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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Aug 11. 2024

100일의 기적? 100일의 기절!

이성적인 판단으로 아가를 낳을 순 없다.

오늘은 아가님이 태어나신 지 101일이 되는 날이다.


100일의 기적이라고 이때쯤이면 아가들이 12시간씩 통잠을 잔다고 하였는데, 통잠은커녕... 어젯밤 아가님은 새벽 3시 반에 기상하시어 눈을 말똥말똥하게 굴리며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어 나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ㅡㅅ ㅡ.. 그리곤 5시쯤 미친 듯이 울어재끼셔서 허겁지겁 분유를 먹이면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맞이했다. 후....


100일의 기적

아가가 태어나기 전부터도 수도 없이 들어왔던 그 단어. 그래서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는데, 막상 그날이 되니 오히려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어서 허탈하기만 하다. 하지만. 하지만.... 아가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되었다. 그렇다...! 3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 곰곰이 돌아보니 그러하다. 나의 삶은 180도,,, 정말이지 A부터 Z까지, 알파와 오메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몽. 땅. 바뀌었다.


하루 스케줄은 그녀의 식사시간과 취침시간을 토대로 굴러간다. 아니, 하루 스케줄뿐인가? 앞으로의 계획도 몽땅 아가님을 중심으로 흘러가게 된다. 너무나 당연하게 이번 여름 여행은커녕, 당장 동네 마실조차 갈 수 없다. (갓뎀. 날씨가 너무 뜨거움) 이러한 엄청난 희생을 기꺼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희생을 많이 해야 해서 놀랬고, 그리고 이를 희생으로 여기기는커녕 너무나 기꺼이 즐겁게 (?) 하게 되는 나 자신에 두 번 놀라게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걸.

세상 무해한 빵긋- 웃음 한방에 사르르 녹아버려서. 그냥 네네. 무엇이든 바치겠나이다.. 이렇게 돼버리는 걸.


그렇다. 이성적인 판단으로 아가를 낳을 수는 없다.

난 꽤나 확고한 딩크였다. 일단 아가를 좋아하거나 귀여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불과 몇 년 전에 임신하는 꿈을 꾼 적이 있었는데 그걸 악몽이라고 묘사할 정도니 말이다. (!!!) 그뿐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자로서 임신. 출산. 육아 일련의 과정은 정말이지 엄청난 시간. 돈. 에너지. 영혼이 갈리는 과정임은 명확하다. 잃는 것은 명확한데 얻는 것이 그다지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게 엑셀 차트 챠르륵 펼쳐서 출산과 육아의 장점과 단점을 좌르륵 써본 후에, 아 이건 안 하는 것이 맞다!라고 꽤나 똑똑하고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의기양양했었다.


그러했던 내가 이렇게 100일 된 아가를 안고 쩔쩔매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아가를 위해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치며, 매일을 울고 웃으며 보낸다.


맞다. 출산과 육아에는 단점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단 한 개의 장점이 있는데, 그게 999개의 단점을 몽땅 다 분쇄해 버리는 가장 거대한 한방이라는 것을 몰랐지. "나 자기 자신보다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존재가 생긴다는 것" 


며칠 전에 아가 예방접종을 맞았다. 맞기 전엔 그 쪼끄만 몸뚱이에 어떻게 주삿바늘을 꼽는다는 건지 상상이 안되고, 심지어 귀엽고 웃기다고 (!?)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정작 당일 의사쌤이 그 코딱지에게 주삿바늘을 꼽자, 온몸이 빨개지면서 자지러지게 우는 아가를 보니까... 내가 대신 아프고 싶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나의 아가..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비로소 이해가 된다. 나 자신보다 사랑하는 존재가 생긴다는 게 어떤 뜻인지도…


이때까지 알던 행복을 훌쩍 뛰어넘는 벅차오르는 감정. 차원이 다른 행복. 새로운 세상.

이런 세상을 늦게나마. 비로소 알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다.


100일의 기적..이라는 말이 맞긴 하지.

너무너무너무너무 피곤하긴 하지만.

쿰챡거리는 따끈한 아가를 안고, 세상 무해한 웃음을 보면, 이게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

와. 나 엄마 된 것 맞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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