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Frankfurt의 인격 이론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프랭크퍼트(1999, 2004)의 이론에 근거해서 해석할 수 있다. 프랭크퍼트는 우리가 느끼는 욕구를 1차 욕구와 2차 욕구(고차-욕구)로 구분한다. 1차 욕구는 우리가 느끼는 모든 욕구를 말하며, 2차 욕구는 1차 욕구들 중에서 행위자가 자기-반성을 통해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욕구를 말한다. 2차 욕구를 토대로 의지를 실현했을 때, 그 행위는 자유의지에 의한 행위이다. 이러한 관점 위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할 것이다. 첫째, 신학교 입학 이후 한스는 하일너적 가치에 대해 고차-욕구를 가진다. 둘째, 한스가 학교에서 경험하는 내적 갈등을 ‘의지 분열ambivalence' 또는 ‘자기파괴적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셋째, 한스는 ‘자기파괴적 의지’를 가졌으며 이로 인해 한스는 귀향 후 우울함과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넷째, 한스가 ‘자기파괴적 의지’를 가졌고 이것이 그의 ‘인격적 죽음’을 야기했다는 전제 위에서, 한스의 비극적 결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욕구의 구분: 1차 욕구와 2차 욕구
우리가 느끼는 욕구는 1차 욕구와 2차 욕구(=고차 욕구)로 구분된다. 1차 욕구는 생물학적 원인과 환경적 원인에 의해 행위자가 느끼는 욕구를 말한다. 한편, 2차 욕구는 행위자가 1차 욕구들에 대해 느끼는 욕구이다. 우리는 느껴지는 욕구를 거부할 때도 있고, 우리 자신과 일체화할 때도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가지는 의지를 강화하거나 기피한다. 자연적으로 발생하거나 습관화된 욕구를 버리며, 우리 자신이 이상ideal로 받아들인 가치를 위해 행동할 수 있다. 따라서 고차-욕구는 인간을 동물과 같은 방종체 이상의 인격체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발생하는 욕구들을 반성없이 수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비록 인간임에도 인격체 없는 방종체로 분류할 수 있다.
자율적autonomous 행위
행위자가 2차-욕구를 가지면서 동시에 그 욕구에 적합한 의지will를 형성할 때, 그는 ‘2차-의욕volition’를 가진다. 그리고 2차-의욕에 의한 행위야말로 ‘자율적 행위’이다. 즉, 자유의지freedom of the will가 발현된 행위이다.
의지분열
실제로 우리는 여러 욕구를 고차욕구로 가진다. 그 욕구들은 일반적으로 대립하지 않으며, 그것들 사이의 우선순위가 어느정도 정해져있다. 의지분열ambivalence 상태에 있는 행위자는 욕구들 사이에서 갈등한다. 행위자는 두 욕구 모두에 대해 고차-욕구로 느낀다.
의지분열 상태에서 두가지 욕구들이 내재적으로 서로 상반된 의지일 때, 행위자는 그 의지들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욕구들 사이에서 행위자가 갈등하는 다른 상황이 있다. 첫째, 욕구들 사이의 위계가 결정되지 않았을 때이다. 둘째, 고차-욕구와 1차-욕구가 갈등하는 경우이다.
‘ambivalence’는 사전적으로 해석했을 때 ‘상반 감정 병존 현상’이다. 하지만 최성호 교수(2022)는 이 표현을 ‘의지 분열’로 해석한다. 여기서는 최성호 교수의 해석을 따른다. ‘상반 감정 병존’이라는 표현은 1차-욕구들 사이의 갈등으로 오해할 수 있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인격적 동일성
우리의 의지는 우리 자신이 수용한 2차-욕구에 의해 제한된다. 이를 '의지적 한계'라 한다. 그리고 그 의지적 한계에 의해 개별 인간의 '의지적 본성'이 결정된다. 즉, 인간의 인격적 동일성은 그 사람의 의지적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개별 인간의 인격적 동일성은 그 사람이 수용한 2차-욕구에 의해 결정된다.
자기 파괴적 욕구
어떤 사람이 의지적 한계를 가졌다는 가정 하에서,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것과 의지할 수 없는 것이 결정된다. 그런데 자신의 의지적 한계 너머의 욕구를 가지며 의욕을 가지는 상황이 있다. 이것을 ‘자기파괴적 의지self-destructive desire'라 한다.
