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향 집에 내려왔다. 내 방 침대와 화장대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방 구조를 또 바꿨어?'하고 엄마에게 물으니, '저 방향으로 누워서 자면 아침에 일어날 때 풍경이 보여서~'라고 했다. 엄마는 이 방에서 안 자면서. 광주 집에는 나 없는 내 방이 있다. 진희 방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서 내가 자는 일은 많아야 일 년에 열 밤 정도나 될 거다. 거의 없는 사람을 생각하며 방의 구조를 바꾸는 일에는 어떤 마음이 필요한 걸까.
나는 스무 살 때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내가 서울에서 10년 남짓을 보내는 사이, 엄마와 아빠는 이리저리 이사를 많이도 했다. 집에 내려갈 때마다 엄마 아빠를 둘러싼 풍경은 바뀌어 있었다. 어느 날은 어렸을 때부터 줄곧 읽어오던 문학 전집이 사라져 있었다. 왠지 초등학생 시절이 통째로 사라진 것 같은 섭섭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이젠 내가 들춰보지도 않는 책이니까'라는 이유로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곱 살 때 외할머니가 사주셨던 원목 피아노가 없어진 걸 알게 된 날에는 많이 울었다. 이건 내가 평생 가지고 싶었는데. 내가 사는 서울의 방에는 피아노를 둘 곳이 없어 잠시 엄마 아빠에게 맡겨둔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다 엄마 아빠도 작은 집으로 옮겨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서 피아노를 둘 공간이 없어진 거다. 그때 둘에게는 내게 이걸 팔아도 될지 물어볼 마음의 공간도 없었던 걸까? 나는 피아노를 팔아 얼마를 받았는지 차마 묻지 못했다.
3년 전 아빠는 처음으로 돈을 벌어 제법 넓은 아파트를 샀다. 엄마는 전화로 새집에 내 방과 연희(동생) 방을 하나씩 만들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나는 서울로 올라온 지 10년이 더 되었고, 동생도 2년 전 취직을 해 경기도로 올라왔는데도. 같은 방향으로 창이 나 있는 두 개의 나란한 방에는 둘도 충분히 누울 수 있는 침대가 하나씩, 옷장과 화장대도 하나씩 놓여 있었다. 각자의 화장대 위에는 언젠가 엄마에게 카톡으로 보낸 각자의 셀피가 액자에 끼워져 있었다. 두 방의 다른 점이 있다면 컬러인데, 내 방은 분홍부터 보라색까지, 연희 방은 노랑부터 연두색까지의 톤으로 꾸며져 있다는 점이다. 침구며 블라인드, 엄마가 고른 개구리나 부엉이 모양의 소품들까지도 말이다.
내가 없는 집에서 내 책을 버리고, 피아노를 팔고, 내 방을 없애기로 할 때마다 엄마는 자꾸만 나를 떠올렸을 거다. 그러다 정착할 수 있는 집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나와 내 동생의 방을 만들었고. 1년에 350일도 넘게 비어 있지만 내 이름이 붙어 있고, 내 사진이 놓여 있는, 계절마다 다른 소재의 이불이 단정하게 깔려 있는 방은 나에겐 호텔 방보다도 더 기분 좋은 사치다.
어쨌거나 이제 나는 고향 집에 도착하면 매일 그래 왔던 것처럼 내 방에 짐을 풀어놓는다. 엄마가 침대의 위치를 바꾼 뒤의 어느 아침, 평소 일어나는 시간에 비하면 꼭두새벽처럼 느껴지는 일곱 시 반쯤 잠깐 눈이 뜨였다. 나는 언제나처럼 조금 더 잘 예정이었다. 그때 창밖으로 멀리 해가 뜨고 있었고, 앞에 있는 산의 능선이 반짝였다. 감으려던 눈을 비비다 힘을 주어 떴다. 그 장면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오늘은 아침밥을 먹어볼까'하고 몸을 일으키기로 했다. 어쩌면 내가 엄마 곁에 없을 때도 나는 항상 엄마 곁에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네 번째 문단의 '사치'라는 단어는 주간 문학동네에서 연재 중인 김하나 작가님의 '워드스케이프' 1회, '특권과 사치와 낭비'라는 글에서 생각을 얻어 쓴 단어입니다. 이 글 덕분에 '사치'라는 단어의 새로운 빛깔을 알게 되었고, 내가 누리고 있는 사치는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http://www.weeklymunhak.com/19/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