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모니터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깨달았다.
아무리 빠르게 가려 해도, 어떤 일들은 그 자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프로젝트 개발을 하며 나는 병렬처리의 마법에 빠져 있었다.
여러 작업을 동시에 돌리면 시간이 단축된다 — 효율의 극대화.
현대 개발의 정석이라 믿었다.
한참 걸리던 작업을 절반의 시간으로 줄일 수 있다면,
그게 옳은 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욕심을 부렸다.
데이터 수집, 분석, 문서 생성…
이 모든 과정을 동시에 돌렸다.
컴퓨터는 그렇게 작동하니까.
그리고 결과는, 참담했다.
데이터가 서로 맞지 않았다.
앞부분의 내용과 뒷부분의 흐름이 어긋났다.
결과물은 ‘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일관성이 없었다.
빠르긴 했다. 하지만 틀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빠르게 가는 것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잘못된 방향으로 아무리 빨리 달려도 목적지에는 닿지 못한다.
오히려 더 빨리 달릴수록 돌아오는 길이 더 멀어진다.
속도는 방향이 정해진 뒤의 문제다.
요즘 나는 멀티플레이가 잘 안 된다.
예전에는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게 능력이라고 믿었다.
이메일을 보며 전화받고, 회의 중에도 메시지를 보내고,
문서를 쓰면서 다른 자료를 검색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게 생산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생산성이 아니라 산만함이었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하면 어느 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메일은 대충 읽히고, 전화는 집중이 흐트러지고,
문서는 엉성해진다.
바쁘게는 움직이지만,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한 가지씩 처리한다.
이메일을 볼 때는 이메일만,
문서를 쓸 때는 문서만,
회의 중에는 오로지 사람의 말에만 집중한다.
느린 것 같지만, 실제로는 훨씬 빨라졌다.
무엇보다 결과의 질이 달라졌다.
이번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단계가 완성되어야,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두 번째 단계가 의미를 가진다.
두 번째 분석이 끝나야, 세 번째 전략이 설득력을 얻는다.
각 단계가 명확해질 때 비로소 다음 단계가 살아난다.
이건 단순한 순서의 문제가 아니라 논리의 문제, 방향의 문제였다.
그래서 코드를 다시 짰다.
속도를 포기하고 순서를 택했다.
A가 끝나면 B를 시작하고,
B가 완료되면 C로 넘어간다.
앞선 결과를 다음 단계의 입력으로 넘긴다.
마치 대화를 이어가듯, 한 문장씩 차근히.
시간은 조금 더 걸렸지만,
결과는 놀랍도록 일관됐다.
앞과 뒤가 이어지고, 각 단계가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전체가 하나의 서사로 완성됐다.
잘못된 방향으로 빠르게 가는 것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천천히 가는 게 훨씬 나았다.
어쩌면 인생도 그렇다.
오랜 시간 컨설팅을 하며 수많은 사업가를 만났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병렬처리의 함정에 빠진다.
사업 모델도 잡히지 않았는데 투자유치를 시작하고,
제품도 완성되지 않았는데 마케팅에 돈을 쓴다.
팀이 꾸려지기도 전에 사무실부터 크게 얻는다.
동시에 모든 걸 하려다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빠르게 가려다 오히려 더 늦어진다.
효율을 좇다 오히려 더 비효율적이 된다.
무엇보다, 방향을 잃는다.
속도에 집착하다 보면
정작 어디로 가고 있는지 놓치기 쉽다.
지도 없이, 나침반 없이,
그냥 빨리 달리는 것 —
그건 노력이라기보다 방황이다.
순리는 느린 것 같지만,
실은 가장 빠른 길이다.
씨앗을 뿌리면 싹이 나고,
싹이 자라면 꽃이 피고,
꽃이 져야 열매가 맺힌다.
이 과정은 병렬처리할 수 없다.
아무리 서둘러도 싹이 나기 전에 꽃을 피울 수는 없다.
농부는 이 사실을 안다.
그래서 기다린다. 순서를 지킨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가장 좋은 수확을 거둔다.
이제 나는 속도보다 방향을 먼저 본다.
시간이 더 걸려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시간 동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이다.
각 단계가 제대로 쌓이고 있느냐,
결과가 하나의 논리를 담고 있느냐이다.
병렬처리는 기계의 언어다.
하지만 우리가 만드는 것은 사람의 언어다.
사람은 이야기를 순서대로 이해한다.
맥락 속에서 공감하고, 논리의 흐름 속에서 신뢰를 쌓는다.
어떤 일들은 병렬처리할 수 없다.
그냥 순리대로 흘러야 한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조금 돌아가도 괜찮다.
방향이 옳다면 결국 그게 맞는 길이다.
한 가지씩, 제대로, 올바른 방향으로.
그게 더 효과적이고, 결국 더 효율적이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한 단계씩 나아간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