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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Jul 11. 2024

천재노창|아름답게 불안정한

과연 힙합이라는 건 대체 무엇인가?


그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떨어졌다는 사실 자체 보다 더 두려운 건 그 어둠과 고통이 얼마나 더 깊을지, 얼마나 더 지속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천재노창은 ‘불행해야 행복한’ 삶의 아이러니를 마주했다. 그는 지금, 아름답게 불안정하다.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Jdz Chung  




한국 힙합 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활발하게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 어느 때보다 지루했다. ‘스웩’으로 무장된 힙합이라는 장르의 대대로 내려오던 멋이 어찌 이리 하나 같이 다 똑같아진 건지. 힙합을 쫓다 부를 거머쥔 래퍼들의 스웩이 본질인지, 아니면 부를 쫓는 데에 힙합을 수단으로 쓰는 것일 뿐인지, 여전히 눈치만 보며 방향을 잃은 래퍼들이 똑같은 이야기를 똑같은 방식으로 늘어놓았다. 힙합이라는 장르의 시초에 작정하고 접근해 본다면 한국 힙합 씬에선 그 누구도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이런 게 진짜 힙합이다’라는 관념까지 비틀어진 뿌리를 틀고 있다. ‘힙합’이라는 울타리 안에선 어떠한 형태를 띤 의견도 ‘리스펙’ 받아야 한다는 씬의 룰이 씬 자체를 옥죄었다. 힙합 씬의 ‘리스너’의 의견은 그 정도와 표현이 얼마든지 폭력적이어도 괜찮다는, ‘힙합은 원래 그런 거니까’라는 암묵적 동의의 분위기가 형성됐다. 힙합은 스스로 명분을 잃고 있었다. ‘힙합’이라는 틀 안에 플레이어와 리스너가 제 스스로 발목이 밟힌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씬, 상황, 현실에 툭 던지듯 발표된 천재노창의 EP <My New Instagram: Mesurechiffon>은 힙합 씬 안의 플레이어로서의 절규, 그리고 한 발작 물러나 씬 안을 들여다보는 시선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과연 힙합이라는 건 대체 무엇인가?’ 이 지극히 기본적이고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표현 방식이나 접근법 또한 쉬이 지나칠 수 없었다. 흥미로웠다. 스윙스와 기리보이, 바스코, 씨잼, 블랙넛이 소속된 저스트 뮤직 첫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 <파급효과>의 뱃머리를 놓기 무섭게 크루들의 <쇼미더머니> 출전으로 갖은 프로듀싱과 피처링의 고초를 겪은 천재노창이 “이젠 제발 내 음악을 하고 싶다”며 ‘해방자유’를 외친 앨범이기도 하다. 그것도 올해의 절반을 보내고서야 세상의 빛을 봤다. 앨범을 준비하고 발표하는 과정 또한 순탄치 않았다. 그 과정을 자세하고 낱낱이 다시 짚어내고 싶진 않다. 그건 엄연히 사적인 영역이니까. 내가 신경 쓰고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아티스트가 그 사적인 영역의 사건으로 인해 작품에 미친 영향, 딱 거기까지인 거다. 어쨌든 그 영향으로 천재노창의 이번 앨범 타이틀과 재킷은 스스로를 패러디한 코드로 넘쳐 난다. 앨범 재킷 속 일그러진 노창 자신은 바보 같은 표정으로 조롱받고 있으나 정작 그의 손발에선 피가 철철 흘러넘치고 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연약한 상태에서 가장 강한 앨범을 만들었다. 그가 슬프게 웃는다. 아름답게 불안정한 얼굴로.


MY NEW INSTAGRAM : MESURECHIFFON




# 힙합만 하는 사람 아니다


5월에 발매한 싱글 ‘All Day’ 듣고 인터뷰 요청을 했었어요. 곧 나올 EP 준비 중이라며 “좀 힘들다”기에… 그래서 전 더 좋더라고요. 뮤지션이 앨범 준비할 때 인터뷰 안 하는 게 당연한 거니까. 그렇게 기다려서 이제야 만나네.(웃음)

그때 정말 ‘인간적으로’ 힘들었어요. 지금도 그렇고….


‘All Day’는 어떻게 나온 싱글이에요? 한국에선 힙합과 록의 화법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있어서 곡 자체가 신선했어요.

저는 원래 힙합만 하는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평소에 여러 가지 스타일의 곡들을 많이 만들어 놔요. 원래는 그걸 장기하 씨나 유세윤 씨한테 주면 어떨까 하면서 가이드를 녹음한 거예요. 발매 전 2~3달 전에 만들었고. (저스트 뮤직) 동료들한테 들려주고 ‘이거 장기하 씨한테 잘 맞지 않을까?’ 했는데 멤버들이 ‘이건 너만이 할 수 있는 감성이야!’ 하더라고요. ‘어, 그래? 그래도 나 힙합하는 사람인데…’ 이런 고민은 좀 했는데.


‘힙합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서요.(웃음)

여태 발표한 곡들이 힙합이고 준비하는 것도 힙합이니까.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구나.

네. 사실 ‘힙합은 이런 거 하면 안 되는데?’ 하는 허세도 좀 있었죠. 그러다 ‘그냥 내지, 뭐’ 이렇게 된 거예요. 그래서 가이드로 녹음한 상태로 낸 거죠. 친해진 지 얼마 안 된 타블로 형한테 피처링 부탁드리고.


곡 작업 초반부터 타블로와 함께 한 줄 알았어요.

노래가 장난스러운 듯하면서도 실제 있을 법한 이야기잖아요. 그렇게 가벼운 느낌의 노래였는데 타블로 형이 가사를 진지하게 써주니까 곡 중심이 약간 잡혀서 신기하게 잘 끝난 곡인 것 같아요.


한국이 밴드 씬과 힙합 씬이 생각보다 교류가 많지 않아서. 장기하가 불렀어도 재밌었겠어요.

그러게요. 그랬으면 ‘All Day’가 제 이름으로 안 나왔을 텐데.


리뷰에 ‘장기하처럼 열심히 노래한다’는 평을 보고 웃었어요.

장기하 씨한테 주려고 가이드 자체를 모창 비슷하게 느낌을 살려서 부른 거죠. 나중에 다시 부르려니 너무 높아서 잘 안 올라가는 거예요. 그때 다른 곡들도 녹음하고 있어서 목도 다 쉬어서… 그래서 브릿지 부분 빼곤 가이드 녹음한 상태 그대로 나간 거예요.


그런 바이브를 좋아하나 봐요?

어렸을 때 아버지 차 타면 그런 노래들이 많이 들렸어요. 산울림, 봄여름가을겨울 등. 좋아한다기보단 원초적으로 몸에 배어있는 듯한 느낌이에요. 아버지가 그 곡 듣고 되게 좋아하셨어요.


이번 EP ‘꽃가루’ 가사에 썼잖아요.

네. 서울 태생이신데도 경상도 남자의 무뚝뚝함이 넘치는 분이세요. 표현 잘 안 하시는 분인데 ‘All Day’ 듣고 ‘뭔가 아련해진다’고 문자도 보내셨어요.


그 싱글을 EP 발매를 앞두고 발표한 이유가 따로 있나요?

사실 동료들이 추천해 줘서 내긴 내는데,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가 ‘All Day’ 싱글을 발표한 지 얼마 안 된 차에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목도 바꾸자 했어요. 원래 제목도 그게 아니었거든요. 카니예의 ‘All Day’ 같은 초반부 전개도 없었고. 일부러 넣은 거죠. 사람들이 제목 보고 곡이 시작될 때 ‘얘 또 카니예 따라 했네’ 하면서 들을 걸 아니까. 그런데 막상 들어보면 올드 록 스타일인 거죠. 들었을 때 곡 자체에서 반전을 주고, 힙합으로 채워진 EP로 또 반전을 주고. 그런 진행 상의 라인들을 만들어 놓긴 했죠.


