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아 Sep 07. 2017

형사 콜롬보의 촉으로

의심반 호기심반

수필가  이정아

이사 온 지 3주가 넘었어도 모든 것이 낯설다. 아직도 식료품은 코리아타운 예전 아파트 근처 마켓 가서 봐온다. 옆집과는 얼굴도 마주치지 못했다. 다만 길에 주차해 놓은 내 차에 쪽지를 끼워놓은 것은 읽었다. "네 차가 내 집 드라이브웨이를 막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일종의 경고장이었다.

원 이런 불친절한 사람이라니, 새 이웃에게 이런 쪽지를 보내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토요일 아침 옆집에 인기척이 나기에 나갔다. 심술 첨지 백인인 줄 알았는데 자그마한 동양계 할아버지다. 영화 닌자 시리즈에 나오는 일본 배우 같았다. 서로 인사하며 이름을 말하는데 " 영 킴" 이란다. 갑자기 내 입에서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한국분 이세요?"
"나, 한국사람이야. 한국말 몰라" 아주 서툰 한국어다.
그래도 내가 한국사람이라니 반가워한다.

손에 작은 물통과 솔, 걸레를 든 할아버지는 한 달 전 사별한 아내의 무덤에 가는 길이란다. 비석을 닦고 주변을 청소하러 매일 간단다. 세상 떠난 그의 아내 안젤라는 남편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 삶을 살았겠다 짐작했다. 안젤라는 히스패닉계 여성이었다. 킴 할아버지의 한국어가 서툰 이유이기도 하다.

70 초반에 일찍 혼자된 노인의 일상은 무료했다. 아침 일찍 묘지에 다녀와서는 반려견과 놀다가 앵무새와 말을 하다가 텃밭 돌보고 우리 아이가 학교 파하고 올 때를 기다린다. 그의 시간이 끈끈한 점액질처럼 천천히 지겹게 지나는 중이었다. 장성한 아이들은 모두 멀리 사니 우리 아이가  영 킴의 새 친구가 되었다.

사별의 우울에서 조금 벗어났는지, 어느 날 너희 가족들과 친해지고 싶어 한국과 한글을 배우고 싶단다. 한국 문화원의 강좌를 소개했다. 말이 조금 익숙해지니 한국의 스포츠 선수들을 화제에 올리고 북한 이야기도 하며 통하려 애를 쓴다. 그 후론 컴퓨터 학원과 캘리그라프 학원에 다닌다고 들었다. 그의 되찾은 생기에 축하를 보냈다. 사별한 지 3년 여만에 안정을 찾은 듯하다.

낯선 편지가 자꾸 우리 집으로 배달되었다. 수신자가 한글 이름인데 주소는 옆집 주소이다. 우리 집이 이 동네의 유일한 한국인이므로, 우체부가 발신지가 사우스 코리아인 한글 편지는 무조건 우리 것인 줄 알고 가져오는 것이다. 편지를 갖다 주러 가니 할아버지 말이 한국사람이 들어와 산다고 한다. 학원에서 만난 한국인이라나?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가 방을 하나 세놓으셨나 보다 했다. 가끔 마주치는 여인은 30 중반으로 보이는 한국 여자이다. 차도 없어서 할아버지와 학원도, 마켓도 늘 동행한다.

안면을 트자 그 여성이 종종 부탁을 해온다. 명품 백, 신발을 사고는 포장은 우리 집에 두고 알맹이만 가져간다. 생전 명품을 내 돈 주고 산 적 없는 우리 집에 구찌, 쁘라다, 펜디, 샤넬 쇼핑백이 쌓인다. 가끔 한국으로 송금도 부탁한다. 자기는 은행계좌가 없단다. 한국의 시골 주소로 대신 송금도 해주었다. 할아버지 몰래 처리하는 게 수상쩍었다. 여자 말로는 친척이라는데 할아버지는 학원에서 만났다고 벌써 말했다. 여자는 할아버지와 내가 담장 너머 이야기하는 것도 막고 거리를 두려고 애를 쓴다.

여자가 들어오기 전 마치 친정아버지 같았던 킴 할아버지가 조금 서먹해졌다. 의심병이 도져 콜롬보 형사처럼 추리에 추측을 하느라 머리깨나 아팠다. 할아버지가 먹다 남긴 음식을 여자가 먹는 걸 보면 부부 같기도 하고. 아픈 할아버지 목욕을 해드린다니 간병인 인가도 싶었다. 명품을 얻어가지는 솜씨로 보면 꽃뱀일까 의심도 했다. 이곳에서 태어난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항공사의 엔지니어로 일했다. 연금도 많을 텐데 할아버지의 말년이 다 털려버리지 않기를 기원했다.

지난 5월 남편의 생일 파티에 건너오시라고 해도 안 오신다. 내 남편과 할아버지의 생일이 5월 비슷한 시기여서 함께 생일파티도 했었는데 여자가 들어온 뒤론 각자 치른다. 음식을 덜어 가지고 갔더니 마침 여자는 없었다. 할아버지가 눈이 어둡다며 들어와서 식탁 위에 음식을 놓아달란다. 음식을 놓다 얼핏 보니 식탁 옆 장식장에 카드가 펼쳐져 진열되어있었다.  며칠 전 어머니날에 보내온 할아버지의 아들 제프리 킴의 카드였다. "Happy Mother's Day to Cool Step mom!"이라고 인쇄된 카드를 자기보다 손아래인 그 여자에게 보낸 것이다.

이 곳 사람들 참 솔직하기도 하다. '계모에게'라고 굳이 인쇄할게 뭐람. 그래도 후유 안심이 되었다. 나이차가 부녀지간만큼 많아도 꽃뱀은 일단 아니니 신경 꺼도 되겠다.


콜롬보 형사 스타일로 묻고 싶다. "아 참, 그런데 두 분이  결혼을 언제 어디서 했죠?"


문학춘추 100호 특집

꽁트 2017




작가의 이전글 "저울아 저울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