최성호(2019)는 프랭크퍼트에 근거하여, ‘자기파괴적 의지’를 규정한다. ‘위력에 의한 간음’사례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의지대로 간음에 참여한다. 그럼에도 위력에 의한 간음은 비도덕적이며, 위력자의 행위는 비도덕적이다. 왜 그런가? 피해자가 간음에 대해 '자기파괴적 의지'를 가졌기 때문이다. '자기파괴적 의지'에 대한 최성호의 설명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다.
P1 성적 호감을 느끼지 않는 대상과 성관계하는 것은 S가 차마 그에 대한 의지를 형성할수 없는 행위이다.
C1 그러한 성관계를 거부하고자 하는 욕구는 S 스스로 긍정한 욕구이다.
P2 이러한 욕구가 S의 의지적 한계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 의지적 한계는 S의 의지적 본성을 정의한다. 행위자의 의지적 한계는 그 사람의 의지적 본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by Frankfurt)
C2 성적 호감을 느끼지 않는 대상과 성관계하는 것은 S의 의지적 본성이 발현되는 행위이다.
P3 어떤 사람이 S에게 위력에 의한 간음을 요구하고, 위압에 의해 S가 실제로 간음에 대한 욕구를 느끼거나 의욕을 가진다고 가정하자.
C3 그러한 요구는 S의 의지적 한계를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S가 자신의 이상을 배신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P4 자신의 이상을 배신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배신하는 일이며, 자기 삶을 실패로 점철시키는 일이다.
C 따라서 S가 가진 그 욕구 또는 의욕은 ‘자기파괴적’인 것이다. (by C3 and P4)
한스는 시골 마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성실하고 총명했기에 학교 공부를 곧잘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학교 교사들, 목사의 기대를 받는다. 결국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입학 초기에는 좋은 성적을 받는 일에 몰두한다. 그와 동시에 문학적 능력이 뛰어난 하일러에게 이끌린다. 하일러는 교칙 위반 등의 이유로 요주의 인물이 되며, 따돌림을 당한다. 한스는 이를 묵도한다. 이후 한스는 죄책감을 느끼고 하일러를 지지한다. 하일러는 기행으로 결국 퇴학을 당한다. 한스는 공부를 다시 하려고 노력해보지만, 심신이 약해진 탓에 공부에 집중할 수 없게 되고 집으로 돌아간다. 한스는 다시 공부에 대한 의욕도, 문학적 감성도 향유할 수 없게 된다. 마을의 다른 평범한 아이들처럼 한스도 공장에 취직한다. 퇴근 후 동료들과 회식을 하고 귀가하던 중, 한스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죽는다.
한스가 수용한 고차-욕구
신학교 입학 전과 입학 초기에 한스는 학업에서 성과를 내서 평범한 사람들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기를 원한다. <사회와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 그의 이상은 앞으로 나아가고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주목을 받는 것이었지, 낭만적이고 위험한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니었다. (p100)
입학 후, 한스는 하일러에게 이끌린다. 하일러는 어떤 사람인가?
“... 레나우의 <갈대의 노래>를 읽고, 호숫가에 있는 키 작은 갈대 위에 누워 가을의 주제인 소멸과 죽음 따위를 생각했다." (p86)
하일러는 문학 또는 고전적 저서의 가치를 수단이 아니라 내재적 가치로 추구한다.
"우리는 호메로스를 읽지만 <오디세이아>를 요리책처럼 읽고 있어. ..." (p87)
하일러는 허영에 의한 행동이나 관습적 도덕을 무시한다.
"부끄럽냐고? 너희 앞에서 울어서? 아니, 천만에." p90
위의 묘사를 통해, 하일러는 문학적이며, 허영심이 없으며, 관습적 도덕을 무시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한스는 하일러에게 이끌렸다는 것은, 하일러가 추구한 가치에게 이끌렸다는 것이다. 하일러가 가진 관심과 이상을 ‘하일러적 가치’라고 표현하자.
주목할 점은, 한스가 하일러 뿐만 아니라 <하일러적 가치>에 이끌렸다는 점이다.
하일너가 자작시를 낭독하거나 시인의 이상을 이야기하거나 실러와 셰익스피어의 독백을 커달나 몸짓으로 열정적으로 낭독할때면, 한스는 하일너가 자신에게는 없는 마법 같은 재능으로 하늘을 거닐고, … 한스는 생전 처음으로 아름답게 흐르는 언어와 사람의 마음을 흘리는 비유와 취에 착착 감기는 운율의 현혹적인 힘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p98)
그런데 하일러가 교칙 위반으로 따돌림을 당했을 때 한스는 하일러의 편에 서지 않는다. 한스에게 아직 중요한 것은 하일러가 아니라 학교에서 모범적으로 졸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방학을 지내고, 동급생이 호수에 빠지는 사건들 이후 한스는 하일러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그와 다시 접촉한다.