마지막 부분 기타는 누가 쳤어요?

친구 중에 한요한이라고, 기타 치는 친구 있어요. 그 친구 되게 잘해요.


노창은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요?

저는 손가락 아파하면서 음 하나씩 치라면 칠 수는 있는데… 특별히 다룰 줄 아는 악기는 없어요. 프로그래밍도 처음에 코드 몇 개 쳐보고 맘에 들면 찍어 놓고, 또 다른 코드 찍고. 앨범에 들어간 피아노 연주 같은 건 한 마디씩 끊어서 치는 거고.


연주자에게 디렉션을 주는 데에 불편함이 없어요?

그래서 아예 잘하는 사람들한테만 세션을 받죠. 진짜 고수들은 느낌만 말해도 연주해 주거든요. 요한이는 제가 흥얼거리기만 해도 다 알아듣고 해주는 친구니까. 저는 음악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서… 화성학도 2장인가 읽고 때려치웠어요.


좋은 연주자를 찾아내는 것도 능력이죠.

그렇죠. 그런 인맥을 가지고 있는 것도 능력이고.


노창이 힙합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할 생각인 건가요?

이미 많이 넓어졌어요, 스스로는. 대중들에게 들려준 곡들이 힙합이어서 그렇지, 가지고 있는 건 몇 천 곡 되죠.


힙합이 아닌 다른 작법으로 풀어낼 수 있는?

네. 그러고 싶어요. 연주곡이든 가창곡이든. 그런데 제가 가창력이 모자라다 보니 부탁을 하고 싶은데 아는 사람은 많이 없고. 어쩌다 아는 사람은 너무 유명해서, 바빠서, 큰 회사에 있어서 회사가 나를 거부하기도 하고, 그렇죠. 그래서 묵혀 있는 곡들이 많아요.






# 모순적 질문의 미학


개인적으로 이번 EP가 흥미로웠던 건 가사에서 노창이 인식하고 제기하는 문제들이었어요. 한국에도 힙합 문화가 자리 잡은 지 20여 년 가까이 된 상태에서 요즘은 힙합 장르 스스로 힙합이라는 울타리나 틀에 갇힌 느낌이었거든요. 씬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극명한 모순점이 드러나기도 하고. 재밌더라고요.

이 앨범을 ‘그 사건’ 있기 한 달 전쯤부터 만들었고, ‘그 사건’ 1달 후에 나왔어요. 처음 이 앨범 작업 시작할 때 주제는 ‘Sarcasm(비꼼, 빈정거림, 풍자)’이었어요.


<빅뱅이론>에 많이 나오죠.(웃음)

어! 아시네요.(웃음) 저 나름대로 씬에 불만이 많았죠. ‘너희, 왜 다들 유행만 따라가고, 그렇지 않은 애들은 구린 거 하고 있냐?’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까 제가 그중에서도 제일 트렌디한 거 많이 만들고 있더라고요. 결국 비꼬는 대상이 나 자신이 되겠구나, 했죠. 앨범에서 제가 비꼬는 투로 ‘힙합이 이런 이런 거냐?’ 한 랩이 있다면, 그건 다 질문이에요. 이 앨범 안에 나오는 ‘힙합’이란 단어가 들어간 문장은 모두 나 스스로에게나, 모든 듣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인 거죠. 할렘에서 태어난 흑인이 ‘드럭 딜링’하면서 사는데 친구가 총 맞아 죽고, 절망에 빠져 슬퍼하다가 카세트테이프에 랩 한 거 녹음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클럽 공연하고, 그러다 누군가의 눈에 띄어 유명해지고, 그렇게 힘들게 살았으니 ‘블링 블링’ 하면서 ‘스웩’ 하는 게 힙합 아니더냐. 그런데 우리 중에 그런 애들 없지 않냐. 한국에서 누가 총 쏘고 마약 하냐, 하는 거죠. 이런 얘길 던질 때 제가 정답이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고 질문을 하는 거예요. ‘야, 대체 힙합이란 게 뭐냐? 어떻게 하는 게 힙합인 거냐?’ 묻는 거죠. 우리는 힙합이 탄생한 미국과는 아예 다른 문화권에서 태어나 자랐고, 환경도 다르고 사상도 다를 수밖에 없는데 우리끼리 이 안에서 누가 진짜 힙합이네, 누가 제일이네, 이런 얘길 해서 뭐 할 거냐, 어차피 다 음악 아니더냐, 이거죠. 그걸 저는 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네가 제시하는 대안은 뭔데?’라는 공격이 돌아올 수도 있잖아요.

답이요? 저는 없어요. 그래서 제 앨범은 ‘혼란’ 그 자체예요.


‘나도 아직 모름’이네요.

이 앨범 전에 제대로 된 내 개인 앨범이 1장도 없지만 이전까진 뭔가 답을 내리고 앨범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모든 게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미성숙한 모습을 일단 보여주고 계속 발전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맞단 쪽으로 마음이 기울더라고요.


아, 이게 본인 커리어에서 첫 번째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네.


데뷔 앨범 <기억시옷>은 어쩌고?

그건 정신과 약 먹고 정신 나가서 멍 때리면서 했던 음악들이라….


노창이 스물이었던 당시의 상황 생각해서 들었을 때 굉장히 무거운 앨범이에요.

우울증이 시작된 시기라 그래요. 미래에 대한 흔들림이나 불안도 굉장했죠.


그 당시에도 자신의 세계에서 인식되는 문제들에 꽂혀서 답이 안 나와도 작정하고 매달려있는 모습이 그려지던데.

그렇죠. 나 혼자 계속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그래도 지금의 저는 그때보단 나아졌으니까요. 그때 당시 불확실했던 상황에 이제는 어느 정도 믿음을 가지게 됐고 발전하는 그림이 나오니까. 한 순간에 완벽해지려고 하지 않고, 불완전한 상태에서도 지금 내 나름의 주요한 감정과 생각을 담아 앨범을 만들고, 그걸 또 마무리하고… 그러고 나서는 또 내가 발전하겠죠? 시간이 흐르고 사람이 커가니까요. 앞으로 계속 그렇게 앨범을 낼 생각이에요.


그럼 이전 앨범을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그렇죠. 초등학교 졸업 앨범 들춰보는 것 같은… 그냥 제 스스로 부끄러운 거죠, 뭐.


이번에 나온 EP도 지금 노창의 날 선 감정을 갈고 갈아서 극단에 치닫도록 뾰족하게 만든 앨범인데, 이 앨범도 시간이 흐른 뒤에 보면 그럴까요?

예전 앨범을 보면 제가 봐도 가사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게 90%에요. 그땐 정신과 우울증 약을 처음 먹기 시작한 때라… 그 약 먹으면 정말 아무 감정 없이 멍- 하게 되거든요. 그런 상태에서 가사 쓰고 녹음했던 거라… 지금 봐도 이해는 잘 안 돼요. 그런데, 감정은 와닿아요.


가사를 쓰고 녹음하는 과정 모두 일관된 감정이었나요?

그땐 그랬죠. 우울하고 걱정되고 무섭고. 이제 막 스물을 넘었으니까. 그런 감정들은 그대로 와닿는데 그 감정 자체를 사람의 말로 안 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누가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면 주변 사람들이 ‘쟤 화 많이 났구나’ 짐작하잖아요. 그 정도의 느낌이에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죠.


