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꼬질꼬질 자전거 여행기 vol. 1
1997년 대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어느 봄날.
진수, 치화형, 경백형 그리고 나까지 4명이서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다들 술기운에 기분이 좋아져서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여름방학 때 자전거를 타고 전국일주를 하면 어떨까?"
모두들 술에 취해 깔깔 웃으며 좋다고 하고, 나도 속으로 '한 번 해보면 재미는 있겠구나.' 이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다. 내일 아침에 술에서 깨면 기억이나 하려나...
그리고 더위가 시작될 때쯤 어느 수업시간. 경백이형이 다이어리 뒤에 접혀있는 A4 사이즈 전국지도를 꺼내서 도로를 확인하고 있었다.
"뭐해?"
"자전거 여행 준비해야지."
"진짜 가?"
"그럼. 너도 좋다고 했잖아."
"그냥 술 마시면서 한 얘기 아니었어?"
"바보야, 그때 아무도 안 취했었어. 진지하게 한 거야."
정말 떠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결국 출발은 7월 18일.
8월이 되면 장마가 올 지도 모르니 방학이 시작되면 최대한 빨리 떠나기로 했다.
멤버는 그날 함께 술 마시던 4명으로 정했고, 자전거를 타고 서울을 떠나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를 보고
밑으로 내려가 부산에 지나 완도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아주 황당한 계획이었다.
대학생이 되면 자전거 탈 일이 없을 줄 알고 중학교 때 타던 자전거는 사촌 동생한테 줬는데, 얼른 자전거부터 다시 받아와야 했다. 자전거도 특별한 게 아니라 아주 평범한 15단 기아가 달린 MTB 자전거였다.
그래도 15단이 어디인가. 박진수는 12단짜리 자전거를 갖고 갔는데. (얘도 중학교떄 타던 자전거)
출발하던 날 진수 어머님이 하신 말씀은
"그 자전거 없어도 되니까 힘들면 자전거 아무 데나 버리고 얼른 올라와라."
우리는 그렇게 떠나기로 했다.
방학하는 날을 기다리며 장마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기말고사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안 난다.
시험 전날도 준비물을 적으며 여행 준비만 하고 있었으니.
-
이 글은 24살에 운영하던 홈페이지에 썼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