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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mpado Mar 17. 2022

한 장의 소설_3월의 비

비가 온다. 창문에 닿는 빗소리가 세차다. 자칫하면 창문을 뚫고 쏟아질 것만 같은 기세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빗소리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제나 그제 있었던 일도, 잠깐 내려놓은 안경의 위치도 기억나지 않는 판에 마지막 빗소리가 언제였는지 기억날 리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비가 내릴 때 내가 어떤 걸 바랐는지는 잊지 않았다. 기억하고 있다. 나는 비가 더 무섭게 더 세차게 내리길 원했다. 누군가에게 큰 피해가 되지 않는 선 안에서 최대치의 폭우가 쏟아지기를. 비가 그렇게 내려주기만 한다면 재가 되어버린 곳곳과 고스란히 느껴지는 짓누름 모두가 쓸려가거나 사라질 것 같았다. 세상에는 더 슬픈 사람들이 많아서 나는 울지 않았다. 그들의 슬픔이 너무 커다랗고 떠들썩해서 나는 소리를 죽였다. 그러나, 만약, 하늘이 비를 퍼부어준다면 그 안에 숨을 요량이었다. 목 놓아 시끄럽게 토해내고는 나와 비 사이의 비밀로 만들어 보려했다. 그러나 고대하던 만큼의 비가 내려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소리 내는 법을 잊는 바람에 나는, 또한, 숨지 않는 법을 잃어버린 탓이다.  


   내 앞에는 말라버린 꽃잎이 모여 있다. 친구가 선물해 준 꽃을 집에 두고 며칠을 비웠다. 내가 집을 비우지 않았더라도 꽃이 시들고 잎이 떨어지는 수순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피어난 순간을 용액 속에 박제하는 방법이 아니라면 꽃이 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꽃이 진다는 건 아이들도 알고 나도 안다. 알지만 모르고 싶었다. 떠나는 것들이 싫어서. 숨이 다한 꽃도 마찬가지다. 바라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말라비틀어져 원래의 형태보다 작아지고 툭 하고 건들면 곧 바스러질 모양새인데도 그것대로 고와서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나는 생각했다. 꽃은 생을 다하고 나서 또 다른 생을 살 수도 있겠다고.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사진을 본 한 친구가 자신의 화병 앞에 떨어진 꽃 사진을 보내왔다. 나는 죽은 꽃에 다음 생이 주어지는 것 같지 않냐고 물었다. 친구는 꽃에 주어지는 건 다른 생이 아니라 다른 모양의 아름다움일 거라고 대답했다. 나는 친구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생을 바라는 건 나의 마음이지 진실은 아니다.


   꽃을 선물해 준 친구가 나를 혼자 두지 않은 날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다른 사람들이 부럽다고 말했다. 친구는 다른 사람들은 힘든 게 없을 것 같냐고 물었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 힘듦이야 모두에게 있다. 개개인에게는 각각의 고난과 고통이 시시때때로 주어진다. 내가 말하는 다른 사람들이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하하 호호 떠들고 깔깔대며 웃을 수 있는 이들이 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그렇게 지낼 수 없을 까 봐. 또 두려웠다. 내 곁의 사람들이 내 옆에서는 그럴 수 없을까봐. 씩씩한 척 괜찮은 척 튼튼한 척 갖가지 척을 외투로 두르고 집 밖을 나섰다. 돌아온 뒤 몇 시간을 암막 속에 누워있더라도 나가서만큼은 그럴 수 있었다. 나는 연기를 제법 한다고 생각했는데 친구가 티가 난단다. 그러지 말라고, 그러지 않아도 된단다. 울고 싶으면 울고 슬프면 슬퍼하면 될 일이지 아닌 척할 일이나 미안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 하나에서 두 개가 되는 슬픔이 어째서 반이 된다는 걸까. 그런데도 마음이 자꾸 허물어진다. 삐쩍 마른 몸과 마음으로도, 두 번째 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름다움을 남길 수 있을까. 비가 그쳤다. 하늘이 흐린데도 시야가 밝아졌다. 어제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보인다. 나는 오늘 고민해 볼 참이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빗속인지 아니면 풍경 속인지. 지면서도 아름다움을 남기는 존재가 있는데 나는 지기는커녕 아직 생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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