… 나는 신학교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가능하면 1등이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었어. 너는 그런 건 성적에 목을 매는 공부벌레나 하는 짓이라고 했지. 나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건 내 이상 같은 거였어. 더 좋은 것을 몰랐으니까.(p114)
요약하면, 한스가 받아들인 새로운 가치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하일러로 대표되는 하일러적 가치에 대한 이끌림이다. 둘째, 그러한 가치는 한스의 자기 반성을 통한 수용이었다. 한스는 하일러적 가치에 순전히 이끌렸던 것이 아니다. 그는 그것을 본인 스스로 긍정했다는 점에서, 한스는 하일러적 가치에 대한 고차-욕구를 가진다.
한스의 내적 갈등 상황
한스는 하일러적 가치가 <사회와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욕구>보다 더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인식한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과거의 가치를 버리지 못한다. 하일러와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한스는 여전히 공부에 대한 욕구를 버리지 못한다.
“그때부터 한스는 다시 공부에 온 힘을 쏟았다.” (p120)
그러나 한스는 공부에 대한 집중력을 점차 잃는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공부할 계획을 실천하지만, 실제로 공부를 할 의욕을 잃어간다.
“한스는 온종일 정신줄을 놓고 느릿느릿 돌아다녔으며, 흥미도 없이 느릿느릿 공부했다.(p126)
하일러가 퇴학당한 이후, 한스는 완전히 공부에 대한 의욕을 잃는다.
“그가 관심 없어하는 것은 그림자처럼 스르르 그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p131)
이후 한스는 목소리들과 환영을 경험한다. 신경쇠약 진단을 받는다. 공부에 대한 압박감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한스는 패배감과 우울함을 느낀다.
한스는 왜 위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가? 헤르만 헤세는 한스의 1인칭적 관점에서 무엇을 느끼는지 서술하지 않는다. 본고에서 몇 가지 가설을 제시하여, 한스가 겪는 심리적 갈등을 이해하고자 한다. 첫째, 한스가 ‘의지분열’ 상태라는 가설이다. 둘째, 한스는 위력에 의해 ‘자기-파괴적 의지’를 가졌다는 가설이다.
한스의 내적 갈등에 대한 해석: 의지 분열
한스가 <사회와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욕구>에 대해, 여전히 고차-욕구를 느낀다고 가정하자. 이러한 가정 하에서, 한스는 의지분열을 경험할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일러적 가치>와 <사회와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욕구>는 개념적으로 서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스는 두 욕구 모두에 대해 욕구를 느꼈고, 따라서 그는 의지분열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한스가 두 욕구 사이에서 의지분열을 경험했다는 가설 하에서, 한스의 행동이 설명될 수 있다. 한스가 <하일러적 가치>와 공부 모두에게 마음쓰고자 했던 모습을 상기해보자. 그럼에도 한스는 어느 한쪽에 대해서도 전심을 다하여wholeheartedly 그것을 추구하지 못한다.
의지분열 상태의 행위자는 양립할 수 없는 욕구들 모두에 대해 고차-욕구를 느끼지만, 어느 욕구에도 그에 해당하는 의욕을 지속적으로 가지기 힘들다. 대립하는 욕구들 중 어느 하나의 욕구대로 의지를 가진다는 것은, 서로 모순되는 두 명제를 믿는 것처럼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한스가 <하일러적 가치>에 대해서든, <사회와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욕구>에 대해서든 전심을 다하여 추구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스의 내적 갈등에 대한 해석: 자기 파괴적 욕구
한스의 내적 갈등의 과정을 이해하는 또 다른 해석은, 그가 '자기파괴적 의지'를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한스는 하일러적 가치를 자신의 고차욕구로 수용한다. 이러한 가치 위에서 공부에 대한 가치를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느낀다. 그런데 한스는 위압에 의해 공부를 욕구하며, 그것을 의지한다. 따라서, 공부에 대한 그의 욕구는 ‘자기파괴적 의지’이다.
한스는 어떻게 위압을 느꼈는가? 이에 대해 헤세는 정확히 묘사하지 않기 때문에, 한스가 실제로 위압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여기서는 한스가 위압을 느꼈고, 그 위압 때문에 공부에 대한 욕구를 가졌다고 전제할 것이다.