지금은 사람의 언어로?(웃음)

사람의 언어는 됐죠.(웃음)







# 실체 없는 무언가와의 싸움


항상 노창은 싸우면서 음악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힙합 씬에서 많이 나오는 담론 중 하나이긴 했는데 래퍼들이 곡에서 말하는 ‘You’의 실체가 뭔가. ‘섀도우 복싱’ 하듯 실체 없는 상대와 지리한 싸움을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Yo! 너네 나보다 돈 존나 못 벌어, 내가 존나 짱, 내가 힙합!’ 이러면 정말 ‘병신’인 거예요. 제 기준에서는. 그런데 ‘You’가 ‘대중’이 될 때가 있거든요? 정말 무서운 게, 이건 힙합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여러 명에게 노출되는 단 한 사람에 해당되는 얘기예요. 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욕을 한 번씩만 해도 수십, 수백 개의 화살이 날아오는 거거든요. 제가 쏠 수 있는 건 한 발인데. 그래서 저도 그렇고 래퍼들이 맨날 화가 나 있는 거예요. 왜 난 욕을 먹어야 하나, 나도 사람인데, 싶은 거죠. 사실 되게 무서워요. 세상이 나를 버리는 것 같죠. 그렇다고 한 명 한 명 찾아가서 문 두드리고 ‘나한테 왜 그랬어요’ 할 순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곡에서 화가 드러나죠. 힙합하는 사람들이 온갖 센 척들은 다 하잖아요. 그런 거 다 떠나서 래퍼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두렵고 무섭고 우울한 감정이 많아요. 힙합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럴걸요? 예를 들어 50개 댓글에 10개 정도가 부정적인 내용이라 치면, 그 글자 하나가 이렇~게 커져서 온 세상이 꺼멓게 보여요. 진짜로. 너무 크게 다가와요. 물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도 많겠지만 저는 성격이 그렇질 못해요. 세상이 무서워져요. 그러면 세상에 잡아먹힌단 말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센 척, 뻔뻔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거죠. 그래야 사람들이 ‘에이, 재미없다’ 하지, 약하고 힘든 걸 드러내면 더 괴롭혀요.


노창은 이따금 사람들에게 공격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은데요? 은근히 이 싸움을 즐기는 사람인가, 했어요.

저는 너무 힘든데요. 이제는 욕을 많이 먹다 보니 경험이 쌓여서… 누가 그냥, 정말 그냥 ‘야, 이 XX놈아! 너 구려!’ 하면 이건 아무 근거가 없는, 그냥 욕이잖아요. 그런 화살은 그냥 이렇게 쓱 스치고 지나가도 피만 살짝 날 뿐이에요. 하지만 비판과 비평은 가끔 정통으로 와서 꽂혀요. 그 자리에 쓰러져서 몇 달을 보낼 때도 있어요. 서울 나와 자취하는데 돈 내는 걸 깜빡깜빡해요. 인터넷이 끊겨서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살아요. 그런데 이번에 앨범이 나왔으니 일부러 찾아봤죠. 역시나 전처럼 자기만의 근거나 논리로 비평, 비판을 한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건 건설적인 거잖아요. 그런데도 전에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여기 쿡, 박혔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번엔 방향이 틀렸어요. 저는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똑바로 알고 이 앨범을 냈거든요? 만약에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잘 모르고 눈치 보면서 낸 앨범이라면 누가 그 방향 아니라고 화살을 쏘면 맞을 수밖에 없잖아요. 전 이 방향으로 계속 앞으로 가는데 사람들은 다른 쪽으로 화살을 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신경 안 써요. 누구에게 싸움을 거는 것도 아니고.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인 거죠. 그리고 이 정도로 욕먹었으면, 나도 욕 좀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웃음)


아유, 욕을 얼마나 먹는다고!

더럽게 많이 먹죠. 아무 이유도 아닌 걸로.


그 정도로 알려진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죠. 그런데 저는 그게 참 싫은 거죠. ‘꽃가루’ 마지막 부분에 나오잖아요. 모두 다 세상에 태어나 영웅이나 역사에 길이 남을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데 실제로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그런 걸로 공격하는 거죠. 부모님 용돈 받아 쓰는 애들이 나보고 또 욕하겠죠. 어쨌든 걔들은 제가 쏜 화살에 맞았어요. 그걸로 족해요, 전.


이 앨범은 결국 화살을 쏘기 위한 수단이었나요?

전 지금 고슴도치 상태잖아요. 사건도 많았고….


<쇼미더머니> 영향도 있겠지만 힙합 씬에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고, 그래서 힙합 씬의 플레이어들이 더 부각되고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겠죠. 한동안 한국 힙한 씬에서 발표하는 곡들 주제가 대부분 ‘Hater’에 관한 거였어요. 정도가 심했죠. 좋다, 이거예요. ‘Hater’는 씬의 필요악이니까. 감정만으로 떠드는 ‘키보드 워리어’는 그냥 무시하면 되잖아요? 그만큼 했으면 더 이상 힘 빼지 말고 래퍼들의 재능이나 열정으로 차라리 좀 더 독창적인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건가? 힙합 자체가 다른 장르에 비해 자기 이야기를 더 다양하게 할 수 있어서 매력적인 거잖아요.

우리 세대 아이들이 자라온 시스템 안에서 보면 다르게 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요. 학교 갔다 학원 갔다 ‘야자’ 하고. 생각의 전환점도 없고 자유도 없고, 다 똑같은 생각만 하는 거예요. 미국도 ‘Hater’ 얘기가 많긴 하지만 인종 차별 문제부터 시작된 스웩이 주된 감정이죠. 한국은 그걸 보고 배운 거고.


그 이상을 제시해야 ‘One & Only’가 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그러니까요. 한국에선 제가 보기엔 불가능해요. 제가 이 시스템을 깨부술 혁명가가 될 건 아니고요, 저는 그냥 여기서 나갈 거예요.


이 시스템에서 나간다고?

네. 몇 년이 걸려도 상관없어요. 일단 전 미국으로 나갈 거예요. 거기엔 우리랑 또 다른 시스템이 있겠죠, 저에게 불리하건 유리하건 간에. 그리고 나서 다시 한국을 봤을 때 여전히 이 시스템이 너무 구리다, 틀렸다 싶으면 내가 가진 모든 걸 가져와서 깨부술 거예요.


지금 노창이 가진 걸로는 안 돼요?

아, 저는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저는 지금 너무 작은 존재예요. 지금 당장 깨부술 수 있다, 하고 말하는 건 야망이 아니라 멍청한 거예요.


혁명까진 아니어도 좀 다른 얘길 할 수 있지 않을까?

잘 생각해 보세요. 돈, 성공, 여자, 클럽, 요즘 이런 얘기 많이 해요. 엄마, 가족, 사랑은 예전 힙합에서 나왔죠. 이미 나올 건 다 나왔어요. 자기 인생이 얼마나 독특한가, 그리고 그 사람만의 표현력이 어느 정도인가가 중요한 거죠. 표현력만 다르다면 똑같이 돈 얘기를 해도 ‘이 사람은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는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결국 한국의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 문제인 거죠.


한국 래퍼들 역시 그 시스템에서 자란 거니까?

다 그렇게 자라서 한국에서 랩 하는 거니까요.


이 대화의 맥락에서 제가 굳이 짚고 넘어가자면 다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얘기만 하는 천편일률적인 분위기에서 노창의 EP는 좀 다른 시각이나 표현, 접근법이 보였어요.

네. 저도 그렇게 자부해요.





# 내가 몰랐던 나와의 대면


이번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방향이 얼마나 바뀌었나요?

‘사르카즘’에서 어느 정도 살아남았죠. 그런데 전체적인 분위기나 가사가 바뀌었어요. 녹음을 다 다시 했거든요.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녹음할 때 ‘개빡세게’ 했어요. 교정기를 끼는데 입 속에 피까지 나면서. 그런데 ‘그 사건’ 이후 인스타그램에 제가 돌 사진 올리면서 저 스스로를 패러디하고 실수한 걸 까발렸잖아요. 사실 저는 지금도 창피하고 우울하고 힘들어요, 또 슬프고. 하지만 전 그렇게 해야만 했어요. 사람들이 지금 안 웃고 넘기면 앞으로 평생 사람들은 절 볼 때마다 계속 이야기할 거예요. 조용히 그냥 넘어가려고 하면, 나중에 제가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때 사람들이 ‘병신’ ‘병신’ 하면서 계속 그 일을 들먹일 거란 말이에요. 저는 스스로를 패러디하면서 모두를 웃게 했어요. 제가 지금 이렇게 가슴 아프고 힘들면서도… (노창은 눈가에 눈물이 그렁한 채 목이 메었는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렇게 넘겼어요. 진지하게 랩을 하며 준비했던 트랙들을 다 지우고, 다시 녹음했어요. 바보가 랩 하는 것처럼. 마지막 두 트랙 빼고는.


