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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Aug 07. 2023

고별 예배에서

아내에게 쓴 마지막 편지

[이 아침에]

“잘 가요. 안녕 내 사랑”

[Los Angeles]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3.08.06 19:00 수정 2023.08.05 23:24


이정아/수필가


우리 교회에는 환자실이 있다.  대예배실 오른편에 나처럼 면역력이 없는 환자들이 격리 예배 드릴 때 이용하는 작은 방이다. 편한 소파에서 티브이 화면으로 생중계되는 예배를 본다. 팬데믹 기간에는 대면예배에 참석하는 성도수가 줄어서 그 환자방은 거의 내 차지였다.


내가 환자 예배실의 단골손님이고 가끔 부목사님 사모님이 들어와 쉬셨다. 면역체계 이상으로 늘 아프신 분, 6개월마다 항암을 하시는 분. 동병상련으로 나와 마음이 통했던 환자실 동문이다.


지난주  55세의 그 사모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고 오늘 교회에서 고별예배(천국 환송 예배)를 드렸다.


부목사님이 아내에게 쓴 편지를 읽으신다. “못난 남편 만나 고생하고 수고 많았어요. 미안하고 고마워요. 아프다며 다리 주물러라 물 떠 오라 쓰레기 버려라 청소해라 당신의 잔소리가 안 들리니 너무 적적하네. 새벽기도 가려면 9시에는 자야 하는데 한시에도 두시에도 당신 없으니 잠이 안 와요. 세 아이들은 걱정 말아요 내가 안 굶기고 잘 보살피리다. 이젠 아무 곳에도 당신이 없어요. 이제 내 마음속에(왼편 가슴을 두드리며) 있네요. 천국 가서 주님 품에서 푹 쉬어요. 잘 가요 안녕 내 사랑!”


목사님은 평신도였다가 전도사님 이셨다가 두 해 전에 늦깎이 목사 안수받으셨다. 사모님은 편찮으신 몸으로 간호사 일을 하며 내조를 했다. 많이 힘드셨을 것이다. 무뚝뚝한 목사님이 마지막 구절에 “잘 가요. 안녕 내 사랑”하자 모든 교인이 울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목사님은 다정한 분이셨던 거다. 사모님도 여한이 없으시리라.


나도 사모님과 꼭 같이 늘 남편에게 아픈 핑계로 이거 해줘 저거 해줘 했는데 남편도 나 없으면 적적하려나? 내 순서도 머지않을 것 같은 기분이 문득 들었다.


남편에게 내 장례식에서 인사말을 할 때, 오늘 목사님이 하신 것과 꼭 같이 하라며 주문했다. 끝에 “잘 가요. 안녕 내 사랑”을  붙이라고 그러면 좋겠다고.

남편은 어처구니없다며 순서 없이 오고 연습 없이 가는 인생에 누가 먼저 갈지 아무도 모른다나? 평생 골골한 내가 먼저 갈 테니 꼭 그리하라고 다짐받았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경건해진다. 죽음은 또 모든 것을 포용한다. 때문에 죽음은 원수조차 용서하게 만들기도 한다. 화해의 메신저가 되는 셈이다. 모든 것이 용납되는 죽음 앞에선 그저 한마디 “잘 가요. 안녕 내 사랑” 이면 족할 듯싶다.

 



언제인가 한 번은


오세영(1942-)


우지 마라 냇물이여,

언제인가 한 번은 떠나는 것이란다.

우지 마라 바람이여,

언제인가 한 번은 버리는 것이란다.


계곡에 구르는 돌처럼,

마른 가지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삶이란 이렇듯 꿈꾸는 것.


어차피 한 번은 헤어지는 길인데

슬픔에 지치거든 나의 사람아,

청솔 푸른 그늘 아래 누워서

소리 없이 흐르는 흰 구름을 보아라.


격정(激情)에 지쳐 우는 냇물도

어차피 한 번은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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