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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7. 껐다 켜면 되는 것들

by 여철기 글쓰기

오늘 아침 노트북을 켰다. 와이파이가 안 잡혔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됐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리 기다려도 연결되지 않았다. 이상한 건 옆자리 동료 노트북은 멀쩡하다는 거였다. 핸드폰도 와이파이를 잘 잡고 있었다. 내 노트북만 문제였다.


[별별 방법을 다 써봤다]


먼저 와이파이를 껐다 켰다. 안 됐다. 노트북을 재부팅했다. 여전히 안 됐다.

ChatGPT에게 물었다. "노트북 와이파이가 안 잡혀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친절하게 5가지 해결책을 알려줬다. 네트워크 설정 초기화, 드라이버 업데이트, 문제 해결사 실행, IP 주소 갱신, 방화벽 확인.

하나씩 다 해봤다. 네트워크 설정을 초기화했다. 여전히 안 됐다. 드라이버를 삭제하고 최신 버전으로 다시 깔았다. 그래도 안 됐다. Windows 문제 해결사를 돌렸다.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라는 쓸모없는 메시지만 떴다.

40분째 씨름하고 있었다. 오늘 작업해야 할 게 산더미인데 와이파이가 안 잡혀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다. 짜증이 났다.


[혹시나 싶어서]


그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혹시 공유기가 문제인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잘 되고 있었다. 내 핸드폰도 와이파이를 잡고 있었다. 공유기가 문제일 리 없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내 노트북 문제가 맞았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공유기 쪽으로 걸어갔다. 전원 버튼을 눌렀다. 껐다. 10초 기다렸다. 다시 켰다.

1분쯤 지나자 노트북 화면 오른쪽 하단에 와이파이 아이콘이 떴다. 연결됐다. 멀쩡하게 작동했다.

황당했다. 40분 동안 별별 짓을 다 했는데, 해결책은 "껐다 켜기"였다.


[사람도 그럴 수 있을까]


책상에 앉아서 멍하니 생각했다. 사람도 그럴 수 있을까?

너무 힘들고 안 좋은 일들이 겹칠 때가 있다. 프로젝트는 꼬이고, 관계는 어그러지고, 몸은 아프고, 마음은 무겁다. 이겨내려고 별별 방법을 다 써본다.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유튜브에서 동기부여 영상을 본다. 명상 앱을 깐다. 운동을 시작한다. 친구에게 하소연한다. 전문가 상담을 받는다.

그런데 안 된다. 여전히 힘들다. 마치 내 노트북처럼 뭘 해도 와이파이가 안 잡히는 것처럼.

그럴 때 뇌도 잠깐 껐다 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전원 버튼 하나로 모든 게 리셋되고, 다시 켜면 멀쩡하게 작동하는 거다. 복잡하게 꼬인 문제들도 깔끔하게 정리되고, 무거운 마음도 가벼워지고, 막혔던 생각도 다시 흐르는 거다.


[껐다 켜는 방법]


사실 그런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간다.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며칠 동안 다른 공기를 마시고 돌아오는 거다. 어떤 사람들은 푹 잔다. 12시간씩 자면서 뇌를 강제로 쉬게 만든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한다. 하루 종일 멍 때리고,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존재만 한다.

나도 가끔 그런다. 너무 복잡할 때는 일단 멈춘다. 책상에서 일어난다. 산책을 나간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돌아온다. 그러면 가끔은 좀 나아진다.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아도,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느낌.

하지만 공유기처럼 10초 만에 해결되지는 않는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니까. 뇌는 하드웨어가 아니니까. 껐다 켰다고 모든 게 리셋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래도 가끔은 생각한다.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풀려고 하지 말고, 단순하게 접근해보면 어떨까? 40분 동안 드라이버 재설치하고 설정 만지는 대신, 그냥 공유기를 껐다 켜보는 거처럼.

너무 힘들 때 별별 방법을 다 동원하는 대신, 그냥 잠깐 멈춰보는 거다. 하루 쉬어보는 거다. 아무것도 안 해보는 거다.

해결책이 생각보다 단순한 곳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와이파이 공유기의 전원 버튼처럼, 내 안에도 어딘가 리셋 버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직 찾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오늘 와이파이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언젠가는 삶의 문제도 그렇게 단순하게 풀릴 날이 오지 않을까.


지금은 와이파이가 잘 잡히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전원버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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