‘사르카즘’으로 뼈대를 세우고 진지하게 접근하려다 방식을 바꾼 거군요.

네. 하얀 옷 입고 수염 기르고 인자하게 생긴 사람이 설교를 하면 사람들은 ‘음, 한번 생각해 봐야겠네’ 하잖아요. 그런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동네 바보 거지가 혼자 놀다가도 가끔 머리를 ‘떵’ 때려 맞는 듯한 말을 한마디씩 해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했어요. 앨범 재킷도 그렇고. 사실 진지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사람들이 ‘쟤 슬픈가 봐, 힘든가 봐’ 이럴까 봐.


자신을 패러디하는 과정에서 노창 본인이 찢겨 나가는 건 아무래도 괜찮아요?

어떡해요, 그럼. 아까 말했듯 제가 쏠 수 있는 화살은 하나고, 사람들이 쏘는 활은 수만 개인데.


그래도 음악보다 삶이 우선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게요. 전 정말 죽을 뻔했고, 지금도 죽을 것 같아요.


아니, 그러니까. 우선 살고 봐야 한다고… 그래야 음악을 하지.

솔직히 앨범 내고 병원에 입원하려고 했는데요, 정신과에. 그 정도로 정말 심각했어요.


음악 오래 해오신 ‘선생님’들 인터뷰하다 보면 하나 같이 하시는 말씀이 ‘음악보다 삶이 우선해야 한다’ 예요.

제가 우울증을 앓았을 땐 ‘죽고 싶다’는 말을 매일 입에 달고 살았어요. 위로해 달라고. 그런데 ‘그 사건’ 이후 조울증이 됐고, 공황 장애에 틱 장애까지 생겼거든요. 알콜 중독 치료까지 받고 있고. 심각해요. 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어요. 그런데 조울증에 걸리니까 살고 싶단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제가 여기서 갑자기 저도 모르게 뛰어내릴 것 같아서 무서워요. 온몸이 떨려요. 많이 힘들어요. 그리고 원체 저는 정신적으로 나약한 사람이라…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병원에 입원하고 나면 나중에 멀쩡하게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지금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아우, 쟤 어떡해. 불쌍하다. 화살 쏘지 말자’ 이런 식의 동정만 받을 것 같아서. 어떻게든 혼자서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모든 사람들이 다 정신적으로 나약해요….

네, 맞아요. 현대 인간들이 모두 저마다의 정신병을 가지고 있죠.


본인이 병원에 가서 치료받아야겠다고 상황을 인지한 건 언제였어요?

스무 살 때요. 저 어렸을 땐 무지 활발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과학 영재 학원, 이런 데를 무지하게 다녔어요.


외고 갈 뻔했단 이야기 들었어요.

공부 정말 빡세게 했어요. 잘하건 못하건을 떠나서 하루 종일 공부만 했어요. 그 어린 나이에 도시락 싸서 학원 가고….


왜? 공부 말고는 재밌는 게 없었어요?

아니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화가가 되고 싶다고 엄마한테 말씀드렸어요. 엄만 아마 기억도 못 할 거예요. ‘엄마, 저는 화가가, 만화가가, 풍경화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했는데 바로 돌아오는 대답이 ‘그거? 돈 못 벌어. 학원이나 가’였어요.


그래도 엄마 말씀 잘 들었네요?

‘병신’이었죠. 시스템 안에 갇혀 있던 애였어요, 저도.


반항 한 번 안 하고….

고등학교 끝자락에 와서 엄마한테 울고불고 소리 지르고 안 하던 짓을 했죠. 그런 시기가 지나고 스무 살이 되니 성인이라는 부담감도 들고… 그러면서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어떤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정말, 너무 우울해서요. 사람들도 안 만나도 집에만 처박혀 있었어요. 그냥 어느 날 거울을 봤는데… 20년 동안 나를 봐왔는데, 내가 아닌 것 같은 사람이 내 몸뚱이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갑자기 들었어요. 두려움이 갑자기 확 몰려왔죠. ‘나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인생 X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병원을 찾아갔죠.


병원에 가면 좀 나아요?

우울함은 크게 없어져요. 근데 정말 멍- 해져요.


약물로 다스리는 거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약 안 먹으려고 아예 상담을 다녀요. 비싸긴 한데, 그게 좀 더 낫죠.


원래 노창 안에 있던 자아가 나온 게 아닐까요? 그동안 공부만 하느라 억눌렸던 자아가….

제가 원래 우울하게 태어난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100% 확실한 건 환경의 영향이라는 거예요. 강압적인 부모님의 태도라든지….


부모님이 엄하셨어요?

아버지는 길만 정해주시고 무뚝뚝해서 별말씀이 없으셨어요. 어머니가 유한 척하면서 목줄을 짧게 매서 저를 끌고 간 거죠. 목줄이라도 좀 길면 딴짓이라고 할 텐데… 저, 부모님 엄청 사랑하지만, 한편으론 원망스러워요. 스물두 살 때였나, 술 엄청 마시고 엄마한테 울면서 이야기한 적 있어요. 나한테 왜 그랬냐고, 날 왜 이 꼴로 만들었냐고, 나 지금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시간이 지나면 문제의 원인이 환경 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도 올 거예요.

저 나름 이타적으로 사는 편이었어요. 남을 배려하고 위하고… 그러니까 더 ‘병신’이 되더라고요. 더 소심하고, 더 작아지고… 지금 굉장히 이기적으로 살고 있어요. 남한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오직 나만을 위해서. ‘혹시 시간 되면 이것 좀 해줄 수 있어?’ 하면 ‘아니! 아니! 난 내 거 할 건데!’ 하고….


저스트 뮤직의 ‘노예’에서 탈출한 건가요?

독자적인 아티스트로 이 회사에 들어온 건데 거절을 못하겠는 거예요.


‘노창한다’ 해야 해.(웃음)

아, 정말. ‘노창한다’ 해야 해요. 제 앨범 만들려고 하면 누가 와서 ‘나 이것 좀 해줄래?’ 하면 ‘아, 오케이!’ 이렇게 되는 거죠.


이기적으로 살게 된 것도 그래 봐야 올해… 아, 올해 상반기에도 저스트 뮤직 동료들 작업했잖아요.

작년 말에 멤버들 모여서 제주도에서 송년회를 했어요. <쇼미더머니> <파급효과> 얘기하면서 서로 장단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자리였어요. 거기서 그랬죠. ‘여러분, 실례가 안 된다면 저 말할 게 하나 있는데요. 시킬 일 있으면 올해 12월 안에 말해주세요. 다 끝낼게요. 그리고 1월 1일부턴 제 음악 할게요.’ 다들 ‘그래! 그래! 그러자!’ 했어요. 그래 놓고 또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럼, 언제부터 이기적으로 살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이번 앨범… 이번 앨범부터요.


딱 2~3달 정도 됐네요.

그 사이 제 인생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얼마 안 남았어요, 이것도… 블랙넛이 <쇼미더머니>에서….

아니, 얼마 안 남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웃음) 저 <쇼미더머니> 안 봐요.


그래도 블랫넛이 부탁하면….

부탁하면 하긴 해야죠. 형이 잘 되면 좋은 거니까.






# ‘불행해야 행복한’ 삶의 아이러니


결과적으로, 이번 EP를 내고 감정적으로 해소된 부분이 있나요?

여태껏 제 음악을 못 하고 있다가 해버렸으니, 속은 후련하고 스스로가 대견하고 뿌듯한 게 제일 크고요. 깊어졌죠, 생각이. 더 깊어지고 넓어졌죠.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인간적으로 성숙해진 게 좀 더 컸던 것 같아요.


