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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비 Sep 14. 2023

쿠팡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쿠팡물류센터 도전기 (9)



깨비


"어떻게 쿠팡없이 살았을까?"

쿠팡 입사교육때 틀어 준 영상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이다.


"우리의 미션은 고객들이 '어떻게 쿠팡없이 살았을까?'라고 말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쿠팡 본사 대표가 영상에서 영어로 강조한다. 그 아래에 한글 자막이 뜬다.

대표뿐만 아니라 임직원들은 항상 영어로 발언하고 한글 자막이 뒤따르는 방식이다.

이것이 쿠팡의 소통방식이다. 미국도 아니고 한국에서..직원 상대 교육영상인데..


그런데 쿠팡 없을때 어떻게 살았지?

평일이면 동네 수퍼도 가고...아니면 주말엔 대형마트 가서 카트에 한아람 담아서 차 트렁크에 옮겨싣고..


코로나 사태가 쿠팡과 배달문화를 엄청 키운것 같다.

영상에서는 배달의 편의성에 의지해 살아가는 직장맘, 장애인, 노약자, 외국인 부부등의 체험담이 연달아 나온다. 일면 일리있는 발언들이다. 


하지만 그 배달과정에  직원들의 수많은 손길들과 그들이 흘린 땀에 대한 존중감은 찾아 볼 수 없다.


정작 내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쿠팡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문구앞에 붙어있는 '고객들'이라는 단어다. 고객들만 있지 직원이 보이지 않는 것이 쿠팡의 문화라고 이야기 한다면 너무 말꼬리 잡는다고 비판받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알바등  단기간의 체험이 아닌 적어도 1년 계약직을 마음먹고 들어갔다가 현장 작업 단 하루 만에 퇴사하고 만 나였다. 그러한 나에겐 쿠팡에서 일하는, 적어도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소모품 처리되는 일회용 상품과도 같다는 생각이다. 

쿠팡엔 상품을 판매하는 대상인 소비자 고객만 있지 직원에 대한 개념은 없다.

그런데 그 직원들은 직원이면서 또한 고객이다. 그래서  28세의 건강한 아들을 쿠팡에서 떠나보낸 엄마의 발언은 두고 두고 여운을 남긴다.






쿠팡 현장에선 모든 사람의 호칭이 '사원'으로 부르도록 하고 있다. 

우리네 직장문화나 사회속에서 항상 따라붙는 직함위주의 호칭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일면 새로워 보인다.


 "사원님..오늘 그쪽 식사시간대는 어떻게 되죠?"

"사원님. 잠깐 화장실에 좀 다녀올게요."

"사원님..출근하신지 얼마나 됐어요?"


처음에는 신선해보였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니 사원 한사람 한사람의 정체성이나 자존감은 온데간데 없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직장문화에서 익명의 편의성에 쉽게 젖어버린다는 점을 느끼기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쿠팡이 계약직이나 일용직을 소모품이 아닌 사람으로 보는 그날은 과연 올까?

그 의문에 선뜻 긍정적 답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빠. 그래도 쿠팡은 나은거야...

다른 택배 물류회사는 더 심하다는 이야기가 수없이 올라와"


딸아이가 던진 말이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그레도 쿠팡은 낫다 라는 말이 위안이 되기보다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이렇게 깨비의 첫 생산직 도전은 허망하게 끝났다. 


'쿠팡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마세요..'

뉴스타파 잠입취재에서 나오는 현장 관리직원의 말이 쓴 여운을 남긴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닌데...

휴게시간등 최소한의 노동조건 충족을 말하는건데.


그리고 "나 쿠팡에서 일한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존감을 세워달라는건데...

잘 모르겠다. 그게 많은 것을 바라는 걸까? (이야기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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