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것 같다. 뭘 봐도 아무렇지 않다. 그러니까, 점점 로보트가 되어간다. 감정이 돌이 돼간다. 아무렇지 않은 게 대부분이라 놀랍다. 원래도 그런 경향이 짙은데, 점점 심해진다. 좋은 것 같다고 생각은 하지만 좋은 걸까 의구심을 갖기도 한다. 인간의 감정으로 생활할 수 없어지면 어쩌지? 근데 그건 성가시다. 인간의 감정이란 건 너무 성가신 존재라서 귀찮고 갈등을 만든다. 그래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주는 결속도 있다는 걸 알아서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점점 감정이 메말라 간다. 이 문장조차 유치하다. 그냥 그런 게 없는 사람같다.
길을 잃은 기분이 든다. 내가 세운 꿈을 생각한다. 갑자기 그 꿈을 멀게 느낀다. 녹음기가 필수가 된 삶이 안정적인 걸까?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게 당연한 삶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걸까? 완벽한 타자들 속에서 나는 홀로 침잠한다. 감사한 마음을 자꾸 생각하려 한다. 과거의 나에게 묻는다. 지금 나를 보면 어때? 뭐라 할지 알 수 없다. 남의 일인 것처럼 생각하고 묻는다. 난 이런데, 너라면 어떻게 할래? 글쎄.
또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지금 나는 고장난 것 같다. 도파민이 아예 없어 고장난 건 아닐까? 궁금하다. 낯설다. 인파 속에서 외롭지 않은 것처럼 키보드를 도닥인다. 내가 그리워하는 게 뭔지 명확히 아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 마냥 긍정적인 것도 좋은 게 아니라는 치들의 말이 요즘 들어 자꾸 귓가를 맴돈다. 안다. 그 놈의 긍정주의가 나를 이끌어 온 걸. 투덜대며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때론 욕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 착한 년의 역할을 버렸다면 어땠을까?
아 역시나 그런 나는 상상할 수 없다. 근데 이젠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대개 알면서 모르겠다고 하는 게 있는데, 지금의 경우는 그게 아니다. 정말 모르겠다. 돌아오라는 선배, 동기, 후배, 스카우트 제안을 준 회사들, 근데 왜 이러고 있나? 이제 지치고 늙은 걸까? 난 정말 모르겠다. 그냥 모든 게 덤덤한 로보트가 되어간다. 아무 것도 내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내가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이 나를 다치게 할 순 없으니까. 이 말은, 겪어봐야 안다. 놀랍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