오랫동안 ‘화살을 쏴야지, 쏴야지’ 하면서 시위를 당기고 있다가 어쨌든 활이 시위를 떠났어요. 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있지 않아요?

있어요. 시위를 당기고 3년 동안 있으면 여기 이렇게 자국이 남잖아요. 활이 날아가서 누구라도, 어디라도 맞잖아요. 여기 아프던 거 줄이 떨어져 나가고 자국은 선명하게 남았지만, 이것도 언젠가는 없어지겠죠. 여러 가지 종류의 해소감이 있어요. 뭔가 족쇄를 팍 끊어버린 느낌?


노창에겐 창작이 고통스런 작업인가요?

아니요, 음악하는 건 언제나 즐거워요.


언제나 즐겁다고?

인생이 안 즐겁지, 지금.


인생이 안 즐거워서 음악이 안 즐거운 거 아니고?

음악하는 것 자체는 즐거워요. ‘행’ 가사 보면 ‘늪과 아름다움’을 다루는 부분이 있잖아요. 지금 늪에 빠져있어요, 저는. 아름다움 속에 늪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 늪 안에 아름다움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 제 인생이 불행하다 해도 불행한 대로 음악은 잘 나와요.


불행함이 담긴 음악이 나오겠죠. 그게 좋다, 나쁘다, 가치 판단을 하는 건 아니에요.

네, 맞아요. 그런 음악이 나와요. 그런 경우 창작자로서 기분이 엄청 좋죠. 단지 그 작업을 다 마치고 집에 가려고 짐을 싸는 순간, 내 삶에서 음악이 빠져버리니까 공허함과 어둠밖에 안 남죠. 그런 거죠….


얼마 전에 커트 코베인(Kurt Cobain)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는데요….

아, 얘기하지 마세요. 저 죽을 거 같아요.(웃음) 농담이에요.


영화에 그런 얘기가 나와요. 커트 코베인이 생전에 지속적인 복통에 시달렸거든요. 인터뷰에서 ‘당신의 신체적, 정신적 아픔이 음악에 영향을 주는 게 확실한데, 당신이 고통 없이 살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라는 질문을 하거든요. 커트 코베인의 대답이 이랬어요. 자신도 두렵다고. 너무 고통스럽지만 이 고통이 사라지면 창작을 할 수 없을까 봐. 커트 코베인이 뮤지션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지향하는 바가 달랐던 거죠. 결국 그가 무엇을 지향하다 떠났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저는 그 영화 보면서 창작자들이 시달리는 고통이 감상자의 입장에선 아름다움일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 괴로운 일이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어요.

바스코 형이 ‘괜찮아?’ 하고 묻더라고요. 그 형도 제가 힘들 땐 말을 잘 안 걸어요. 그럴 땐 그냥 놔둬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요. 그래서 더 고맙고. 형이 ‘요즘 어때?’ 이러기에 ‘응, 나 요즘 힘들어, 형은 어때?’ 하니까 ‘행복해’ 이러더라고요. ‘행복하니까 좋아?’ 하고 물었더니 ‘예전엔 불행한 게 행복했는데, 지금은 행복한 게 행복해’ 했어요. 저는 그랬죠. ‘나는 아직 불행해야 내 음악이 나오고, 그래서 행복한 거 같아….’ 그 대화가 아직도 생생해요. 저도 제 인생에서 소중하다고 생각한 게 떨어져 나가니 불행이 커졌고… 그래도 음악은 잘 나왔으니, 한동안은 이게 맞는 것 같아요. 나중에 행복해서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 온다면 전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한편으로 생각하면 음악으로 그런 폭풍의 감정을 남길 수 있다는 건 축복받은 일인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죠.

맞아요.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음악 하는 사람’과 ‘아티스트’는 따로 인 것 같아요. 음악 하는 사람 안에도 주는 곡을 받아서 부르는 ‘퍼포머’가 있고, 그 퍼포머 안에서도 ‘내일 스케줄 이거다!’ 하면 ‘네!’ 하는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사람이 있고, 자기에게 주어진 곡을 자기감정에 맞게 소화시켜서 최선을 다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춤추는 사람 중에도 ‘대충 하고 돈 벌고 인기 많아져야지’ 하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들 스스로 안무를 짜거나 그 안무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하면 더 멋있게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은 좀 더 아티스트 쪽에 가깝다는 거죠. 아무것도 신경 안 쓰고 자기만의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람을 저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불행해야 행복한 아티스트인 것 같아요.


본인이 스스로 ‘아티스트’라는 호칭을 부여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나요?

네. ‘천재’를 붙인 건 거리낌이 있는데… 사실 ‘천재’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도 ‘천재’가 되고 싶어서였고….


‘페르소나’를 만들고 그것에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거잖아요.

네. 저한텐 종교 같은 거예요, 어떻게 보면.


예술가들 중 많은 이들이 페르소나를 만들어 놓고 그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거치죠. 그 과정 자체를 ‘예술’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많고. 이름 앞에 ‘천재’를 붙였을 때 그런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짐을 짊어진 거죠. 그런 사명감을 가져야겠다는.


개념 자체가 무거운 ‘천재’라는 단어를 굉장히 즉흥적으로 붙였단 얘기도 들었어요.(웃음)

네. 그때 회사 신나래 팀장한테 ‘나래야, 나 멜론에 이름 ‘천재노창’으로 바꿔줘!’ 했어요. 나중에 정신 차리고 보니… ‘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웃음) 욕 많이 먹었죠. ‘저 새끼, 뭐야! 왜 이름 앞에 ‘천재’를 붙였어?’ 하고.





# 모든 게 필요악


음악 처음 시작할 때 왜 ‘힙합’이었어요?

음악을 제대로 듣기 시작한 게 음악 시작하고 나서였어요. 그전까진 장르 개념도 크게 없었고. 그냥 귀에 들리는 ‘음’에 가까웠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 드렁큰 타이거, 에픽 하이, 리쌍 들으면서 ‘와, 힙합 멋있다~’ 했어요. 한창 반항심 많을 때잖아요. 주변에 힙합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또 그러죠. ‘이거 이거 들어봤어?’ 그러다 해외 힙합 뮤지션 앨범도 듣게 되고. 그런데 아직도 사실 힙합에 대한 역사 같은 거 잘 몰라요.


힙합을 좋아하다가 ‘플레이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어요?

가사를 써봤어요. 속이 시원하더라고요. 왜 나이 좀 먹고는 일기 같은 거 안 쓰잖아요. 특히 남고 다니는 애들은 밥 먹고 축구하고 공부하고 자고, 노는 날은 PC방 가고, 이게 다란 말이에요. 그때 제 생각을 정리해서 가사를 한번 써봤는데,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가사를 쓴다는 건 이런 거구나, 이렇게 내 얘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 쾌감이 컸던 것 같아요.


어디 들려준 건 아니었고?

네. 저 혼자 들었죠.


믹스 테잎을 만들어 공개했을 때의 쾌감은요?

당시에 저는 음악을 하던 사람도 아니었는데 적당한 반응을 얻었어요. 음악 공부 한 번 제대로 안 한 내가 시험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해본 건데 사람들에게 들려지고, 또 내가 전하려는 감정을 느끼고 좋다는 피드백이 오니까… 그때 쾌감이 굉장했어요.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에서 탈피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볼 수도 있으려나, 희망이 생긴 계기가 됐죠.


지금도 음악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에요?

지금은 음악 자체가 너무 좋아요. 제가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좋은 거죠.


음악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음악으로 얻는 많은 것들과 비교할 때 가장 좋다고?

네. 대장장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단계가 있잖아요. 의자를 하나 만든다고 하면 도안을 만들고 부품을 조립해 완성하고, 그걸 팔고, 자신이 거기에 앉아보고 하는 모든 과정이 있다고 할 때 모두 입 모아서 가장 좋다고 하는 과정이 의자를 만들어 완성하는 부분이에요. 창작자로서는 그런 것 같아요. ‘나는 그저 평범한 아이였는데, 내가 이걸 만들었어!’ 저는 아직도 그 감정이 들거든요.


