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합법화? 특권을 평등으로 착각하는 기득권의 궤변
최근 1인 가구 증가를 핑계로
남성의 성욕을 불가항력적 본능으로 포장하며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인 대안 모색이 결코 아니다.
오랫동안 여성을 성적 도구로 대상화하며 군림해 온 기득권 카르텔이
자신들의 폭력적인 특권을 방어하기 위해 내뱉는
기만적 발악에 불과하다.
최근 한 남성 아이돌 그룹 신화의 멤버 김동완이 자신의 SNS를 통해 성매매 합법화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유흥가의 확산과 1인 가구의 증가를 거론하며, 이를 덮어두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현실을 직시한 ‘소신 발언’이라며 박수를 보낸다. 참으로 기이하고 씁쓸한 풍경이다. 누군가의 신체를 자본으로 착취하는 '성매매 합법화'라는 의제를 마치 억압받는 남성의 인권 보장인 양 오픈된 공론장에서 점잖은 척 토론하고 떠들 수 있는 것, 실은 그 자체가 이 사회의 기득권 남성만이 누릴 수 있는 오만한 특권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하나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만약 여성 연예인이 공개적인 공론장에서 “1인 가구 여성들의 외로움과 본능을 달래주기 위해 남성 호스트바를 합법화하고 국가가 위생적으로 관리하자”라고 주장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니, 그게 애당초 가능하기나 할까. 필시 ‘소신 발언’이라는 점잖은 타이틀은커녕, 심각한 도덕적 지탄을 받으며 사회적으로 매장당했을 것이다. 성욕을 오직 남성만의 기본값, 나아가 사회가 제도를 만들어서라도 해결해 주어야 할 ‘통제 불가한 자연 현상’으로 취급하는 이 아득한 이중 잣대는 한국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이들이 내세우는 ‘1인 가구’라는 명분 속에는 교묘한 기만이 숨어 있다. 현재 대한민국 1인 가구의 절반 가까이는 여성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 범죄의 타깃이 되기 쉬운 여성 1인 가구의 안전이나 주거 빈곤 같은 진짜 현실은 완벽하게 탈각되어 있다. 오직 ‘가족 제도를 통해 주기적으로 성욕을 해소할 수 없는 혼자 사는 남성’만을 전제조건으로 두고, 이들의 성욕 해결을 국가적 어젠다로 둔갑시킨 것이다.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다는 착각. 그들은 여성이 돈을 벌기 위해 ‘자진해서’, ‘원해서’ 성매매 산업에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선택이 모든 것이 풍족하고 자유로우며 동등한 권력이 보장된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 아님을 그들은 의도적으로 지워버린다.
“특권층은 평등을 억압으로 느낀다”는 명제는 작금의 현실을 관통한다. 성매매 합법화 주장은 결코 합리적인 대안 모색이 아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누려왔던 ‘여성을 성적 도구로 대상화할 특권’을 빼앗기기 싫은 기득권의 날 선 발악에 불과하다. 경제력과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했을지 모르나,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과 젠더 인권 의식에 있어서 이 사회는 여전히 외형만 커버린 ‘5세 아이’에 머물러 있다.
성매매 합법화를 외치는 이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본능론’이다. 최근 ‘1인 가구’의 증가를 핑계 삼아 남성의 성욕이 마치 불가항력적이고 무결한 자연재해인 양 포장하며, 그들의 '인권'을 위해 성욕을 풀 합법적 절차를 국가가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지극히 기만적이고 공허하다.
남성의 성욕은 우주적이고 절대적인 본능이기에 풀어줄 기회를 주어야 하고, 여성의 성욕은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무언가로 ‘대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남성들이 여성의 성욕에 관해 도대체 무엇을 안다고 감히 그런 결론을 내리는가. 실소가 터져 나온다.
이들이 1인 가구 담론에서 여성의 존재를 지우고 여성의 성욕마저 백지화해 버리는 것은 결코 단순한 무지가 아니다. 그것은 남성 중심 카르텔이 오랫동안 써먹어 온 아주 치밀하고 의도적인 권력 유지 방식이다. 만약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하고 주체적인 욕구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해 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남성만이 성욕을 참을 수 없으니, 통제 가능한 여성이 도구로서 헌신하고 봉사해야 한다"는 그들의 낡고 견고한 착취 피라미드가 단숨에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철저하게 남성만을 욕망의 '주체'로 격상시키고, 여성은 그저 쓰이고 버려질 '수동적인 배출구'이자 대상물로 영구히 가두어 두려 발악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최소한의 철학도 없이, 오직 철저히 남성 중심적으로 설계된 '본능 신화'에 기대어 세상을 재단하는 이 천박한 사고방식이 참담할 뿐이다. "남성의 성욕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하고, 여성의 성욕은 약하거나 가볍게 대체 가능하다"는 주장은 과학의 탈을 쓴 채 기득권이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정교한 가스라이팅이자 유사 과학에 불과하다.
현대 진화생물학과 성의학, 뇌과학이 밝혀낸 명백한 팩트는 그들의 얄팍한 궤변을 산산조각 낸다. 여성의 성욕이 약하거나 대체 가능하다는 것은 진화생물학과 뇌과학이 밝혀낸 사실 앞에서는 완벽한 허구다. 현대 성의학이 증명하듯, 여성의 성욕은 남성에 비해 결코 '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르게' 작동할 뿐이다. 여성과 남성의 성욕은 생물학적으로 동등하다. 다만, 여성을 억압하고 대상화하며 ‘성녀 아니면 창녀’로 이분화하여 수치심을 주입하는 남성 중심 사회가 여성의 욕구가 발현될 정서적 교감과 ‘안전한 맥락’ 자체를 철저히 거세해 왔을 뿐이다.
