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외교관> 시즌 3
(스포일러 있습니다)
<외교관>은 <홈랜드>나 <웨스트 윙> 같은 정치 스릴러의 계보를 잇지만, 그 결은 확연히 다릅니다. 과거의 작품들이 미국의 유능함을 과시하거나 위기 극복 신화를 그려냈다면, <외교관> 시즌 3은 카메라를 안으로 돌려 미국의 감추고 싶은 속살, 즉 스스로의 과오와 도덕적 딜레마, 그리고 ‘자기혐오’라 부를 만한 깊은 내면의 균열을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마치 이 드라마는 자유의 수호자이자 세계의 리더라는, 멋지고 화려하게 그려진 미국의 공식적인 자화상을 가져와 날카로운 메스로 가차 없이 해부하는 듯합니다.
특히 시즌 3은 단순한 외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미국의 ‘영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드라마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건국 신화와 때로는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강대국으로 행동하는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은 국가가 겪는 내면의 갈등을 드라마로 그려냅니다. 그리고 이 거대한 갈등은 드라마의 중심에 있는 두 인물, 케이트와 할 와일러 부부를 통해 적나라하게 상징화됩니다.
저무는 제국의 초상: 할 와일러라는 ‘과거’
할 와일러(루퍼스 스웰)는 카리스마와 비밀 거래, 규칙을 깨서라도 결과를 만들어 내는 능력으로 명성을 떨쳤던 과거 시대의 ‘스타’ 외교관입니다. 그의 이력은 냉전 이후 미국의 외교 정책 그 자체를 떠올리게 합니다. 일방적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판단이 항상 옳다고 믿으며, 의도치 않은 파국의 씨앗을 뿌리는 ‘카우보이 외교관’의 전형입니다.
할의 인간적인 매력은 이 상징이 성공하는 핵심 열쇠입니다. 시청자들은 케이트처럼 그의 파괴적인 본성을 알면서도 그의 매력에 끌립니다. 이는 미국을 향한 세계의 양가적인 감정과 닮아 있습니다. 세계는 미국의 문화와 이상을 동경하지만, 예측 불가능하고 이기적인 힘의 행사를 두려워합니다. 제작진이 할을 매력적인 인물로 그린 것은 시청자를 공범으로 만드는 영리한 장치입니다. 우리는 할에게서 미국을 향한 세계의 애증을 동시에 느끼며, 이는 우리의 비판을 더욱 날카롭고 불편하게 만듭니다.
새로운 시대의 딜레마: 케이트 와일러라는 ‘대안’
남편 할이 낡은 미국식 리더십의 종말을 상징한다면, 케이트 와일러(케리 러셀)는 시대의 전환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상징입니다. 그녀는 할로 대표되는 과거에 대한 ‘대안’이자, 다가올 미래의 ‘불완전한 희망’입니다.
케이트의 리더십은 할의 방식과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할이 카리스마와 일방적인 결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케이트는 끈질긴 대화와 동맹과의 협력, 즉 외교의 본질을 통해 해법을 찾으려 합니다. 이는 더 이상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할 수 없으며, 압도적인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현실 인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케이트를 순진한 이상주의자로 그리지 않습니다. 그녀는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끊임없이 실수하고 고뇌하며, 때로는 질투와 경쟁심에 사로잡히는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바로 이 ‘불완전함’이 그녀를 더욱 중요한 상징으로 만듭니다. 그녀의 내적 갈등은, 과거의 영광을 버리고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하는 미국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왜 케이트가 아닌 할이었나?: 권력의 냉혹한 계산법
시즌 3 초반, 가장 큰 반전은 모두가 유력 후보로 여겼던 케이트가 아닌 할이 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이 결정은 권력의 속성과 미국의 현재 상태를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새로 대통령이 된 그레이스 펜의 냉혹한 정치적 계산입니다. 펜의 입장에서 케이트는 자신의 비밀(과거 테러 음모)을 아는 가장 위험한 정적입니다.
반면 할은 펜에게 훨씬 유용한 카드입니다. 그는 대중적 인기를 가졌으며, 전 대통령의 죽음에 연루되었다는 약점까지 가졌습니다. 펜은 할을 부통령으로 만들어 그의 영향력을 통제하고, 케이트를 런던에 묶어 둠으로써 이 강력한 부부의 연대를 '분할하여 지배'합니다. 결국 펜의 결정은 능력이나 원칙이 아닌, 오직 권력 유지와 위협 제거라는 목적 아래 이루어집니다. 이는 도덕적 나침반을 잃고, 검증된 능력(케이트) 보다 통제 가능한 카리스마(할)를 선호하는, 자기 파괴적인 충동에 사로잡힌 미국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유리 절벽과 불가능한 임무
케이트는 주영 대사이자 ‘세컨드 레이디’라는, 전례 없고 기형적인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도록 강요받습니다. 이는 애초에 성공하기 힘든, 실패가 예정된 자리입니다.