자신의 창작물에 애착이 강한 만큼 사람들에게 평가받으며 그 창작물에 상처가 나는 게 너무 아프겠다.

그렇죠. 지금은 찢어지고 딱지 덮이고 해서 욕먹는 건 뭐… 넘어갈 수 있게 됐죠. 그래도 아프긴 아파요.


다른 장르에 비해 힙합이라는 장르 특성상 화자와 작품이 거의 일치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렇죠. 온전히 자신만의 삶이나 경험을 이야기해 왔으니까. 하지만 해외 씬에선 그런 틀이 깨진 지 좀 됐죠.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or the Creator)를 봐도 그렇고….


한국에선 여전히 래퍼와 작품을 일치시키는 쪽이 많아요. 노창의 이번 EP도 그렇네요.

네. 이번 앨범 안의 화자는 완전한 저였죠.


노창은 한국 힙합 씬 안에서도 좀 다른 결을 가진 캐릭터예요. 화자의 감정이 듣는 사람들과 공감될 수 있을까요?

‘내가 돈 이만큼 벌어서 차 사고 건물 산’ 가사의 곡이 있어요. 실제로 그 래퍼가 돈 벌어 차 사고 건물 샀는데 ‘음악 멋있네, 저 감정 나도 알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듣는 사람의 95%는 청소년, 혹은 갓 스무 살 즈음되는 나이 대니까.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 ‘멋있다’ 하고 듣는 거잖아요. 그래서 큰 공감을 얻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게 힙합인 것 같아요. 제가 지금 ‘해방자유’에서 ‘노예 탈출했어’ 할 때 사람들이 듣고 웃지만, 그걸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행’ 같은 경우는 아무도 공감 못할 수도 있죠. 제정신 상태니까.



천재노창 '행'




그럼 사람들과 공감이 안 되는 갭이 무엇으로 채워진다고 생각해요?

팬들은 제가 좋고 제 음악이 좋으니까 이해하려고 하죠. 그게 공감을 감싸는 것 같아요. 이해심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 핵심에 공감이 한 3% 정도만 있어도 그 전체를 공감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저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제가 신경 쓸 바 아니죠. 저 안 좋아하는데 제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자신의 앨범이 다른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전제 하에 발표하는 거네요?

저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죠. 그림 그리고 싶으면 그림 그리고, 음악하고 싶으면 음악하고. 제가 입고 온 옷도 다 제가 만든 거예요. 그냥 전 제가 하고 싶은 걸 제가 하는 거예요. 그러다 누군가 이걸 멋있게 생각한다거나 공감해 준다면, 얻어걸리는 거죠, 저는.


그 공감이 1이든 100이든 상관없다고?

네. 이제는. 전에는 계속 휘둘렸는데 이젠 안 그래요.


모순이잖아요. 그런 사람이 그렇게 화살에 상처를 받아요?

인간이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너 머리 깎은 거 싫어. 네 머리통 X같이 생겼어’ 이러면 상처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사람이라면… 근데 신경 안 쓸 뿐이지. 모순이 아닌 거 같지 않아요?


아… 잘 모르겠어요.

저는 인간 ‘노창중’과 아티스트 ‘천재 노창’이 분리되어 있어요. 아티스트인 저는 건방지고 아무도 신경 안 쓰고, 정말 꼴리는 대로 나가는 거고, 인간인 저는 그냥 ‘병신’이에요. 나약하고 감정적이고 ‘개예민한 빡빡이’고. 욕먹으면 화나고 슬프고 울고, 이런 애예요.


어쨌든 앨범을 내는 건 아티스트로서 내는 거잖아.

그렇죠. 하지만 앨범을 내고 리뷰를 보는 건 인간인 저잖아요.


아티스트로서 리뷰를 보면 되겠네!(웃음)

아티스트로서 거기까지 가면 피곤해요. 이미 앨범을 내서 지쳐있단 말이에요. 걔(천재노창)는… 좀 쉬어야 돼요.(웃음) 아티스트로서 리뷰를 볼 때도 있죠. 건설적인 비판이나 비평들. 앞으로의 작업을 위해 비평은 받아들여야 해요. 하지만 다른 리뷰를 보면서 인간인 저는 허물어지는 거죠. 이해되지 않아요? 이거, 비유 괜찮았는데.


이해는 돼요. 상처에 초연해진다는 거,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는 거 이해는 되는데. 그냥, 나는 안타까운 거지.

안타까운 게 아티스트의 삶이에요.


노창을 괴롭히는 모든 것, 힙합, 씬, 리스너, 커뮤니티 등 모든 게 사실 필요악이에요. 이 모든 게 존재함으로써 지금의 노창이 있는 거니까.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맞아요. 있어야만 하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전 없어지길 바랄 뿐이죠. 이상적으로는….


없어질 수 있을까?

안 없어져요.


세상 모든 게 아니러니죠. 이 세계, 시스템, 씬, 그 안에서의 활동, 모든 게 다요. 그렇지만 노창은 이 진창인 세상에서 ‘빛’을 기다리고 있지 않아요?

제가 빛이 될 거고, 모든 걸 바꿀 거예요. 이기적인 ‘이상’이 아닌, 모두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상을 만들 거예요. 그게 제 꿈이에요.


잠깐, 나라를 만들겠다고?

네. 섬 하나 사서 왕이 될 거예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만 초대해서 살 거예요.


이거 메타포 아닌 거죠?

네. 섬 살 거예요. 될 거예요.


아… 저는 질문에서 ‘빛’을 메타포로 쓴 건데, 현실적으로 이야길 하시네요.(웃음)

제가 빛이 되려고요.


왜 이 질문을 했냐면… 노창은 지금 어둡고 깊은 바닥에, 바닥에, 바닥에, 바닥을 찍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또 모르죠. 더 바닥이 있는지도. 우리 다 더 살아봐야 알겠지만. 사람이 바닥까지 내려가면 애티튜드가 나뉘거든요. 자신의 상황만 비관하고 절망하며 죽은 듯 사는 사람이 있고,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다시 기어 올라가려는 사람이 있어요. 앨범에서 제가 느낀 노창의 애티튜드는 후자 쪽이었거든요. ‘위아더월드’ 마지막 부분에 데릭 월컷(Derek Walcott)의 시(詩) ‘Love After Love’를 넣은 걸 보고 느꼈어요. ‘이 사람, 지금 어둡고 빛 하나 없는 데에 혼자 서 있는데도 빛을 간절히 원하는, 결국 언제고 찾아낼 사람이구나.’ 저는 음악이나 영화 등 모든 창작물 볼 때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거든요. 이 사람이 절망에 빠져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을 느낄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한 경우와의 차이는 엄청난 거거든요.

네… 맞아요… 정말…. 어, 그런데 제가 거기서 섬으로 갔네요.(웃음)


천재노창 '위아더월드'




섬을 사는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놓은 게 있어요?

모르겠어요. 확신은 하나도 없는데 자신감은 있어요. 뚫고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거? 뚫고 나갈 거라는 거? 가정도 안 쓸래요. 그렇게 단단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어차피 여기저기 때려 맞고 깎여 나가는 게 ‘생각’이라는 거잖아요, ‘자신감’이고. 아주 단단하고 크게 해 놔야, 나중에 어떤 모양이 됐든 뭔가가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지금 만큼은 생각을 아주 딴!딴!하고 뻔!뻔!하고 크게 만들어 놨죠.


힙합의 또 다른 특성으로 본다면 아무래도 가사(텍스트)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맥락에서 접근했을 때 노창은 좀 결이 다르죠. 그래서 카니예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사운드에 비중을 많이 두는 스타일이라.

처음엔 많이 따라 했어요, 솔직히.


