사라져 버리고 만다. 

사는 게 바빠서, 주말 아침에는 좀 더 자고 싶어서, 꿈을 위해 달려 나갈 때엔 유혹들도 참 많다.  

나는 아직 인생 절반도 살지도 않았는데 갈길이 참 멀고도 먼 것 같다. 


젊을 때 더 많이 부딪히고 다양한 걸 경험해보라는 말은 열정에 불이 붙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는 것 같다. 마치 대학시절에 남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면 세상 무너질 듯 눈물 콧물 짜낸다면,

지금 31의 나에게 헤어지자고 하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우리가 인연이 아니었겠지>

하며 수긍이 될 것 만 같다. 

세상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것도 알고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나는 이제 안다. 

이 안정적인 느낌은 좋은 것만도 아니다. 

어른이 된 것 같아도 조이스틱으로 조정하는 감정 컨트롤러가 된 것 같아 불편하다. 


이제는 슬픈 영화를 봐도 노래를 들어도 그 감성적인 떨림들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 어른이 되었다는 건 큰 동요 없이 감정 조절이 쉽다 보니 감정이 메말라져 버리기도 한다.

영감을 불어넣는다고 여행 가서 사진도 찍고 디자인 서적에 파묻혀 살던 나는 없다. 

지속적으로 앨범 작업을 하고, 정기적으로 전시를 준비하는 예술가들은 영감을 받기 위해 

이 감정의 샘을 채우는 방법을 훈련하고 있을 텐데, 

슬럼프란 말은 열심히 하는 사람의 훈장이지 나 같은 존버와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다. 

존버로서의 삶에서 자투리 시간을 내는 그들을 내가 과연 따라갈 수 있는지 

덜덜 떠는 다람쥐가 되어가는 내 기분을 남들은 알고 있을지. 


이렇게 감정을 쏟아내다 보면 그림이 그리고 싶다. 무슨 그림이 그리고 싶은지는 나도 모른다.

무작정 스케치북 하나랑 물감을 산다. 

어떤 색을 살지 고르는 순간, 메말랐던 감정이 한 방울 차오른 것 같다. 

그래. 갈 길이 멀어서 메마른 감정을 뜨겁게 만들기에 시간이 아주 많아. 


*몇 년 뒤 이 글을 읽을 때 상당 부분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네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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