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왓어바웃이즘(피장파장)은 비겁하다

침묵을 강요하는 세계에 던지는 아시안 여성의 다짐

by 조하나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온 거대한 권력 구조



최근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 하나가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에 등장하는 아시안 비서 '진 차오' 캐릭터가 미디어 속에서 어떻게 평면적으로 소비되는지 분석한 비평이었다. 백인 주인공이 서사를 이끌며 성장하고 화려하게 변신하는 동안 아시안 캐릭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형화된 고정관념 속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짚어냈다.



1편에서 백인 주연인 앤디가 '너드'로 설정된 것은 그녀의 서사적 변화와 성장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일시적인 장치였다. 반면 2편의 서브 캐릭터인 진 차오에게 부여된 '너드'스러움은 철저히 타자화된 아시안의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을 소모하는 기호로 작용한다. 백인 주연의 변화를 위한 서사적 빌드업과, 아시안 조연을 납작한 고정관념에 가두는 것은 애초에 권력의 무게와 맥락 자체가 다르다.



돌아온 반응은 건강한 토론이 아니라 기득권의 거센 방어 기제였다. 수많은 백인 시청자들은 1편의 백인 주인공 앤디도 처음엔 촌스러웠다며, 2편의 아시안 비서 역시 결국에는 메이크오버 서사를 가질 것이라고 나를 훈계하려 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명백한 물리적 팩트로 맞받아쳤다. "이 영화는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했고, 나는 이미 영화를 끝까지 다 보았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진 차오에게 주체적인 성장 서사나 화려한 메이크오버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대중문화 속 평면적인 캐릭터 하나를 비판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왜 그토록 분노하며 날을 세웠을까. 그 기이한 소동은 서구 중심 사회의 뿌리 깊은 백인 우월주의와 아시안 내부의 위계적 모순이 복잡하게 얽힌 거대한 권력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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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층에겐 평등이 억압으로 느껴진다



명백한 팩트 앞에서 논리가 막힌 이들은 아주 치졸한 방식을 택했다. 바로 내 외모를 비하하고 영어 악센트를 조롱하며 논점을 흐리려 한 것이다. 사회학에서는 이런 비겁한 행태를 '톤 폴리싱(Tone Policing)'이라고 명명한다. 권력을 가진 자가 약자의 정당한 비판 내용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을 때, 화자의 말투, 억양, 감정 상태를 트집 잡아 메신저를 공격하며 메시지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억압 기제다. 자신들이 독점하던 '해석의 권위'가 무너지자, 백인 우월주의라는 알량한 기득권에 기대어 메신저의 입을 틀어막으려 한 다급한 방어벽이었다.



나는 그 오만함에 속 시원한 일침을 날렸다. "내 영어에 악센트가 있는 이유는 영어가 내 모국어가 아니며, 내가 최소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오직 영어 하나밖에 못 하는 당신들을 위해 내가 기꺼이 배려해서 영어로 말해주고 있는데, 어떻게 당신들이 내 악센트를 트집 잡을 수 있는가?" 언어적 장벽에 갇힌 단일 언어 구사자들이 이중 언어 사용자에게 도리어 우월감을 표출하는 기막힌 역설이었다. 다양한 문화와 언어의 경계를 넘나들며 쌓아 올린 지적 자본을,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단일 언어 화자들이 함부로 평가하고 조롱할 권리는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타자와 소통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고조차 해본 적 없으면서, 기득권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양 오만하게 행동한다.



흥미롭게도 타 인종은 '아시안', '블랙', '라티노'라는 거대한 덩어리로 쉽게 묶어 부르면서, 정작 자신들을 '화이트'라 칭하면 "일반화하지 말라"며 격분하는 이중성도 나타났다. 이는 백인이 오랫동안 사회의 '무표적 범주(Unmarked Category)'로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무표적 범주란 특정 집단이 사회의 기본값으로 여겨져 굳이 특별한 이름을 붙일 필요조차 없는 지배적인 위치를 뜻한다. 이와 함께 그들이 끝까지 놓지 못하는 권력이 바로 '개별성의 특권(Privilege of Individuality)'이다. 유색 인종 한 사람의 행동은 그 집단 전체의 특성으로 쉽게 치환되지만, 백인은 언제나 고유하고 독립적인 개인으로 대우받는다. 자신들은 타 인종을 납작하게 일반화하는 폭력을 매일 저지르면서, 본인들이 인종이라는 틀에 묶이는 것에는 병적으로 반응한다.



특권층은 평등을 억압으로 느끼기 마련이다. 평생을 인류의 보편적인 기준으로 살아오며 타 인종을 마음대로 재단하던 이들은, 자신들의 해석 권력을 빼앗기고 특정 인종으로 호명되는 순간 극심한 위협을 느낀다. 아주 작은 비판 앞에서도 발작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현상, 이른바 '백인의 취약성(White Fragility)'이 완벽하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무균실 같은 특권적 지위를 누려온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위치를 돌아보라는 정당한 요구조차 거대한 탄압으로 다가온다. 결국 나를 향해 쏟아낸 그들의 날 선 공격과 억지 논리는, 팩트와 논리로 무장한 비판 앞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이 얼마나 허술한 모래성 위에 서 있는지를 스스로 자백하는 가장 투명한 항복 선언서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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