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게 좋은 거다. 그러려니 하자. 대개 말같잖은 상황과 인간을 만나면 하게 되는 말이다. 말만 이렇게 하고 절대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이성이 답을 내릴 때까지 보류한다. 요즘 유행어대로 '이븐(even)'하게 판단내릴 뇌를 믿고 기다린다. 그러기 위해선 양식과 쉼과 환기를 줘야 한다. 지난해인지 지지난해인지 이제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일하다 쓰러진 후 그 후유증처럼, 일할 때면 늘 아픈 곳이 있다. 많이 아픈데, 아픈 척하지 않는 데 이골이 나서 그냥 산다. 그래서 아픈 걸 티내고 일에 지장을 주는 사람을 보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한다. 뭐 때문이냐면, 나도 내 몸을 생각해야겠다 싶어서 그 기준을 좀 알고 싶은 의미에서다.
자기 일이라면 하루도 참지 못할 거면서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나 티내지 않는 게 미덕인 삶을 살았고, 감사하게도 그런 걸 알아볼 수 있을 만한 눈을 가진 이들이 주변에 있었기에 그래도 품위있게 살 수 있던 것 같다. 남의 아픔을 알면서도 모른 체해주면서 살짝 위해주는 그 미덕과 품위. 그런게 당연한 것처럼 인식하고 주고받아왔으니 나는 얼마나 복받은 사람이었던가. 지금은 구덩이에 빠져있지만, 낭중지추라고, 드러날 수밖에 없고, 다시 내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란 걸 안다.
우습고 모순적인 건 한편으론 언제든 돌아갈 내 사람들이 있다는 걸 너무나 명백히 알고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기 위해 자꾸 끄적댄다. 이 애매한 상태를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아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근데 한편으론 내가 어렵게 얻은 평화다. 그걸 알고 감사해야 한다. 그렇게 나를 다그친다. 뭐랄까. 힘들지 않으면 이렇게 주절대지도 않겠지. 갈등하는 것 같다.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할지 말지. 놀랍게도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크다. 참 다행이지만, 언제 키가 기울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