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은 '엡스타인 전쟁'이다

할리우드가 만든 영웅은 없다

by 조하나





제국의 이중잣대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번화가인 6번가, 주말의 들뜬 공기가 가라앉기도 전인 3월 1일 새벽 2시경, 총성이 울렸다. '이란 국기'가 그려진 셔츠를 입고 '알라의 소유(Property of Allah)'라는 문구가 적힌 후드티를 뒤집어쓴 53세의 세네갈계 귀화 시민권자 엔디아 디아뉴가 평범한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난사를 벌였다.


대형 SUV를 몰고 술집 야외 테라스와 거리를 향해 권총과 소총을 교대로 난사한 이 끔찍한 공격으로, 현장에서 무고한 시민 3명이 목숨을 잃었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으며 피를 흘렸다. 출동한 경찰에 의해 1분 만에 사살된 그의 차량에서는 코란이 발견되었고, FBI는 즉각 이 사건을 전날 벌어진 미국의 이란 공습과 연관된 '보복성 테러'에 무게를 두고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일제히 붉은색 '속보' 자막을 띄우며 이 비극을 미국 본토를 타격한 잔혹한 테러로 대서특필했고, 대중은 '제2의 9/11'이 도래했다는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이 끔찍한 오스틴의 비극은 단발성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철옹성 같던 미국 사회 전체를 거대한 공포의 용광로로 밀어 넣었다. 현재 FBI와 미 국토안보부(DHS)는 이란의 배후 조종을 받거나 자생적으로 동조하는 극단주의자들, 이른바 '슬리퍼 셀(Sleeper Cell)'이 본토 곳곳에서 언제든 추가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며 대테러 경계 태세를 최고 수준으로 격상했다. 이란계 이민자가 밀집한 로스앤젤레스(LA)부터 뉴욕의 한복판, 심지어 샌디에이고의 핵심 해군 기지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이 보복의 공포에 마비된 상태다. 타국의 하늘에 무감각하게 쏟아부었던 미사일이, 결국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부메랑이 되어 미국인들의 안온한 일상과 숨통을 실시간으로 조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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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분노의 스피커들은 단 하루 전 바다 건너 중동 땅에서 벌어진 또 다른 학살에 대해서는 냉담했다. 현지 시각 28일 오전 10시 45분경,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른바 '에픽 퓨리' 작전으로 이란 남부 호르무즈간주 미나브에 위치한 '샤자레 타예베' 초등학교에 정밀 타격 미사일이 떨어졌다. 현지 검찰과 구조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 속에서 현재까지 무려 165명의 어린 소녀(7~12세)들이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95명이 중상을 입었다.


유엔과 유네스코, 그리고 말랄라 유사프자이 같은 인권 운동가들이 "명백한 국제 인도법 위반이자 끔찍한 민간인 학살"이라며 절규했지만, 서방 언론들은 이 거대한 살육의 주어를 교묘히 생략했다. 그리고 그저 '위대한' 미국이 '절대 악' 이란을 무찌르기 위한 작전 수행 중 발생한 어쩔 수 없는 '부수적 피해'이자 정당한 방어 행위로 포장했다.


그러나 현장의 참상은 서구의 그 어떤 수사로도 덮어지지 않는다. 참극 며칠 뒤인 3월 3일, 미나브 현지에서는 굴착기로 100개가 넘는 묫자리를 한꺼번에 파내며 희생된 아이들의 합동 장례식이 치러졌다. 폭격의 잔해 속에서 피 묻은 교과서를 허공에 흔들며 "우리 아이들이 대체 미국에 무슨 위협이 되었단 말인가"라고 절규하는 한 남성의 영상은 제국의 야만성을 고스란히 증명했다. 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마저 "피 묻은 소녀들의 작은 배낭들이야말로 이 잔인하고 무의미한 전쟁의 본질"이라며 경악했다.


미국의 폭격기가 '해방'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서방의 오만한 프레임 뒤에는 정작 이란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의 참담한 생존 딜레마가 철저히 가려져 있다. 최근 반정부 시위에서 부패한 신정 정권의 총탄에 친구들을 잃었던 이란의 청년들조차 외세의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무고한 아이들이 찢겨 나가는 현실 앞에서는 극심한 공포와 분노를 토로하고 있다. 이들에게 미국의 미사일은 억압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맹목적인 살육일 뿐이다.


