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결국 '어디를 보게 하느냐'의 싸움이다

장막 뒤의 가면을 응시하라

by 조하나


'오징어 게임'의 VIP는 어디에 있는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강타했을 때, 대중이 느낀 전율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탈락자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시각적 잔혹함 때문만이 아니었다. 456명의 참가자들이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죽여야 한다"는 극한의 공포에 질려 서로의 목을 조르는 그 처참한 아수라장 위로, 황금 가면을 쓴 VIP들이 안락한 소파에 앉아 크리스털 잔에 담긴 와인을 홀짝이며 그 광경을 즐기는 장면, 바로 그 지점이 우리의 폐부를 찔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 지옥도는 그저 지루한 일상을 달래줄 유희이자, 자신들이 가진 압도적인 권력과 부를 재확인하는 의식에 불과했다. 게임판 위의 말들은 생존 본능에 눈이 멀어 옆 사람을 경계하고 증오하느라, 정작 이 잔인한 게임을 설계하고 조종하는 장막 뒤의 진짜 주인을 쳐다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이 섬뜩한 우화는 비단 드라마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2026년 오늘,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전 세계의 정치 풍경은 <오징어 게임>의 거대한 현실판과 다름없다. 인구 통계학적 변화와 경제적 모순으로 인해 쇠락해 가는 기득권은 자신들의 견고한 성을 지키기 위해 대중에게 끊임없이 '색안경'을 씌우고 귀에다 속삭인다. "네가 가난한 건 저 이민자가 너의 일자리를 뺏었기 때문이야." "네가 불안한 건 저들이 너의 위대한 전통을 모욕하고 있기 때문이야."


정치는 정책의 대결이기 이전에, 근본적으로 시선의 대결이다. 권력을 독점한 자들은 우리의 시선을 끊임없이 옆으로, 아래로, 바닥으로 돌리려 안간힘을 쓰고, 세상을 바꾸려는 자들은 우리의 턱을 강제로 들어 올려 위를, 구조를, 장막 뒤를 보게 하려 한다. 단언컨대, 정치는 결국 '어디를 보게 하느냐'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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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이 설계한 수평적 지옥: '혐오'라는 이름의 마약


로마 제국 시절부터 제왕학의 첫 번째 원칙은 단 하나, '분할 통치'였다. 1%의 지배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악몽은 무엇인가. 그것은 99%의 피지배층이 서로의 피부색이나 종교적 차이를 잊고 단결하는 것이다. 그들이 뭉쳐서 위를 쳐다보는 순간, 소수의 권력이 쌓아 올린 모래성은 거대한 파도 앞의 성처럼 순식간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득권은 대중의 시선이 위로 향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가짜 적'을 만들어내고 전선을 수평으로 넓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 그리고 백인 주류 사회가 설계한 지금의 전장은 교묘하고도 악랄하다. 그들은 대중에게 "다시 위대해질 수 있다(Make America Great Again)"는 거대한 '정치적 폰지 사기'를 제안한다.


냉정하게 보자. 인구 통계학적으로 이미 백인 중심의 세상은 불가능해졌고, 고도화된 자본주의 경제 구조는 낙수효과를 멈춘 지 오래다. 리더들은 이 냉혹한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그들은 진실을 말하는 고통을 감내하는 대신 대중의 불안을 일시적으로 마취시킬 강력한 진통제를 처방한다. 바로 '혐오'라는 이름의 마약이다.


이 과정에서 흑인 인권 운동가이자 사회학자인 W.E.B. 듀보이스가 100년 전에 통찰했던 '심리적 임금' 이론은 21세기에 더욱 강력한 기제로 작동한다. 왜 가난한 백인 노동자는 자신을 착취하여 부를 독점하는 억만장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기득권은 그들에게 정당한 경제적 임금이나 복지를 제공하는 대신, "너는 비록 가난하지만, 적어도 저 이민자나 유색인종보다는 우월하다"는 심리적 임금을 지불한다.


대중은 이 '가짜 우월감'이라는 부도수표를 소중히 받아 들고, 자신의 실질적인 생존권을 헐값에 팔아넘기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것은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종부세 대상자도 아니면서 종부세 폐지를 외치는 한국의 일부 여론 역시, "나도 언젠가는 저 1%가 될 것"이라는 상층 이동의 헛된 망상과, "나는 저들과 다르다"는 허위의식이 빚어낸 비극적 희극이다. 1%는 99%에게 이 달콤한 독약을 먹임으로써, 그들이 영원히 서로를 물어뜯는 투견장에 머물게 만든다.


여기에 제레미 칼 같은 백인 기득권의 이론가들은 "백인이 역차별당하고 있다"는 논리를 제공하며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붓는다. 오랫동안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자들에게 '평등'은 곧 '탄압'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들은 그 박탈감을 '피해자 코스프레'로 정교하게 포장하여, 99%의 분노가 1%를 향하지 않고, 힘없는 소수자를 향하게끔 시선의 방향을 철저하게 '수평'으로 고정해 버린다.





눈을 멀게 하는 자들과 배신의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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