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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진 Jul 07. 2020

혼인과 신고와 사건의 전말

결혼식과 혼인 신고는, 마치 생일 파티와 진짜 생일의 차이 같아

7월 1일, 혼인신고를 했다.

마포구청에서 신고를 마치고 나와 우리 둘은 각자 갈 길로 향했다.

ㅎ(현 남편이다)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나는 걸어서 망원동으로.


이유인즉슨 이랬다. 전날인 6월 30일, ㅎ가 코로나 시대의 상반기 마지막 날을 보내며 술 한 잔을 해야지 않겠느냐고 했다. (우리는 이런 이유를 매일 만들 수 있다) 우리 둘은 망원동의 단골 술집으로 향했다. 바 자리에 나란히 앉아 숙성회에 달디 단 청하를 왈칵 들이켰다. 올 6월의 마지막 날은 연말과 연초의 경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예측할 수 없는 나날들이지만 앞으로도 잘 살아보자며 넘기는 술이 유난히 달았다. 

“우리 내일 혼인신고할까? 한 해를 새로 시작하는 기분도 들고.” 내가 얘기했다.

“그래, 좋다!”

가게 한 구석의 테이블에는 친구들이 앉아 있었고, 그렇게 따로 떨어져 마시다 2차로 함께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칵테일과 위스키를 마시고 또 마시다가 그만.





7월 1일, 머리가 지끈거리는 오전이었다. 새해를 맞이하는 것 같다고 얘기했던 어제의 순간이 떠오르며 괜스레 혼자 민망해졌다. 오늘 할 일은 한 가지였다. 어제 얘기한 혼인신고. 오후 서너 시쯤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택시를 잡았다.

“아저씨, 마포구청으로 가주세요.”

목적지에 도착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가족관계 신청’이라는 안내가 붙은 곳으로 갔고, 홀 중앙의 유리 테이블에 놓인 혼인신고서 문서 양식을 채우고 접수를 하면 되는 거였다. 빈칸에 글자를 쓰고 있는 ㅎ의 얼굴이 점점 새하얗게 질려갔다. 

“괜찮아?”

“아니, 속이 미슥거려..”

“아이고, 얼른 해치우고 가자.”

하루의 유일한 일정이자 일생에 한 번뿐일 혼인신고를 하는 순간에도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고 있다니 우리도 참 웃기다,라고 생각하는데 내 속도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으, 나도 속이 안 좋아. 집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괜찮은 듯했는데. 아마 택시를 타고 와서 그런가 봐.”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속과 ‘이제 진짜 부부가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동시에 울렁거렸다. 결혼식은 친구와 지인들에 둘러싸여 정신없이 즐거운 생일 파티 같았는데, 정작 생일 당일이 되어 이상한 기분이 드는 일처럼.


나와 ㅎ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갔다. (내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이 순간을 기념하고 싶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기로 했다. 마포구청에는 천 원을 기부하면, 혼인신고서를 접수받은 구청 직원이 혼인신고 포토존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한 장 찍어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고요한 구청 접수처의 뒤편엔 이름 그대로 ‘MAPO 혼인신고 PHOTO ZONE’이라는 팻말이 붙은 포토존이 있다. 프레임을 이루는 나무 기둥을 다소 음침한 조화들이 둘러싸고 있고, 둘이 앉을 수 있는 의자 뒤편엔 “우리 마포구청에서 하나가 되었어요!”라고 쓰여있는 것이다. (구청마다 혼인신고를 하는 부부에게 주는 선물이 있거나 각기 다른 이벤트가 있는 듯하다. 용산구청에서 혼인신고를 했던 친구들은 태극기를 선물로 받았다고 했고, 창원에서는 혼인신고를 마치면 아기 신발을 준다고 해서 아주 깜짝 놀란 바 있다.)


찰칵-! 우리는 아주 중요한 순간을 지나고 있지만, 우리 외엔 아무도 동요하지 않는 구청 홀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플래시가 번쩍 터졌다. 직원이 건네 준 아직 깜깜한 사진 한 장을 들고 마포구청을 나왔다.   

ㅎ가 얘기했다.

“혼인신고도 하고 밖에 나온 김에 어딜 좀 돌아다니거나 하면 좋을 텐데, 난 한시라도 빨리 집에 들어가서 누워야겠어.. 속이 너무 안 좋다..”

“그런데 나는 택시를 못 타겠어. 지금 저 택시의 주황색만 봐도 토할 것 같아..”

“그럼 여기서 헤어지는 게 좋겠다.”

나는 택시를 잡아 올라타는 ㅎ와 인사하며 헤어졌다. 선천적인 멀미 증후군 때문에 왕복 4시간을 걸어 학교를 다녀야 했던 어느 영화의 주인공처럼 하염없이 걸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망원동으로 걸어가 육개장을 먹어야겠다, 생각하며. 속은 아직도 울렁거리므로 등을 구부정하게 숙인 채로.


ㅎ는 숙취가 심한 날이면 무조건 누워서 잠을 더 자야만 하는 사람이고, 나는 속이 풀리는 음식을 뭐라도 좀 먹거나 바깥바람을 쐬어야 하는 사람인 거다. 그 다른 숙취해소법을 아는 우리는 쿨하게 헤어졌고, 각자의 위안을 향해 갈 길을 갔다.

“으, 진희 이 택시 탔으면 큰일 날 뻔. 아저씨 운전이 엄청 거칠다.”

“나는 앉았어, 식당에.”


ㅎ가 집에서 자는 동안, 내 속은 매콤하고 새큼하기까지 한 육개장을 먹으며 스르르 풀리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 때까지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집에 돌아와 폴라로이드 사진을 함께 들여다봤다. 어두침침한 배경 속에 얼굴이 허옇게 질린 두 사람이 손 잡고 앉아 방긋 웃고 있었다. 사진과 함께 받았던 혼인신고 접수증에는,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사건번호’가 부여되었다. 혼인-신고-사건 이 세 가지는 참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하나의 사건을 함께 겪게 되었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을 해결했으며, 언제고 이렇게 서로의 방식을 우습고 자연스럽게 존중하게 된다면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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