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지수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이정아
결혼 후 5년을 넘겨 아이가 태어나자 온 집안이 난리도 아니었다. 아이 못 낳는 며느리라고 눈총깨나 받던 내가 증명하나를 떡 내놓으니 뒷전에서 수군대던 사람들이 낯이 없게 되었다. 속이 꼬부라져 있던 나는 그게 제일 좋았다. 그동안 받은 설움이 다 가시는 듯하였다. 친정엄마 말을 빌면 고추(까지) 달고 나와 우리 모녀의 기를 살려주었단다. 친정엄마는 당사자인 나보다 속으로 얼마나 애를 태우고 기도했는지 모른다.
갓 태어난 아이는 존재만으로도 남에게 기쁨이 된다. 아무것도 할 줄 몰라도 아이는 가족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행복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어른이 되어감에 따라 인간은 점점 행동으로 가치를 판단받게 된다. 더욱이 그 행위가 나보단 남을 위한 것일 때 ‘ 성숙한 삶이자 보람 있는 삶’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에는 존재(being) 보단, 무엇을 하고 사는가(doing)가 중요한 화두가 아닐까 한다.
요즘 들어 관심을 많이 받는 학문 중에 행복학(Science of Happiness)이라는 것이 있다. 타임지에 특집으로 실린 기사를 보니,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자녀(77%), 친구(76%)처럼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남을 위한 봉사(75%)도 거의 비슷한 비율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8가지 방법을 제시한 정신과 교수의 리포트에는 첫 번째로 지금 내가 가진 복을 헤아려보라고 했고 두 번째가 남을 위해 봉사나 수고를 하라고 했다. 나와 내 주변을 care 하는 것이 행복의 첫 번째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남을 행복하게 하면 내가 행복해진다는 것은, 알면서도 쉽게 행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남을 위하고자 할 때는 나의 것을 희생해야 하니 그것이 어려운 것이다. 자신의 시간이나 물질의 희생 없이 남을 돕는 것을 진정한 봉사라고 할 수 있을까? 사회에 참여하고 대인관계의 기여도가 높을수록 행복지수는 배가 된다고 조사는 이야기하고 있다.
주변에 가끔 이런 분이 계시다. 뭐든 다 간섭하고 싶고 봉사의 그 중심에 서고 싶은데 남의 시간이나 남의 물질을 이용하는 분. 이를테면 얌체족이다. 얼굴마담처럼 생색은 혼자내면서 희생은 전무한 사람. 받는 게 당연하고 갚을 줄 모르는 사람. 한마디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끼어있는 단체나 그룹은 불편하다.
위선의 너울을 쓰고 본인만 인정하는 품위로 포장한 채 널뛰듯 한다. 바쁜 만큼 행복하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