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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 Jun 01. 2016

03.
중랑구

스무 살 꼬질꼬질 자전거 여행기  vol. 3

중랑구


건대입구로 가려고 강을 따라 동쪽으로 계속 전진했더니 중랑천이 나왔다. 

중랑천이라면 중랑구로 이어진다는 것은 한글을 읽을 줄 안다면 이름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이제 더 이상 건대입구를 찾을 일이 없어졌다. 중랑천만 쭉 따라가면 중화동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랑천을 따라가니 한양대학교 후문이 나오고 계속 가다 보니 중랑천을 건너는 좁은 다리 말고는 길이 없는 것이 아닌가! 


우리에게 자전거가 없다면 다리 건너기는 쉬웠겠지만, 자전거가 있을 때에는 육교와 지하도 이런 것들이 상당히 불편하다. 생각해보시라. 육교를 건너려면 짐들을 등에 맨 상태로, 자전거를 또 어깨에 메고 낑낑거리며 계단을 올라가야 하고, 게다가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육교라면 그렇게 올라가면서 사람들을 피해야 하고 정말 힘이 든다. 

중랑천을 건너는 곳은 다리였는데 사람만 지날 수 있는 좁은 다리였고 그 다리의 건너편은 지하철역으로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자전거를 살살 끌며 다리를 건너고, 계단을 통해 지하철 역으로 내려가 매표소 앞을 지나고 다시 계단을 올라가서야 겨우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지하철역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니 사람들이 신기한 듯 우리를 보았다. 

그 당시만 해도 자전거 타기 운동을 펼치던 때였는데 이런 식으로 길을 만들어놓고 자전거를 타라고 하다니... 

몇 시간을 더 가니 중랑구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울 횡단의 기쁨 마음에 약국에 가서 '젊음의 음료' 박카스를 한 병씩 사 먹었다. 


좀 챙피하긴 했지만 한강철교 밑에서 기념촬영. 컬러 필름용 카메라와 흑백 필름용 카메라 FM2를 따로 가져갔었다. 



결국 5시간 정도가 지나고 중랑구 중화동 치화형네 집에 도착을 했다. 이미 온몸이 땀으로 다 흥건했고 우리는 서둘러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면서 이게 이번 여행의 마지막 샤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씻는 동안 치화형과 경백형은 꼭 필요한 게 있다며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갔고 나와 진수는 엽서를 사러 문방구에 갔다. 여행을 하는 도중에 여러 곳을 지나면서, 그곳에서 메시지를 적어 여러 곳의 여러 사람들에게 보내기 위해서였다. 메시지를 적어 우체통에 넣기만 하고 우리는 또 다음 목적지로 향하고. 전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멋지지 않은가! 

시장에서 돌아온 형들이 사온 건 '어항'이라는 낚시 도구였다. 
어항이라는 물건을 고기가 많은 물속에 설치하고 미끼를 넣어두면 고기들이 도구 속에 (큰 물통처럼 생겼다) 들어오지만 나가질 못한다는 신기한 도구였다. 물고기가 들어올 수 는 있어도 나갈 수 는 없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한 획기적인 포획방법이었다. 

그 날 저녁 치화형 아버지께서 여행을 잘하라고 양주를 꺼내 한잔씩 따라 주셨다. VIP라는 생전 처음 보는 양주였는데 정말 한잔 마시고 났더니, 뱃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입과 코로 막 뿜어져 나오는 것이 마치 우리 여행에 대한 열정이 막 솟아나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그 당시 대여순위 1위를 달리던 '제리 맥과이어'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왔는데 다들 피곤했는지 영화를 보다가 모두 잠들어버렸다. 드라마에서 보면 그런 날 꿈에는 자전거 여행을 완주하여 눈물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던지, 완도대교에서 웃는 모습들이 보인다던지 그러겠지만, 그런 거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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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4살에 운영하던 홈페이지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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