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 Aug 24. 2016

15.
무주구천동 part 1

스무 살 꼬질꼬질 자전거 여행기  vol. 15


무주구천동 part.1 


오늘은 길을 떠나지 않고 무주구천동에서 하루 종일 쉬기로 하고 늦게까지 잠을 잤다. 

9시가 넘어서 일어나 빈둥빈둥 멍하니 텐트 밖을 쳐다보고 나무 아래 그늘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텐트 옆에는 소나무가 몇 그루 있었는데 거기엔 알록달록 무섭게 생긴 거미가 A3 정도 사이즈로 커다랗게 집을 만들어 놓고 먹잇감이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진수와 치화형은 잠자리, 파리 등등을 잡아다가 거미줄에 던져주고 거미가 후다닥 와서 파닥거리는 잠자리를 거미줄로 꽁꽁 묶어 식량으로 만드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정말 힘이 좋은 잠자리는 거미집을 끊어버리고 달아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먹이들이 쏜살같이 달려오는 거미를 뿌리치지 못하고 온몸에 거미줄이 칭칭 휘감겨 미라처럼 굳어버렸다. 

잠자리가 가끔 탈출하면 그걸 보면서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고...


오전 내내 이러고 있었다. 


자전거를 안 타니 참 할 일이 없다. 


점심때가 되었다. 추워서 5분을 버티지 못한다는 계곡물을 구경하러 계곡에 가봤다. 

몇몇 애들이 물장난을 치면서 놀고 있었는데 물이 너무 맑아 바닥까지 다 보일 정도였다. 옷을 입은 채로 물속으로 들어갔는데 정말 온몸이 덜덜덜 떨릴 정도로 차가웠다. 물이 너무 차가워 물놀이를 할 수가 없었고, 기념 촬영을 하고 다시 텐트로 돌아왔다.


 

몇 장 안되는 단체 사진중 하나, 다같이 계곡 구경갔다가 옆에 있던 어느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찍었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반찬도 없고 쌀도 없다. 돈도 조금밖에 없다. 

어제 삼겹살을 샀던 것이 우리에게 사치였나 보다.


옆텐트를 보니 고등학생 정도 되는 여자애들이 있었다. 동네 아이들끼리 놀러 온 모양이다. 

진수가 그 텐트에 가서 말을 몇 마디 하더니 열무김치를 얻어왔다. 그리고 또 다른 텐트에 가서 말 몇 마디 하더니 이번에는 쌀을 얻어왔다! 

정말 박진수는 대단한 안면 몰수 공격... 참 훌륭한 친구다!

그리고 쌀을 씻으러 캠핑장 중앙에 있는 공동 수돗가에 가더니 거기에 굴러 다니던 감자 3개를 주워왔다. 누가 씻으러 왔다가 깜빡하고 놓고 간 건가보다. 아니면 버린 건지도. 


가게에 가서 돈 주고 식량을 사지 않고 자급자족으로 해결을 하다니! 

우리도 길거리 생활에 적응이 되어가고 있나 보다.



[다음편 보러가기]


-

이 글은 24살에 운영하던 홈페이지에 썼던 글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14. 무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