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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월 Dec 02. 2024

지하철에서 만난 익명의 예술가


지하철을 타면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무표정한 얼굴, 스쳐 지나가는 광고판, 그리고 가끔씩 들려오는 기계음.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내가 앉은 자리 맞은편, 창가 쪽에 앉은 사람은 다른 세계에 있는 듯 보였다. 그는 작은 수첩을 펼쳐 놓고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종이에 고정되어 있었고, 손끝은 숨도 쉬지 않는 듯 정확하게 움직였다.


호기심이 일어났다. 대체 무엇을 그리고 있는 걸까? 그의 손은 지하철의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매끄럽게 움직였다. 사람들의 시선은 그를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그가 그리는 세계에 매료되었다.


몇 정거장이 지나자 그는 수첩을 잠시 닫고 눈을 들어 내 쪽을 바라봤다. 순간, 나는 피하지 않고 그의 눈을 마주쳤다. 그의 얼굴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달랐다. 무언가를 창조해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이었다.


그는 내가 묻기도 전에 수첩을 내밀었다. 수첩 속에는 지하철 안 풍경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 지하철과는 달랐다. 각 사람의 얼굴에는 표정이 더해져 있었고, 광고판에는 낙서가 섞여 있었다. 누군가는 책 속에 들어가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창문 밖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건 당신입니다.”

그가 내게 보여준 그림 속, 나는 상상도 못한 모습이었다. 내가 그린 것이 아닌데도 나였다. 그는 내 얼굴을 보고 내 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알아챈 듯했다. 그 순간, 나는 그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하는 예술가였다.


다음 정거장에서 그는 일어나 조용히 내렸다. 그의 자리는 텅 비었지만, 그가 남긴 세계는 나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날 이후로 나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들 각자의 이야기, 표정,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세계를 상상하며.


예술가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는 단지,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 익명의 예술가 덕분에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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