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나라, 리카짱.
마지막 일본 여행은 2019년 5월, 홋카이도였다. 온천 마니아이자 음악 마니아, 커피 마니아로써 출장과 여행, 취재까지 반복하며 자주 찾을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 특히나 세계 2위의 음악시장이 일본이기에 한국 음악 산업계 종사자로서 반드시 우리 아티스트들을 진출시켜야 할 전략 국가이자 뮤직 페스티벌 부문에서는 취재와 벤치마킹의 대상이기도 했다.
대부분 팝 아티스트가 월드투어를 할 때 일본을 우선순위에 포함시킨다. 마돈나(MADONNA) 역시 2006년 리드싱글 ‘Hung Up’ 발표 후 진행한 월드투어 [Confessions Tour]에서 유일한 아시아 국가로 일본을 찾아 도쿄와 오사카에서 각 2회씩 공연을 펼쳐 약 25만 명을 동원했다(그중 한 자리는 내꺼!).
음반도 영미·유럽 CD를 일본이 수입 판매하는 가격보다 자국 생산 라이선스 CD가 2배가량 비싸기 때문에(제작 단가 자체가 비쌈) 외국 본사 차원에서 미공개 신곡이나 동영상, 보너스 트랙 등을 포함해 ‘Japanese Edition (일본 한정판)’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전략 출시했다. 이게 다 내수 시장에선 소장가치를 높이고, 전 세계 콜렉터들에겐 역수출 기회를 제공해 일본이 세계 음악 판매시장 부동의 2위를 굳힌 결과가 됐다.
커피는 또 어떠한가! 세계 스페셜티 커피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일본이다. 전 세계인들이 입문 단계부터 쉽게 접하는 핸드드립 용품만 해도 칼리타, 하리오, 고노, 킨토 등등 일본 브랜드들이다. 이곳 마드리드에서도 최근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약진하고 있다.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유럽에서 핸드 브루잉 커피나 스페셜티 커피 문화의 도입이 상당히 늦게 시작된 스페인이다. 지내는 동안 많은 카페를 방문했는데, 대부분 하리오의 제품을 이용해 커피를 추출하고 있었다.(서툴러 맛없었… 역시 카페 꼰 레체!)
마드리드에 있으면서 갑자기 왜 일본 얘기를 하냐면, OK 호스텔에서 며칠간 함께 지내고 있는 리카 때문이다. 아니, 좀 더 깊게 따져보면 지난 7월, 일제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과 아베 총리가 우리에게 경제 보복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어린 날 내 머리를 쓰다듬고 귀여워해 주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일제의 야만을 온몸으로 버텨낸 사람들이다. 큰아버지 큰엄마, 큰삼촌은 그 시대의 잔재와 한국전쟁, 민주화까지 견뎌냈다. 우리는 그 시절에 직접 살지 못했기에 전해 듣고 상상하며 분노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인간사가 험하다고는 해도 과거에 일본이 저지른 행위는 흉악해서 완전한 용서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현재의 잘못도 사죄하고 있지도 않으니까. 그래서 이번 경제 보복 조치에 작게나마 대항하기 위해 이곳 마드리드에서도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하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를 다시 떠올려보는 미쇼 씨다. 그런데 수많은 마드리드의 호스텔들 가운데 OK 호스텔, 그것도 같은 방, 심지어 침대 1, 2층을 나눠 쓰게 된 리카의 존재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혹시 그녀의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하진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하게 됐다. 그렇게 따지자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도 보았듯 분명 한국 사람을 몰래 도와준 일본 사람들도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리카의 가족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며 문화와 정서의 차이는 항상 느낀다. 그래도 천만다행인지 나와 관계했던 사람들, 친구들은 과거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했다. 사실 그렇지 않았다면 친구가 될 수도 없었겠지만. 리카를 방이 아닌, 이용객이 나밖에 없는 텅 빈 라운지에서 마주했다.
“리카, 너도 뉴스를 봤겠지만 지금 한국과 일본 사이가 더 심각해졌어…”
“네, 그래도 정치는 정치일 뿐이니까요.”
“실례가 되겠지만, 리카의 생각은 어때?”
“일본의 젊은 세대는 정부를 신뢰하고 있지 않아요. 이번에도 잘못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나 리카짱. 사실 젊은데도 안 그런 애들도 있더라고. 도쿄에 살지만 일본으로 돌아가면 그 유명한 후쿠시마(!!)에서 신혼생활을 이어간다는 서른 초반의 리카짱. 조용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반가운 동양인임과 동시에 시국적으로 위화감을 안겨 준 그녀는 내일 포르투로 떠난다.
“맞다, 그저께 레티로 공원에 갔다가 일본 작가의 전시를 봤어. 무료였어.”
“아 그래요? 누군데요?”
“이시다 테츠야. 그림 참 좋았는데 2005년에, 32살에 세상을 떠났데.”
“이시다 테츠야… 잘 모르겠지만 한번 찾아볼게요.”
리카 역시 스마트폰으로 작가에 대해 검색하곤 화풍에 화들짝 놀란다. 비엔날레 등에도 소개되고 이력은 굉장히 화려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비행시간에 늦지만 않으면 꼭 들러보고 싶다며 아사히에서 나온 과일맛 사탕을 내게 건넸다. 그리고 지내는 동안 마드리드의 여러 가지를 추천해줘서, 상담해줘서, 일본말을 해줘서 캄사하므니다. 덕분에 살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호스텔만 오면 뭔가를 살리는 사람인가? 고장 난 사물함도 살리고, 꽉 막힌 수채 구멍도 살리고, 용암수처럼 역 분출하는 해바라기 샤워기도 살리고, 2060 호스텔에선 진짜 사람을 살리기도 했다.
“언니는 내일 어디로 가요?”
“알깔라 데 에나레스 (Alcalá de Henares).”
“네? 그게 뭔데요?”
“소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의 고향이래. 마드리드에서 전철로 40분 걸려.”
“거기 뭐가 있는데요?”
“엄청나게 엄청난 게 있어!! 이거 봐봐.”
레티로 공원에 대한 일기를 쓰면서 정문 앞 개선문 ‘푸에르타 데 알깔라(Puerta de Alcalá)’에 대한 마드리드 관광청의 설명글도 보게 됐다. 마지막 한 줄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다. ‘돈키호테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고향이자 역사적인 대학도시 알깔라 데 에나레스로 이어지는 개선문이었다.’
나는 자연스레 알깔라 데 에나레스라는 도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실로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됐다. 바로 이번 주가 세르반테스의 생일을 기념해 열리는 ‘메르까도 세르반티노(Mercado Cervantino)’ 축제 주간이라는 사실! 심지어 내일이 피날레다. 지난 행사 갤러리를 보니 동네 전체가 중세시대로 돌아가 있다. 테마 열차도 운영하고, 퍼레이드 하고, 장터도 서고 스케일이 엄청나구나!! 마드리드에서 멀지도 않으니 근교 여행으로 딱 좋아 보였다. 그래서 또 즉흥 여행을 설계하게 된 우리의 미쇼 씨. 리카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산뜻하게 알깔라 데 에나레스의 국영호텔, 파라도르(Parador)를 예약한 참이었다. 어디 한번 고오급지게 중세시대로 돌아가 보자!!
다음 날 아침 리카와 나는 서로의, 앞으로의 여정을 응원하며 ‘사요나라’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