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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진 Jul 15. 2020

기다림을 아는 마음으로

아는 사람의 얼굴처럼 기다림을 마주하던 날들

내가 말을 막 떼려는 아이였을 무렵, 엄마는 생계를 위해 동네에 작은 옷가게 하나를 운영했다. 엄마는 옷을 떼러 광주에서 서울까지 다녀오고는 했다. 나는 엄마가 '엄마 동대문 시장에 옷 사러 서울 다녀올게~'하고 나가면 혼자 잘도 놀았는데, 엄마가 말없이 떠난 날이면 종일을 울고불고 난리였다고 한다. (이 일화를 할머니로부터 듣고 또 들었다) 그때의 내가 어떤 마음에서 울음을 터뜨렸을지 가끔 생각해본다. 사실 엄마의 말속에 있는 '동대문 시장'이나 '서울'이 얼마나 먼 곳인지, 아니 그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몰랐을 텐데. 그것이 약속의 다른 말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걸까.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갈 즈음 처음으로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3학년일 동안 연애를 하게 된 거다. 서로의 학교와 집은 광주의 북구와 남구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라고 해야 1시간 정도 걸리는 작은 도시였지만. 당시엔 가장 맨 앞에 크게 놓인 일을 수능시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남자 친구는 수능이 끝나고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 얘기를 하고 헤어지면서, 나는 두툼한 노트 한 권을 그에게 선물했고 나도 한 권 가졌다. 매일 늦은 시간 자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그 노트에 일기를 썼다. 그에게 문자를 보낼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렇게 한 권을 다 채웠고, 우리는 수능 후에 다시 만났다. 하지만 얼마 뒤, 서로 다른 대학교에 가게 되어 그는 광주에 남고 나는 서울로 떠나오게 된다. 입학 후 한 달을 각기 다른 생활로 바삐 보내다 그가 서울로 올라와 첫 데이트를 하고서, 우리는 헤어졌다. 직접 얼굴을 마주 본 날보다 떨어져 그리는 날이 더 많았던 처음의 연애. 다 채운 일기장은 그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아직도 그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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