게다가 "남자는 생물학적으로 성욕을 참을 수 없는 종족이다"라는 말은 뇌과학적으로 완벽한 헛소리다. 인간의 뇌에서 본능적 충동을 억제하고 고도의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사령탑은 '전두엽'이며, 남성의 전두엽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훌륭하게 제 기능을 다한다. 남성의 뇌 역시 여성과 다르지 않게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이 완벽하게 정상 작동한다.
직장 상사가 아무리 화나게 해도 주먹을 날리지 않고 분노를 통제하는 그 훌륭한 이성이, 왜 유독 돈으로 살 수 있는 여성 앞에서는 통제 불가능한 자연재해로 둔갑하는가. 왜 유독 자신보다 사회적·물리적 권력이 약한 여성 앞이나, 자본으로 여성의 신체를 지배할 수 있는 상황에서만 그 훌륭한 '통제력'이 마법처럼 증발해 버리는 것일까? 이는 본능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보다 물리적, 사회적 권력이 약한 대상 앞에서만 선택적으로 마비되는 이중성이며, 굳이 참지 않고 권력을 휘둘러도 사회가 눈감아 준다는 것을 영악하게 계산한 결과다. 즉, 그들이 부르짖는 본능의 실체는 생물학적 한계가 아니라, "이 상황에서는 여성을 짓밟아도 기득권 사회가 나의 일탈을 용인해 줄 것이다"라는 비열한 확신이다. 그것은 결코 지켜주어야 할 '본능'이 아니라 빼앗아야 할 '특권'인 것이다.
백번 양보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핑계 삼으려 해도 과학적 모순은 피할 수 없다. 호르몬 수치가 인간의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통제력을 짐승 수준으로 마비시킨다는 것은 학계에서 이미 폐기된 신화다. 게다가 여성의 몸에서도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며, 배란기 등 호르몬 주기에 따라 여성 역시 폭발적이고 강렬한 성적 충동을 느낀다. "남자는 호르몬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그들의 억지 논리대로라면, 세상의 모든 남성들은 평생을 전두엽이 마비되어 이성을 잃은 상태로 살아가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생물학적 호르몬을 만능 방패로 삼아 성매매나 성착취 범죄를 정당화하는 짓은 과학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자 지성적 직무 유기다.
결국 이 모든 현상은 호르몬이 아니라 수천 년간 지속된 철저한 사회적 세뇌의 결과다. 여성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성욕을 드러내는 것은 천박하고 위험한 짓"이라는 가혹한 자기 검열 속에서 자라난다. 반면 남성은 어떤가. "남자는 여자를 밝혀야 남자답지", "성을 돈으로 많이 소비하고 여성을 거느릴수록 능력자"라는 기형적인 서열 문화 속에서 자신의 성욕을 한껏 과장하고 폭력적으로 전시하도록 학습받는다. 이토록 철저하게 기울어지고 조작된 사회적 조건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두고, 뻔뻔하게 "이것이 남녀의 타고난 생물학적 차이"라고 주장하는 꼴을 보라. 이는 마치 누군가의 발을 꽁꽁 묶어 놓고 불공정한 달리기 시합을 시킨 뒤, "역시 여자는 원래 달리기 속도가 느린 열등한 종족이다"라고 결론 내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지독한 기만이다.
돈을 주지 않으면 성관계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불쌍하니 합법화를 해줘야 한다는 논리는 파국적이다. 정 그렇게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국가가 나서서 위생적으로 관리된 성매매 여성을 상품으로 대령해 쾌적한 환경에서 떳떳하게 성욕을 풀 수 있도록 꽃길을 깔아줄 것이 아니라, 여성 인권 보호를 위해 그들에게 화학적 거세 주사를 놓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인 상식이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화학적 거세를 제도화하자고 부르짖지 않는다. 타인의 신체에 대한 최소한의 '인권'과 존엄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장 끔찍한 것은 이 본능론이 향하는 섬뜩한 종착지다. “남자들은 본능을 관리해서 풀어주지 않으면 사회 유지가 안 된다”는 생각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가 위안소를 창설하며 내세운 명분과 소름 돋도록 100% 일치한다. 또한, 이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자발성'이라는 기만도 마찬가지다. 성매매 산업 기저에 깔린 경제적 빈곤과 구조적 착취의 고리는 쏙 빼놓은 채, 얄팍한 시장 논리를 들이밀며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진해서' 성매매를 선택한다고 정당화하는 태도는 어떠한가. 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의 여성들이 그저 돈을 벌려고 자진해서 위안부에 들어갔다고 주장하는 친일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끔찍한 망언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남성의 성욕을 대체할 수 없는 절대 영역으로 성역화하는 순간, 누군가(여성)는 그 폭력적인 본능의 하수구 역할을 강요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만약 당장 전쟁이 터진다면, 이 논리를 신봉하는 자들은 필시 제일 먼저 ‘위안부를 만들자’고 앞장설 자들이다. 뿐만 아니라, 제프리 엡스타인 파일에 기록된 역겨운 소아 성착취나, 고위 공직자들의 룸살롱 성접대 무마 사건들 역시 “권력을 가진 수컷들의 통제하지 못한 본능”쯤으로 완벽한 정당성을 얻게 된다. 논리의 출발부터 단단히 썩어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을 목적이 아닌 한낱 배설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이들의 얄팍한 논리 앞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범죄들조차 아주 손쉽게 면죄부를 얻게 될 뿐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