이 설정은 ‘유리 절벽(glass cliff)’ 현상(여성이 조직의 위기 상황에 리더로 임명되는 경향)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케이트에게 주어진 임무는 남편과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대통령이 만들어 낸 정치적 지뢰밭을 헤쳐 나가는 것입니다. 그녀가 분노하고, 스트레스에 무너지며, 때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순간들은 개인의 약점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적대적인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물로 그려집니다. 드라마는 유능한 개인이 시스템에 의해 어떻게 한계까지 내몰리는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두 개의 결혼, 두 개의 권력 모델
드라마는 두 쌍의 부부(케이트/할, 그레이스/토드)를 통해 현대 권력이 작동하는 두 가지 방식을 보여줍니다. 와일러 부부의 권력은 노골적이고 전투적입니다. 그들의 관계는 끊임없는 논쟁과 경쟁으로 이루어진, 눈에 보이는 투쟁입니다. 이는 한쪽이 지배하고 다른 쪽이 저항하는 권력 투쟁의 축소판이며, 케이트가 캘럼 엘리스와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조차 이 방식(권력을 욕망하고 타인을 이용하는)을 반복하게 만듭니다.
반면 펜 부부의 권력은 조용하고 불투명합니다. 겉으로는 그레이스 대통령이 모든 힘을 쥐고 퍼스트 젠틀맨 토드 펜은 수동적인 배우자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소통은 암호 같습니다. 이는 마치 과거의 정치가 카리스마 넘치는 개인들의 공개적인 싸움(할)이었다면, 현대의 정치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과 막후의 조용한 영향력(펜)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신뢰의 종말과 미국의 민낯
시즌 3의 마지막 장면은 드라마의 모든 상징을 가장 강력하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압축합니다. ‘포세이돈’ 협상 과정에서 할의 결정적인 도움을 받은 케이트는, 그와의 관계가 결코 끊어낼 수 없는 운명 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그녀는 캘럼과의 새로운 관계와 독립적인 미래를 포기하고, 할과 함께 워싱턴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이 순간은 분열되었던 미국의 두 얼굴—미래(케이트)와 과거(할)—이 마침내 화해하고 통합될 수 있다는 희미한 희망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바로 그 희망의 정점에서, 케이트는 할과 대통령이 자신의 외교적 노력을 연막탄 삼아 러시아의 핵무기 ‘포세이돈’을 비밀리에 훔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할의 ‘도움’은 파트너십의 회복이 아니라, 케이트를 거대한 게임의 말로 이용한 ‘기만’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이 장면이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합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이는 신뢰의 완전한 파괴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지정학적 차원에서 이 장면은 ‘미국 예외주의’의 가장 추악한 민낯을 폭로합니다. 동맹국(영국)의 영해에서, 동맹의 동의 없이 비밀 군사 작전을 펼치는 행위는 ‘세계의 경찰’이라는 명분을 완전히 상실하고 오직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불량배’ 국가의 모습입니다. 이는 동맹을 존중하는 리더십(케이트)이 아니라, 동맹을 이용하는 패권주의(할)의 발현입니다.
케이트는 자신이 사랑하고 벗어나려 했던 남편이 실은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미국의 모습, 즉 이상을 잃고 오직 힘의 논리에만 집착하는 제국의 그림자, 그 자체임을 깨닫습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이 순간을 통해 드라마는 미국이 자신의 파괴적인 과거(할)와 화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완전히 잠식될 수 있는 위험한 기로에 서 있음을 경고합니다.
<외교관> 시즌 3은 정치 스릴러로서 성공했지만, 그 진정한 성취는 미국이라는 국가를 향한 날카로운 자기 성찰의 도구로 기능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국가 앞에 깨진 거울을 들어 보이며, 강력하지만 방향을 잃은 제국의 초라한 자화상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시즌의 마지막은 두 주인공을 다시 한번 벼랑 끝으로 내몰며, 이는 미국이 처한 상황에 대한 최종적인 진술처럼 읽힙니다. 국가는 자기 파괴적인 과거(할)와 불확실한 미래(케이트) 사이에 갇혀 있으며, 쉬운 해답은 보이지 않습니다.
<외교관>은 ‘미국 예외주의’라는 낡은 신화를 해체하는 최근의 문화적 흐름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는 미국이 마침내 자신의 과오와 도덕적 딜레마, 그리고 ‘자기혐오’와 마주하고, 더 이상 세계의 유일한 주인공이 아닌 세상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어려운 여정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외교관>은 시즌 4를 확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