다른 인터뷰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랩을 하거나 가사를 쓸 때 전체적으로 들리는 사운드의 형태에 신경을 쓴다고 하더라고요. 딕션도 그렇고. 그림으로 치면 정물화나 풍경화보다는 추상화에 가까운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네, 맞아요. 평소에 음악을 많이 듣긴 하지만 다른 힙합하는 사람들만큼 힙합을 많이 듣진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장르를 주로 들어요. EDM도 듣고, 덥도 좋고, 트립합도 좋고… 특히 아트 록을 되게 좋아해요. 거기서 나오는 연주는 제가 할 수 없는 것들이잖아요. ‘아, 나 저거하고 싶다’ 이러면서 혼자 한 마디씩 쳐보는 거예요. 박자 막 밀리면서… 제가 앞으로 음악을 계속해야겠다는 자아가 생기고부터 그런데 더 관심이 쏠렸던 것 같아요. 사운드나 악기 진행이나, 곡 전체의 분위기나 기승전결 같은 구성, 소리 하나 다루는 거, 만지는 거, 엔지니어링 등등 그런 부분에 더 중점을 두는 편이에요.


머릿속에 떠다니는 음악을 어떻게 형태로 현실화시키죠?

시간을 많이 보내는 거죠.


원하는 대로 나오나요?

네. 만약 제가 정말 좋은 연주 트랙을 만들었다면 그 한 곡 만들면서 버린 곡은 한 5백 곡 될 거예요. ‘난성격이나빠’에 나오는 기타 리프 있잖아요. 시간이 촉박해서 그 기타 치는 친구를 못 불렀어요. 제가 기타가 있긴 하거든요. 그래서 박자 다 틀려가면서 한 2백 번 쳐서 겨우 녹음했어요. 시간만 보내면 되는 거예요. 노력하고… 무식하죠?


기타를 배워볼 생각은 없어요?

배웠었어요. 5학년 때. 클래식 기타로 ‘로망스’ 같은 거 치고. 그런데 하도 안 쳐서 손도 굳고 잊어버렸어요. 지금은 그냥, 음을 하나씩 찾아 외워서 치는 거죠.


기타 하나 다룰 줄만 알아도 작곡하는 데에 새로운 세상이 열릴 텐데?

제 예술관은… 안 배우고 하는 게 무조건 예술이에요. ‘삑사리’ 하나 나는 게 남들과 다른 거고, 붓질하다가도 붓에 페인트가 다 말라서 갈라지는 느낌이 한순간이라도 있는 게 예술이에요. 배웠으면 ‘이쯤 되면 물감 다 썼겠구나’ 하면서 알아서 물감 한번 찍게 되잖아요. 그런데 모르고 내가 그리고 싶은 거 그리다가 이물감을 언제, 얼만큼 찍어야 되는지 막 갈라지고, 흘러내리고… 전 그게 자기만의 창작이고, 배워나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완성됐다’는 느낌이 안 와도?

네. 저는 완성이라는 게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 배운 상태로 불완전한 앨범을 내는 과정에서 완벽을 원하는 사람들과의 충돌도 있겠네요?

네. 하지만 자부심도 있어요. 음악 하는 분들 중에 특히, 클래식하는 분들, 당장 신나래 팀장만 해도 클래식 피아노 전공하고 화성학 다 아는 친구인데 저한테 ‘니 거 진짜 신기해. 멋있어. 다 틀렸는데 멋있어’ 이래요. 제 음악 유일무이하다고, 안 배워서 그렇게 하는 거라고, 그런 얘기 들으면 기분 좋아요. ‘나만의 것’이라는 걸 내가 만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걸 고수하겠다는 거죠?

네. 저는 고수할 거예요. 물론 빡세죠. 손에 쥐 나고. ‘이걸 못하나, 어? 이걸? 기타 리프 이거 몇 줄 옮기는 걸?’ 그래서… 불행해야 행복한 게 저라니까요.


어휴~ 인터뷰하는데 내가 숨이 턱턱 막힌다.

그죠? 그래서 부모님이 저 보면 되게 슬퍼하세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안타깝겠어요. 저도 음악을 다루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씬에서는 분명 노창 같은 캐릭터가 필요해요. 하지만 누군가의 불행을 즐기는 대중의 악마성에 희생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저는 뮤지션과 대중 사이에 있는 사람이다 보니… 양쪽의 민낯을 모두 아니까요.

저도 한땐 누군가의 리스너였고 팬이었으니까… 알죠. 그래서 한 편으론 다 이해가 가는 거죠. 그래도 미울 뿐이죠. X새끼들….







# 살아야겠다는 본능


막연하게 ‘멋있다’ 해서 힙합, 아니 음악을 시작한 지 5~6년 됐어요. 지금은 어때요?

좋죠. 그런데 갈수록 더 혼란스러워요. 힙합이라는 장르 자체도 혼란스러워지고 있잖아요. 어떤 장르가 태어나 계속해서 다른 장르와 섞이고 얼터너티브, 프로그레시브 등등 방향도 나눠지고 퍼져나가는데… 이미 힙합이라는 장르 자체는 점 하나가 아니라 그 위에 물이 떨어져서 스펙트럼처럼 넓어져 가고 있는 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 점 하나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좀 바보 같고. ‘힙합은 말야~ 이런 건데 말야~ 니들 붐뱁(Boombap) 알아?’ 이런 애들, 저는 상종 안 해요.


힙합을 베이스로 음악을 하려는 거 아닌가요?

그동안 대중들에게 들려준 게 힙합일 뿐이죠. 스타일이 다른 곡들도 굉장히 많아요. 시작이 힙합이었기 때문에 습관처럼 발라드에도 드럼을 세게 때려 박는 경우도 있고….


이번 앨범 가사에도 나오죠. ‘피아노를 잘 쳤으면 이건 발라드’라고.(웃음)

맞아요. 진짜로. 근데 그 노래 가사, 진짜 멋있지 않아요?(웃음)


(웃음) 그게 바로 힙합의 매력이에요. 하이브리드에 강하죠.

맞아요. 어디에든 섞이기 좋은 장르죠.


힙합이라는 장르 안에서 어느 정도 용인 되는 게 있잖아요. 표현 면에서도 다른 장르에 비해 자유롭고. 힙합 뮤지션으로서 가질 수 있는 스웩이나 애티튜드도 훨씬 자유롭고요. 물론, 다른 장르 뮤지션에 비해서.

저도 처음엔 그 스웩이 멋있어서 시작한 거지만 힙합이 정말 어느 장르에도 녹아들 수 있구나, 하는 건 시간이 지나고 작업하면서 새삼 느껴요. (책상 위에 비트를 치면서) 이러면서도 랩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이런 메리트만큼은 최고인 것 같아요.


‘힙합이 좋아서 음악을 하게 됐는데 지금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가끔 대중적 행보를 택한 힙합 뮤지션의 자기 합리화처럼 들릴 때도 있어요.

아이유 씨 피처링을 받아서 달한 사랑 노래를 힙합 풍으로 만들었다 쳐요. 그다음에 제가 김창완 아저씨랑 올드 록을 만들고, 랩을 해요. 그다음엔 전인권 아저씨랑 하고. 다음엔 하춘화 선배님과 트로트에 랩을 해요. 이런 건 괜찮아요. ‘나는 음악하는 사람이야, 다양한 거 할 줄 아는 사람이야’ 하면서 맨날 누구누구 피처링해서 비슷한 사랑 노래만 반복하는 건 문제예요. 저도 ‘All Day’ 냈잖아요. 타블로 형이 피처링을 했고요. 그리고 계속 제가 그런 방식으로 가면 화살 5천 개를 맞아도 할 말 없는 거죠. 계속해서 앞으로의 행보를 바꿔나가고, 자신이 정말 다양한 음악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죠.


‘시도’냐, ‘의도’냐의 차이인 건가?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돈’이에요. ‘병신’인 거예요. 아티스트로서는.


