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바람이 부는 대로

by 조하나


수면을 깨고 올라온 순간, 두 사람이 공유했던 푸른 우주는 거품처럼 터져버렸다.


“푸하-!”


그녀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입에서 호흡기를 떼어냈다. 고막을 짓누르던 깊은 침묵은 사라졌지만, 세상은 여전히 고요했다. 작은 보트는 잔잔한 파도에 맞춰 느리게 흔들리고 있었고, 배 위에 있던 일본인 스태프들은 드문드문 앉아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오후의 풍경이었다.


먼저 보트 위로 올라간 벤이 물속에 있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 하나.”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벤의 손은 여전히 다정했다. 불과 몇 분 전, 푸른 심연 속에서 유일한 구명줄처럼 그녀를 단단하게 지탱해 주던 그 손이었다. 하지만 공기 중에 노출된 벤의 손은 전혀 다른 질감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잡으면 부서질 것 같은, 혹은 잡는 순간 언젠가 반드시 놓아야만 한다는 상실의 예고장 같았다. 물속에서의 구원은 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갚아야 할 부채감이 되어 그녀를 짓눌렀다.


그는 방금 전 물속에서 나누었던 그 은밀한 호흡의 온기를 그대로 간직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태프 중 한 명이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사람 좋게 싱긋 웃었다. 그저 사이 좋은 버디를 바라보는, 악의 없는 미소였다.


그녀는 괜히 그 미소에 움찔했다. 그녀의 내면이 멋대로 사이렌을 울려댔다. ‘봤을까? 우리 분위기가 이상한가?’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스스로 법정에 선 피고인이 되어 몸을 굳혔다. 사람들의 평범한 눈빛조차 그녀의 죄책감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자 예리한 감시의 시선으로 굴절되었다.


그녀는 눈앞에 내밀어진 벤의 손을 외면했다. 지금 그 손을 잡으면, 물속의 환상에서 영영 깨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녀는 벤의 손을 잡는 대신 짐짓 씩씩한 척 핀을 벗어 보트 위로 던져 올렸다. 벤의 손이 허공에서 잠시 머물다 거두어졌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벤의 파란 눈동자에 스친 의문을 그녀는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외면했다.


보트에 오르기 위해 사다리를 잡고 물의 비늘을 벗어내려는 순간, 중력이 그녀의 젖은 수트를 억세게 잡아당겼다. 허리에 찬 웨이트 벨트가 골반 뼈를 짓눌렀다. 수심 20미터 아래서 그녀를 자유롭게 했던 부력은 사라지고, 오직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힘만이 존재했다. 방금 전까지 무중력의 양수 속에서 유영하던 몸은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자마자 다시 무겁고 비루한 육신의 굴레를 뒤집어썼다.


그녀는 다시 육지에 올라섰다. 관계를 증명해야 하고, 타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도록 처신해야 하는, 그녀가 평생을 학습해 온 그 피곤한 세상의 연장선이었다.


스튜디오로 돌아오는 길, 그녀는 말이 없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젖은 수트가 피부에 달라붙으며 체온을 앗아갔다. 몸에 묻은 바닷물이 마르면서 피부가 당겨왔다. 소금기는 끈적하고 불쾌한 막이 되어 전신을 감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명의 근원처럼 느껴졌던 바닷물은 이제 빨리 씻어내고 싶은 비린내 나는 오물처럼 느껴졌다.


스튜디오 문을 열자, 익숙하고 건조한 공기가 두 사람을 맞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무심하게 던져두었던 그녀의 휴대폰이 반딧불이처럼 깜박이고 있었다.


그 작은 직사각형의 기계가 뿜어내는 차가운 인공광은 아침의 태양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집요했다. 서울이 쏘아 올린 감시 위성이었다. 그녀는 홀린 듯, 혹은 덫에 걸린 짐승처럼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 가득 쌓여있는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들. 발신자는 ‘엄마’였다.


‘엄마 친구 둘째 딸 지수 알지? 이번 가을에 식 올린단다. 신랑이 의사라네. 식장 꽃값만 천만 원이 넘는단다. 너도 이제 네 인생 챙겨야지.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엄마는 이제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첨부된 사진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지수라는 여자가 하얀 튜브톱 드레스를 입고 부자연스럽게 활짝 웃고 있었다. 인위적으로 부풀린 가슴 라인과 잘록한 허리. ‘행복한 신부’라는 배역을 완벽하게 연기하고 있는 그 모습이 애잔했다.


엄마. 그녀의 인생을 지배해 온 가장 거대한 모순이자 풀리지 않는 족쇄.


엄마는 지독할 정도로 삶에 충실했다. 술 없이는 하루의 시작도 끝도 없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습성은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빠는 술에 취해 상을 엎고 엄마를 때렸다. 엄마 역시 한마디도 안 지고 바득바득 대들었지만, 그 모든 싸움이 끝나고 아빠가 떠나고 나면 언제나 엄마와 남는 건 그녀였다. 엄마의 그 지독한 맨정신의 인내가 그녀에게는 더 큰 공포였다.


엄마는 자신의 고통을 딸에게 수혈했다. 어린 그녀를 옆에 두고 엄마는 밤새 저주 같은 하소연을 쏟아내곤 했다. 그녀를 때리지 않았다. 그저 건조하고 서늘한 목소리로, 엄마는 끊임없이 자신의 불행을 읊조렸다.


“나는 너 때문에 살아. 너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어. 그러니까 너는 절대 엄마처럼 살지 마. 남자는 절대 믿지 마. 네 능력 키워서 보란 듯이 혼자 살아.”


그녀는 엄마의 감정받이 쓰레기통이 된 줄도 모르고, 엄마의 감정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엄마의 불안, 엄마의 분노, 엄마의 억울함은 탯줄이 잘린 뒤에도 보이지 않는 관을 통해 딸의 혈관으로 흘러들어온다.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남성에 대한 혐오와 불안, 공포를 학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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