한스가 위압에 의해 공부에 대한 욕구를 가졌을 때, 그 욕구는 그의 의지적 본성에 반하는 욕구이다. 한스가 스스로 수용한 가치는 <하일러적 가치>이다. <하일러적 가치>는 한스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결정한다. <사회와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욕구>는 <하일러적 가치>와 개념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따라서, 한스는 <사회와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욕구>에 적합한 의지를 가질 수 없다. 한스가 이상으로 받아들인 가치는 그의 ‘의지적 한계’를 결정한다. 그런데 ‘의지적 한계’는 그 사람의 ‘의지적 본성’을 결정한다. 따라서, 공부에 대한 욕구는 한스 자신의 의지적 본성에 반하는 욕구이다.
따라서, 공부에 대한 한스의 욕구와 의지는 ‘자기파괴적 의지’이다. 한스가 <하일러적 가치>에 고차 욕구를 느낀다는 것은, 그가 자기 자신에게도 마음쓴다는 것이다. 한스는 자신의 행동과 태도가 <하일러적 가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다. 그러한 점에서 한스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음 쓴다. <하일러적 가치>를 자신의 이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스스로 그 이상을 위한 삶을 사는 것에 대해서도 이상을 가지는 것은 매우 상식적이다. 따라서, 한스가 자신의 의지적 본성에 반하는 욕구를 의지했을 때, 그는 <하일러적 가치>를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 또한 배신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공부에 대한 욕구는 ‘자기파괴적 의지’이다.
공부에 대한 한스의 욕구가 왜 '자기파괴적 의지'인지, 최성호의 설명에 대입해서 이해해볼 수 있다.
공부에 대한 한스의 욕구가 왜 ‘자기파괴적 의지’인지, 최성호의 설명에 대입해서 이해해볼 수 있다.
(S1)
P1 하일러적 가치를 따르는 사람에게 앞선 가치는 차마 그에 대한 의지를 형성할 수 없는 행위이다.
한스가 하일러적 가치를 스스로 긍정했다. 문학의 내재적 가치를 추구하며, 관습적 도덕을 거부하고, 허영심 없이 진정한 자기 감정을 긍정하는 것이 그러한 가치이다. 이러한 가치에 따르면, <사회와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욕구>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욕구이며, 그에 따라 공부에 힘쓰려는 욕구도 마찬가지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
C1 사회의 기대에 부응해서 공부하지 않는 것은 한스가 스스로 긍정한 욕구이다. (by P1)
P2 이러한 욕구가 한스의 의지적 한계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 의지적 한계는 한스의 의지적 본성을 정의한다. (by Frankfurt)
C2 사회의 기대에 부응해서 공부하지 않는 것은 한스의 의지적 본성이 발현되는 행위이다. (by C1 and P2)
P3 어떤 사람이 한스에게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공부를 요구하고, 위압에 의해 한스가 실제로 욕구를 느끼거나 의욕을 가진다고 가정하자.
C3 그러한 요구는 한스의 의지적 한계를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한스가 자신의 이상을 배신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by C2 and P3)
P4 자신의 이상을 배신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배반하는 일이며, 자기 삶을 실패로 점철시키는 일이다.
C 따라서, 한스가 가진 공부에 대한 욕구나 의욕은 ‘자기파괴적’인 것이다. (by C3 and P4)
중퇴 이후
집으로 돌아온 한스는 우울함을 느낀다.
그들 중 아무도 소년의 여윈 얼굴에 나타난 당혹스러운 미소 뒤에 물에 빠져 가라앉는 영혼이 아파하고 있으며, 그 영혼이 두려움과 절망에 차 죽어가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신학교 중퇴 이후 귀향한 한스는 더 이상 마을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한스는 모두에게 버림받고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 기분으로 작은 정원 양지바른 곳에 앉아 있거나 숲속에 누워 꿈을 꾸거나 괴로운 생각에 잠겼다.
한스는 거의 매일 산책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는 조용한 장소를 몇 군데 살펴보고 마침내 아름답게 죽을 수 있는 장소를 하나 찾아내서 그곳을 죽음의 장소로 정했다.
위와 같은 묘사에도, 한스가 정확히 무엇을 느꼈는지 헤세는 말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실패감과 죄책감일 수도 있다. 대조적으로, 자신을 이용해서 본인들의 만족감을 채우고자 했던 어른들을 향한 분노와 배신감일 수도 있다. 동시에, 하일너와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일 수도 있다.
