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이방인'이 말하는 희망과 미래
2026년, 현재 대한민국은 국가를 지탱해 온 '심리적 지형'과 시대의 패러다임이 통째로 재편되는 거대한 지각변동의 한복판에 서 있다. 2024년 12월 3일, 군홧발로 민주주의를 짓밟으려 했던 비상계엄 사태를 맨몸으로 막아내고 헌정 질서를 수습한 주체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승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들은 2025년 조기 대선을 통해 낡은 기득권의 문법을 타파할 적임자를 직접 소환해 '국민주권정부(이재명 정부)'를 세웠다.
오직 주권자인 국민의 굳건한 연대로 출범한 이 정부는 지금 67%라는 압도적인 국정 수행 지지율을 기록 중이다. 이 수치는 소속 당의 지지율을 20% 이상 훌쩍 뛰어넘으며 글로벌 양극화의 한 가운데 있던 대한민국 정치의 굳건한 진영 논리를 깼다. 한 정치인에 대한 팬덤을 넘어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앓아온 구조적 병폐들이 마침내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특히 이 경이로운 지지율은 전 세계 주요국 지도자 지지율 조사에서 당당히 세계 2위를 차지하며, 대한민국 국민이 직접 일궈낸 민주주의의 모델이 이제는 전 세계가 경외심을 갖고 주목하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소년공 출신, 비(非) 서울대. 한국 정치의 견고한 '주류 엘리트' 문법을 완벽하게 깨부순 비주류 리더를 스스로 권력의 정점에 밀어 올린 대중의 결단은,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동안 어떤 낡은 동굴에 갇혀 누구를 향해 화살을 쏘며 살아왔는가.
이처럼 견고한 주류의 문법이 깨지는 것을 보며, 나는 비주류로 살아왔던 나의 20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의 20대는 대한민국 중심부의 잣대로 보면 철저한 비주류이자 '거리의 아이'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대학에 가고, 대학 졸업 후에는 번듯한 직장에 취업해야 한다는 한국 사회의 견고한 패러다임을 따르지 않는 나에게, 같은 공동체 안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혀를 차며 무언의, 혹은 노골적인 압박을 가했다.
남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혀를 차던 홍대 클럽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대학을 다녔고, 졸업 후에도 해외 DJ 공연 프로모션 일을 했으며, 이름 없는 인디 잡지사에서 월급 60만 원을 받는 비정규직 인턴으로 구르며 세상을 배웠다.
그 숨 막히는 획일성의 트랙 위에서 나에게 억압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아빠였다. 명문대를 졸업해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고 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전형적인 한국의 가장. 아빠는 자신이 걸어온 그 모범적이고 무거운 길을 딸인 나만큼은 걷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이른바 '시집가야 할 나이'에 훌쩍 해외로 떠나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나를 응원해 준 건 아빠였다. 인생과 삶은 훨씬 길고 크며, 이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아빠 자신도 누구보다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지만 한국 사회의 장남이자 가부장제의 가장이라는 책임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빠는 장남으로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관습을 깨고 무남독녀인 나 '하나'만 낳았고, 명절마다 장남 집에서 치러야 했던 차례마저 과감히 없애버렸다. 스스로 가부장제의 무거운 의무에서 탈피하며 자신은 물론, 엄마와 딸인 나에게까지 진정한 자유를 선물해 준 것이다.
텔레비전 속 매끈하게 포장된 '평균'의 삶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던 2000년대에 나는, 홍대 길거리에서 외국인, 성소수자, 노동자 등 획일화된 기준표 밖으로 밀려난 다채로운 사람들과 부대끼며 나만의 철학과 호기심을 키웠다. 그 호기심과 열정, 노력, 실력으로 대형 상업 패션지의 에디터라는 주류의 궤도에 진입했지만, 나는 이내 그 화려한 정박지를 박차고 한국을 떠났다. 태국의 꼬따오와 멕시코의 깊은 수중 동굴을 누비는 스쿠버 다이빙 강사가 되어 나의 좁은 세계를 깨부수고 더 깊고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오랜 시간 한국 밖에서, 그리고 획일적인 궤도 밖에서 게오르크 짐멜이 말한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국은 언제나 짙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짐멜이 정의한 이방인은 단순히 오늘 왔다가 내일 떠나는 뜨내기가 아니라 '오늘 와서 내일도 머무는 사람', 즉 특정 집단에 소속되어 함께 살아가면서도 그 주류가 맹목적으로 믿는 낡은 관습에 매몰되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서 전체 판을 객관적으로 꿰뚫어 보는 특수한 위치의 사람을 뜻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나는 한국 사회에서 '이방인'이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 치열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왜 이토록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일까. 그 비극의 기저에는 파울로 프레이리가 갈파한 '수평적 폭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작 분노의 화살을 겨누어야 할 부패한 사법 권력과 기득권 시스템은 아득히 높은 곳에 숨어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데, 밑바닥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민초들끼리 명문대, 강남, 아파트 평수라는 좁디좁은 정답을 두고 서로를 찌르고 압박하며 생존을 다투었던 것이다. 학벌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타인의 시선을 병적으로 의식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고속 압축 성장의 화려한 과실 이면에 세대, 젠더, 계층 간의 혐오라는 지독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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