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골목길에서나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구멍 가게는 보통 우리의 기억 속에서 ‘옛날’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른다. 아이들은 군것질거리를 사고, 어른들은 담배를 하나 사러 들르는 그런 곳.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구멍 가게를 단순한 소비 공간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구멍 가게는 시간 여행의 기계다. 아무도 모르게 우리를 과거로, 혹은 아주 먼 미래로 데려가는 은밀한 통로 말이다.
몇 주 전, 서울의 한 오래된 구멍 가게에 들어갔다. 문짝은 삐걱거렸고, 안쪽에 쌓인 먼지는 그곳의 나이를 짐작하게 했다. 진열대 위에는 20년 전에 유행하던 과자들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고, 카운터 뒤의 주인 아저씨는 눈을 감은 채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 공간에서 나는 문득 든 아저씨의 라디오 소리와 함께 멍하니 서 있었다. 진열대를 따라 걷다 보니, 유리병 안에 들어 있는 알록달록한 사탕들과 한참 전 어린 시절에 봤던 포장지 디자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손끝으로 그 포장지를 만지며 문득 든 생각은, 이 구멍 가게가 단순히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여기는 기억을 파는 장소였다.
“어린 친구가 이런 데는 잘 안 오는데,” 주인 아저씨가 느릿하게 말을 건넸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세월의 무게가 묻어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웃으며 말했다.
“옛날 느낌이 좋아서요. 요즘은 이런 데 찾기 힘들잖아요.”
아저씨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추억을 사러 와. 과자보다 그때의 시간, 냄새, 기분 같은 걸 다시 느끼고 싶은 거지.”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깨달았다. 구멍 가게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담아주는 일종의 시간 여행 기계였다. 낡은 포장지와 오래된 상품들은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스위치였고, 그곳에 머무는 순간 우리는 잠시나마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 공간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일까? 아니면 미래를 보여주는 창일 수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언젠가 이 구멍 가게마저 사라지고, 완전히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떨까? 그들은 이 작은 공간을 보고 과거의 인간성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지 않을까? 디지털과 자동화 속에서도 따뜻한 대면의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지 모른다.
나는 작은 사탕 한 봉지를 골라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이거 주세요.”
아저씨가 느릿하게 봉투에 담아주는 동안 나는 눈으로 가게 구석구석을 훑었다. 이 공간은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교차점이었다. 나처럼 우연히 발을 들인 사람들은 여기에서 단지 추억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잃어버린 무언가를 잠시 되찾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가게 문을 나서는 순간, 겨울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손에 든 사탕 봉지를 보며 웃음이 났다. 나는 구멍 가게에서 단지 과자를 산 게 아니라, 과거의 나와 잠깐 대화를 나누고 나온 듯했다. 그리고, 아마도, 미래의 누군가를 향해 작은 메시지를 남긴 듯했다.
조용한 골목길, 낡은 간판, 그리고 라디오 소리가 흐르는 구멍 가게. 그것은 단순한 가게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의 기록실이자 시간의 비밀 통로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과거를 만지고, 현재를 느끼고, 미래를 상상한다. 구멍 가게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살아남아 영원히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