한스가 자기파괴적 의지를 가졌다는 가설은, 중퇴 후 한스의 심리적 상황을 설명해준다. 앞서 필자는 한스가 위압에 의해 공부에 대한 자기파괴적 의지를 가졌다는 가설을 제시한 바 있다. (S)의 C3, P4에 따르면, 한스가 공부에 대해 가진 욕구는 한스 자신의 이상에 대한 배신이며, 그러한 점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마음쓰는 일에 실패한 것이다. 이것은 자기-배신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배신하는 사람은 필히 자아 존중감을 상실한다. 최성호는 그러한 자아 존중의 상실을 '심리적 파국'으로 부른다. 자기파괴적 의지와 심리적 파국 사이에는 준-논리적 관계가 있다.
자기파괴적 의지를 가진 인간은, 순전히 타인이나 환경의 속박으로 인해 자신의 이상을 의지하지 못하는 경험과는 다른 심리적 결과를 보인다. 자기파괴적 의지를 갖는 인격은 내적 파괴를 경험하며, 다시는 (자신이 파괴한) 이상에 대한 의지를 갖기 힘들다.
한스는 중퇴 후,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금 <하일러적 가치>에 대한 의지를 발현할 수 없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가 '자기파괴적 의지'를 가졌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한스는 <하일러적 가치>에 대한 의지를 스스로 부정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이 ‘자기파괴적 의지’를 가진 행위자가 경험하게 되는 ‘심리적 파국’이다.
결말: 한스의 비극을 이해하는 한 가지 해석
이후 한스는 공장에 취직하게 되고, 시골 학교 친구들이 살게 되는 평범한 삶으로 나아갈것임이 것임이 암시된다. 수습공 한스는 퇴근 후 동료들과 회식 이후, 강에 빠져 죽게 된다.
… 그가 어떻게 물에 빠졌는지 아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어쩌면 길을 잃고 헤매다 가파른 곳에서 미끄러졌을지 모른다. 어쩌면 물을 마시려다가 삐끗 균형을 잃었을 수도 있다. 혹은 아름다운 강물에 홀려 몸을 숙였다가 평화와 깊은 안식이 가득 깃든 밤과 창백한 달을 보고, 피로와 두려움의 조용한 강요에 떠밀려 죽음의 그늘에 빠졌을 수도 있다.
이후 한스의 장례식에서 구둣방 주인 플라이크는 한스의 아버지에게 말한다.
구둣방 주인은 교회 묘지 문을 나서는 프록코트를 입은 신사들을 가리키며 나직하게 말했다.
“저기 신사분들이 가시네요. 저분들도 이 아이가 그 지경이 되는 걸 도와준 셈이지요. … 아버님과 저, 어쩌면 우리도 그 아이한테 소홀했던 것이 많을 겁니다. …”
위 결말에서 한스의 죽음을 ‘인격적 죽음’으로 이해했을때, 한스의 삶이 비극인 이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될 수 있다.
앞절에서 필자는 한스가 스스로 자신의 이상을 포기하는 자기-배신을 수행했고, 그러한 행위가 자기-배신이라는 점에서 '자기-파괴적 의지'라고 설명했다. 이것은 일종의 '인격의 죽음'이라고 볼 수 있다.
한스의 죽음을 ‘인격적 죽음’이라고 이해할 때, 한스의 육체적 죽음이 왜 정확하게 묘사되거나 설명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한스의 인격적 죽음은 그의 육체적 죽음 이전에 이미 결정된 것이다. 그리고 한스의 인격적 죽음이 그의 삶이 비극이라는 결말의 핵심적 이유로 해석했을 때, 한스가 강물에 왜 강물에 빠졌는지는 전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한스의 삶이 비극인 이유가 그의 ‘인격적 죽음’에 있다는 필자의 설명에 따라, 구둣방 주인 플라이크의 말도 이해될 수 있다. 플라이크는 한스의 죽음에 대해, 우리 어른들도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앞서 살펴보았듯, 한스가 강물에 빠진 이유에 대해서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 작중 인물들 또한, 한스가 당한 사고의 원인에 대해 어떠한 지식도 가지지 않는다. 이때 우리는 한스의 육체적 죽음에 대해, 충분히 불의의 사고 또는 자살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플라이크는 한스의 죽음에 대해 교사들과 어른들의 책임을 말한다. 플라이크의 주장이 비상식적이거나 무의미하지 않다면, 한스의 육체적 죽음과는 무관한 어떤 이유 때문에 한스의 삶이 비극으로 끝났다고 이해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리고 한스의 ‘인격적 죽음’이 그의 비극을 이끌었다는 필자의 설명은 플라이크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적절한 설명이 된다.
Frankfurt 1999, Autonomy, Necessity, and Love, Cambridge Univ Press
최성호 2019, 『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인가』, 필로소픽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한미희 역,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