대중성으로 얻은 유명세나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사람을 해까닥 하게 만들기도 해요.

저도 해까닥 했었어요. <파급효과>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적게 벌면 한 달에 15만 원 벌고, 공연도 하고 좀 많이 벌면 90만 원 벌고 그랬어요. 그런데 6월에 앨범 나오고 9월부터 돈이 들어오는데 ‘밖에 비온다 주룩주룩’ 때문에 갑자기 제가 벌던 거에 몇 배가 들어오는 거예요. 와~ 나 돈 벌었어~ 평소에 옷에 관심 많았으니까. 갤러리아 가서 잘 알지도 못하는, 비싸 보이는 브랜드 가서 일시불로 결제하고. 해까닥 했죠. 그런 실수를 몇 번 했어요. 통장 잔고가 깎이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 그런데 내가 이거 사서 입지도 않을 거 여름인데 재킷을 왜 샀지? 내가 여기서 만족을 얻은 건가? 이 만족이 이어지나? 한 번 입고 아까워서 걸어두고, 평소엔 츄리닝만 입고 다니는데? 거기서 비슷한 맥락의 깨달음을 얻었죠. 아, 그냥 내가 멋있으면 되는구나.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내가 싸구려 옷을 사서 찢어 입든 나시 티를 만들어 입든, 내 존재 자체가 멋있으면 되는구나. ‘시도’는 결국 다 겪어 봐야 하는 단계인 거잖아요. 유혹은 정말 커요. 해까닥 하는 건 너무 쉽고, 해까닥 했다가 돌아오기는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았죠, 저는.


히트곡이 생기면 대중성의 감을 알잖아요. 몰라서 못하는 것과 알면서도 안 하는 건 차이가 있어요. 작년에 대외적 활동도 많이 하고 히트 트랙도 내봤으니 유혹이 있었을 수도, 반대였을 수도 있겠죠?

저는 그 감을 반대로 이용해요. 오히려 저는 의도적으로 피해요. 만들고 나서 지워요, 그냥.


대중적이지 않다는 기준은 뭔가요?

제가 처음 들어봤고, 제가 원하는, 지금 겪고 있는 감성이 그대로 나와 있는 거? 가사나 멜로디나 리듬, 모두 새로운 거?


낯설수록 좋은 거예요?

네. 바로 그거예요. 저도 처음엔 무명에 인지도도 없던 애였잖아요. <파급효과> 나오고 나서 사람들이 엄청 알아봐요. 처음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사인도 해주고 막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건 ‘사람’이 유명해지는 거잖아요. 제 ‘음악’이 유명해지는 게 아니라. 그게 인간으로서 살면서 되게 귀찮더라고요. 제가 작업실 바로 앞에 집 얻어 사는데 편한 옷차림으로 나와서 걸어가고 있는데 사진 찍어 달라고 하고… 싫더라고요. 그 마음이 싫은 게 아니라 불편한 거죠. ‘그 사건’ 터지고 나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거 아녜요. 제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면서도 그러면 진짜 한 대 때리고 싶은 기분이죠.


바로 다음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바로 하고 있어요. 일부러 할 걸 만들어야 해요.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시간이에요, 지금. 트랙은 25 트랙 정도 될 것 같고, 3년 전에 만들어 놨던 비트를 쓸 거예요. 정규 1집으로.


‘피지컬’로 낼 생각인가요?

그건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저는 되도록 피지컬을 안 내려고 하는데. 저에게 워낙 기념비적인 일이다 보니… 그런데 이건 음악 외적인 일이니 음악 다 만들고 나서 생각해 보려고요.


완성된 곡들에서 거르는 건가요?

추가는 될 수 있으면 안 하려고요. 3년 전 잡았던 컨셉이나 방향이 완벽하게 정해져 있거든요. 컨셉, 음악, 비트. 그런데 지금보다 더 좋아요. 더 막 나가요, 신기하게. 수정을 하면 했지, 새 트랙을 추가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때 생각했던 주제가 지금과 괴리감이 있지 않아요?

신기하게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요. 제목이 <나의 주식회사 금>인데요. 그때도 죽을 만큼 힘들 때였거든요. <나의 주식회사 금> 줄이면 ‘(주)금’이잖아요. ‘나의 죽음’까지의 일을 정리하는 가사를 쓰려고 했어요. 그땐 우울증 때문에 정말 죽고 싶어서 억지로 쓰려는 상황이어서 뭐가 잘 안 나왔는데, 지금은 정말 죽기 직전이라 가사들이 엄청 잘 나와요.


본인이 씬이나 장르, 카테고리에서 ‘힙합’으로 분류되는 건 상관없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뭐… 상관없어요.


그것 때문에 플러스되는 것도 있겠죠?

있을 수도 있겠죠?


리스너들이 씬에서 비교 대상을 찾을 때 노창의 앨범을 들을 테니까요. 그 부분만으로도 노창이 챙길 수 있는 부분이 있잖아요. 반대로 노창이 힙합 뮤지션으로 분류되면서 마이너스가 될 건 없을까요?

있겠죠. 일반적으로 ‘이런 게 힙합이지’ 하는 사람들이 ‘쟤 요즘 자주 보이던데’ 하면서 들었는데 ‘해방자유~~’ 이러고 있으니까. ‘이런 새끼는 뭐야?’ 하면서 욕을 하는 거겠죠.


스스로 정상(Normal)에서 빗겨 난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정상이 아니고 싶어요. ‘비정상인 새끼가 정상에 있다고 마 이게 힙합이다 시빨롬아 정상 swag’ 이런 말장난하는 거죠.


아, 그게 노창 자신을 얘기한 가사였어요?

네. 비정상(Unusual)인 새끼가 지금 정상에 있잖아요. Top급에 있잖아요.


저는 ‘정상(Top)’에 있으면 안 되는, 그 실력에 부합하지 않은 뮤지션이 거기에 있다는 걸 비꼬는 뜻이라고 생각했어요.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Top급이에요?

네. 프로듀서 중에선 Top급이에요. 자부해요.


자신을 Top이라 얘기할 성격이 아닌 줄 알았어요.

사실 저 엄청 소심하고 찌질한데요, 바뀌기 시작했어요.


‘힙플’ 인터뷰 영상에선 하도 수줍음이 많고 말 한마디도 잘 못 하기에….

그때랑 되게 많이 다르죠, 지금?


그래서 인터뷰 준비하면서 걱정 많이 했거든요.

지금은 ‘아티스트’ 노창을 꺼내 놔서 그래요.


그 영상에선 ‘인간’ 노창중이었고?

사실 그동안 아티스트란 자아를 한 번도 제대로 꺼내 놓은 적이 없었어요. 이제야 사람이, 내가 죽겠으니까 아티스트가 앞에 나서는 거지.


‘인간’ 노창이 죽겠으니 페르소나가 나오는 건가요?

네. 지금은 얘(천재노창)로 살고 있어요.


인간 노창중을 보호하기 위해서 아닌가. 그거, 보호본능 아니에요?

네. 맞아요. 뻔뻔해지고 나빠지고. 이거 진짜 보호본능이에요.





ARENA HOMME+, August 2015

이 콘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아레나 옴므 플러스와 조하나 에디터에게 있습니다.





Behind Story

‘이제 됐다’가 없는 예술에서 마디 단위로 하루를 끊어 살지 않는 아티스트, 그리고 그를 둘러싼 세계를 여과 없이 드러낼 수 있었던 인터뷰였다. ‘낯선 새로움’을 세상에 꺼내어 놓는 아티스트의 작업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안정하며, 또한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인터뷰이기도 했다. 단 두 페이지로 할당받은 잡지 지면으로 그의 세계를 담는 게 죄스러워 인터뷰 녹취 전문을 가다듬어 내 개인공간에 길고 길게 남겼다. 지금은 ‘천재노창’이 아닌 ‘그냥노창’으로, 여전히 은둔과 용기를 끊임없이 오가는 그가 마침내 자신의 섬에 닿길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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