자신들의 땅에서 벌어진 개인의 폭력은 국가 안보를 뒤흔드는 '테러'가 되고, 자신들이 국제법을 어기고 타 주권 국가에 선제공격을 가한 국가 단위의 폭력은 합법적 '방어'가 되는 이중잣대. 이는 국제 정치라는 무대 위에서 강대국들이 수십 년간 써 내려온 기만의 서사다. 카르마는 반드시 카르마를 부른다. 세상에서 가장 무고한 165명의 아이들을 폭탄으로 죽여 놓고, 텍사스에서 날아온 반작용의 총알 앞에서 미국은 대체 무엇을 기대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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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중심의 세계관을 깨트려야 할 때


한국에서 80~90년대를 거치며 성장한 세대에게 미국 중심의 팝 컬처와 할리우드 영화, 서구 언론은 세계를 해석하는 거의 유일한 창이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서구 중심의 불균형적이고 기만적인 프레임을 완벽한 진실로 믿고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스크린을 가득 채운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미군과 CIA는 언제나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는 고뇌하는 영웅이었고, 중동의 아랍인들은 영문도 모를 분노에 차 폭탄 조끼를 입고 돌진하는 야만적인 광신도였다. 백인 엘리트 지식인들이 쓴 텍스트를 진리처럼 흡수하고, 미국의 정치 시스템과 이념적 지형을 그대로 이식해 온 한국 정치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서양은 절대 선, 중동은 절대 악'이라는 거대한 매트릭스 속에 갇히게 됐다.


미국 시리즈 <홈랜드>에는 이 견고한 매트릭스의 본질을 단숨에 꿰뚫는 묵직한 대사가 등장한다. "미국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경멸한다."


서구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타국의 오랜 역사와 복잡한 딜레마를 결코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이해하는 순간 그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해야 하고, 자신들이 쏘아 올린 미사일에 죽어 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도덕적 가책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의도적으로 상대를 '비이성적인 괴물'로 깎아내리고 철저히 타자화한다. 상대를 벌레나 짐승으로 여겨야만, 양심의 가책 없이 폭격기 버튼을 누르고 방산주 상승에 미소 지을 수 있는 오만함이다.


이 오만함이 만들어낸 폭력의 연대기는 대중의 머릿속에 교묘하게 조작되어 있다. 많은 이들이 2001년 9/11 테러의 참상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불법 침공을 정당화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팩트는 철저히 그 반대다.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을 견제하겠다는 핑계로 미국이 이슬람 극단주의 반군들에게 무기를 쥐여주며 키워낸 탐욕스러운 '개입'이 훗날 알카에다의 9/11 테러라는 끔찍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테러의 공포를 핑계로 미국이 중동을 쑥대밭으로 만든 이라크 침공의 권력 공백(진공 상태) 속에서 인류 최악의 괴물인 ISIS가 탄생했고, 이는 다시 파리 바타클랑 극장의 테러로 이어졌다. 작용이 반작용을 낳고, 그 반작용이 다시 더 거대한 폭력을 잉태하는 지독한 '피의 무한루프'다.


이 거대한 폭력의 순환 속에서 서방 언론의 프레임은 위선의 극치를 달린다. 왜 서구 언론에서 이스라엘은 늘 '무결한 피해자'인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에 대한 서구 사회의 심리적·역사적 부채 의식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의 철옹성이 되었다.


서구 사회에서 이스라엘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즉각 '반유대주의'라는 주홍글씨로 돌아오며, 이는 정치인과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유창한 영어로 서방 언론에 인터뷰하는 이스라엘 대변인들의 목소리는 적극적으로 여론전을 주도하지만, 팔레스타인이나 이란 민중의 절규는 '테러리스트'의 프레임에 갇혀 필터링되기 일쑤다.


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서구의 뒤틀린 부채 의식이 만들어낸 이 이스라엘의 횡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하는가. 적어도 우리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유대인에게 빚을 지지 않았다. 이제는 우리가 서구 언론 중심의 편향된 가치관을 조금씩 깨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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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스타인 전쟁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지옥의 쳇바퀴가 또다시 맹렬하게 돌아가는 꼴을 목도하고 있다. 트럼프, 네타냐후, 하메네이(사망), 푸틴, 시진핑 등 70~80대의 늙은 권력자들, 이른바 '노인 과두정'이 지배하는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고 비열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내린 극단적인 결정의 파국적 결과를 살아서 책임지지 않는다. 국내 정치적 위기를 덮고 권력을 연장하기 위한 비열한 연막전술, 이른바 '왝 더 독(Wag the Dog)'의 제물로 타국의 목숨을 태워버릴 뿐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뜻의 이 정치 용어는, 권력자가 자신의 대형 스캔들이나 치부로 쏠린 대중의 분노를 밖으로 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외부의 적을 만들고 전쟁 같은 거대한 안보 위기를 조작하는 행태를 일컫는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권력(꼬리)을 보전하기 위해 '세계 평화'와 '인권 수호'라는 몸통을 기꺼이 흔들어대며 애먼 이들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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