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밀도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기어이 그 무례한 태양이 들이닥쳤다.
커튼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아침 햇살은 방 안의 정체된 공기를 난폭하게 휘저었다. 빛의 기둥 속에서 먼지들은 제 죽음을 모르는 금가루처럼 무력하게 춤추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 부유하는 입자들을 응시했다. 콧속으로 훅 끼쳐오는 냄새들이 그녀를 현실로 길러 올렸다. 눅눅한 소금기, 오래된 목조 건물의 건조한 나무 향, 갓 내린 커피의 고소한 탄내, 그리고… 낯선 남자의 비릿하고도 달큰한 살 냄새.
밤의 냄새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밤은 모든 상처를 은폐하고 욕망을 왜곡하지만, 아침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때로는 잔인할 만큼 투명하게 발가벗긴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이불을 끌어당겨 쇄골까지 덮으려 했다. 그것은 몸에 박힌 짐승의 습성이었다. 지난 몇 년간, 그녀는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가장 먼저 자신의 ‘결손’을 은폐하는 훈련을 해온 사람처럼 움직였다.
하지만 손이 차가운 리넨에 닿기도 전에 멈칫했다. 햇살이 그녀의 왼쪽 가슴을 정면으로 사격하고 있었다. 밤사이 격렬하게 뒤척인 탓에 상체는 완전히 노출되어 있었다. 비스듬히 누운 그녀의 몸 위로 선명하고 기다란 흉터가 빛을 받아 은백색으로 도드라져 보였다.
‘아….’ 그녀는 숨을 멈췄다. 이상했다. 언제나 징그러운 지네처럼 살죽을 파고들던 그 흉터가 오늘 아침에는 낯선 섬의 해안선을 그려놓은 등고선처럼 보였다. 혹은 치열했던 생존의 전장에서 살아남은 전사가 수여받은 낡은 훈장 같기도 했다. 수치심이 차올라야 할 자리에 묘한 해방감이 고였다. 적나라함이 주는 뜻밖의 평화였다.
“일어났어?” 벤의 낮은 저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그는 이 빠진 머그잔 두 개를 들고 침대 맡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목이 늘어난 회색 러닝셔츠 차림의 그는 햇빛을 등지고 서 있었다. 그의 실루엣 위로, 간밤에 그녀가 손톱으로 새겨놓은 붉은 자국들이 어깨와 목덜미에 선명했다. 그 욕망의 낙인들을 마주하는 순간, 그녀의 귓가에 어젯밤 자신이 내뱉은 교태 짙은 신음이 환청처럼 휘몰아쳤다. 평생 스스로를 ‘조신한 여자’라는 프레임에 가두어왔던 그녀로서는 생경한 자신의 목소리였다.
벤은 침대 모서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잔을 건넸다. “설탕은 안 넣었어. 필요하면 말해.” “고마워.” 그녀는 말없이 상체를 일으켜 머그잔을 받았다. 이불이 속절없이 허리께로 흘러내렸음에도 그녀는 가슴을 가리지 않았다. 벤의 푸른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에서 시작해 목선을 타고 내려와 왼쪽 가슴의 흉터 위에 잠시 머물렀다. 1초, 2초.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영겁의 심판대 같았다. 그러나 그 시선에는 그녀가 평생을 피해 도망쳤던 것들이 없었다. 평가도, 혐오도, 가련한 동정도 없었다. 그저 아침이 왔으니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듯 ‘거기에 그것이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시선이었다. 그것은 곧 존재에 대한 긍정이었다.
벤이 손을 뻗어 그녀의 흉터 위를 엄지로 부드럽게 쓸었다. 굳은살 박인 그의 지문이 흉터의 결을 따라 움직였다. “아프지 않았어?” 그의 질문은 화살처럼 직선으로 날아와 그녀의 폐부를 꿰뚫었다. 한국의 의사들은 ‘얼마나 감쪽같은지’를 물었고, 엄마는 ‘남들이 알까 봐’ 울었지만, 이 남자는 오직 그녀의 ‘통증’만을 물었다.
“지금은 안 아파.”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처음엔 죽고 싶을 만큼 많이 아팠지. 멀쩡한 살을 찢고 근육을 들어 올려서, 그 좁은 틈새에 차가운 실리콘 덩어리를 억지로 밀어 넣었으니까.”
“왜 그랬어? 굳이.” 벤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악의 없는 순진함이 서려 있었다. 그 무구함이 오히려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그녀는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뜨거운 액체가 꾹꾹 눌러 담았던 기억의 침전물들을 휘저었다.
“한국에서는… 가슴이 없는 여자는 미완성된 존재라고 여기니까.” 그녀는 창밖의 수평선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의사가 그랬어. ‘아직 젊은데 재건해야죠. 결혼도 해야 하고, 사회생활도 해야 하니까. 요즘은 기술이 좋아서 만져보기 전까진 몰라요’라고. 엄마도 내 손을 붙잡고 울면서 그랬지. ‘하나야, 남자가 알면 싫어해.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야지. 그래야 시집이라도 가지.’”
그녀의 목소리에 자조적인 냉소가 고였다.
“웃기지? 내 몸인데, 내 쾌락을 위한 게 아니었어. 남들이 보기에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정상적인 여자’ 범주에서 탈락하지 않으려고 박아 넣은 이물질이야. 그래서 난… 단 한 번도 이 가슴으로 무언가를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어. 이건 내 살이 아니라, 그냥 얼어붙은 플라스틱 방파제 같았으니까.”
고백이라기보다 오래된 농양을 터뜨리는 토악질에 가까웠다. 그녀는 평생 ‘착한 여자’, ‘조신한 여자’라는 보이지 않는 코르셋을 입고 살았다. 명절마다 ‘살 좀 빼라’와 ‘복스럽게 먹어라’ 사이의 외줄 타기를 강요받던 친척들의 시선, ‘여자애가 목소리가 크면 못쓴다’던 할머니의 엄한 꾸지람,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들었던 그 무미건조한 도덕주의가 그녀의 뼈마디에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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