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꼬질꼬질 자전거 여행기 vol. 9
진천
날이 어두워지고 오늘의 목표였던 진천에 도착했다.
우리는 어제처럼 당황하지 않고 서둘러 근처 초등학교부터 찾았다.
오늘 자고 가려고 마음먹은 초등학교는 운동장이 엄청나게 넓었다. 그리고 건물 뒤로 가보니 또 엄청나게 넓은 운동장이 있었고, 학교 뒤에 있는 산으로 올라가는 길도 있었다. 깜깜한 밤이라 날도 어둡고 나무숲이 울창한 산하고 붙어있어 운동장 끝이 어딘지 잘 보이지 않아 살짝 무서운 기분도 들었다.
우리는 이 곳을 오늘의 숙소라고 우리끼리 마음먹고 '안면공격' 박진수에게 들어가서 허락을 받고 오는 임무를 주어서 건물 안으로 보냈다.
박진수는 들어가서 잠시 후에 다시 나오더니 모두 따라 들어오라고 했다. 교감 선생님이 모두 들어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한 명이 와서 '야 너네들, 선생님이 교무실로 다 오래.' 라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교무실에 들어가 교감 선생님 앞에 한 줄로 서서 혼나는 학생들처럼 질문에 답했다. 학교는 어디를 다니고 전공을 무엇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까지 가냐 이런 것들을 물어보시더니 수고한다고 격려의 말씀을 하시며 자고 가도 좋다고 하셨다. 우리는 떳떳한 마음으로 교무실을 빠져나와 텐트를 치고 밥을 하고 수돗가에 가서 옷을 다 벗고 물을 뿌리며 샤워를 했다. 야외에서 이렇게 단체로 옷을 홀랑 다 벗어 보기는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일이다.
저녁을 먹고 텐트에 누워서 신해철 테이프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이틀 동안 신해철 목소리만 듣고 있자니 가사뿐만 아니라 노래 순서도 다 외워져 버렸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 환한 햇빛 아래 주변을 둘러보니 텐트 옆에 있던 산으로 통하는 길은 학교 내부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산으로 운동을 하러 가는 동네의 일반 도로였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옷을 홀랑 벗고 까불고 설쳐댔으니 어제 우리를 본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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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4살에 운영하던 홈페이지에 썼던 글을 조금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