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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Jul 03. 2024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 건강하고 길게 음악하는 삶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덤덤한 말투에 무표정한 얼굴, 에디터가 예상한 모습 그대로 인터뷰 자리에 나타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조브라웅(보컬, 기타)/임꼭병학(베이스)). 2007년 11월 발매된 첫 번째 앨범 <우리는 깨끗하다> 이후 4년 만에 정규 2집 <우정모텔>을 내고 라이브 무대에서 신명 나게 활동하다 이제 한숨 돌리고 있는 그들을 만났다. ‘옛날 남자와 여자가 스텔라를 탄다’는 뜻의 이름처럼 그들은 여전히, 세련되고 화려한 것들이 넘치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 섞이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멋들어지게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낸 음악도 그러했지만 뮤지션으로서의 그들의 삶 또한 그러했다.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천윤기






# 그들만의 그루브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진가는 어김없이 라이브무대에서 발휘된다. 레게와 덥, 사이키델릭 등 다양한 장르를 조합하거나 혹은 그것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버리는 그들의 매력은 기타와 베이스만으로 구현되는 그루브에 있다. 서양 음악의 익숙한 영향도 아니고, 우리 옛 가요의 억지스런 영향도 아니다. 공연장의 모든 관객들이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듯 말 그대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이유는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만의 그루브 때문일 것이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건강하고 긴 삶'



1집 활동 당시엔 무대에 둘만 올라가 기타와 베이스를 제외한 나머지 사운드를 컴퓨터나 머신으로 액션플레이를 하면서 구현했어요. 본인들 스스로 ‘퍼스널 컴퓨터 록’이라고 설명했고요. 지금처럼 무대에 드러머와 키보디스트가 함께 오르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어요?
조 ― 재작년 1집 활동 말쯤이었어요. 방송 출연을 해야 하는데 제작진 쪽에서 리얼 셋을 요구하더라고요. 친구들이랑 리얼 셋으로 편곡해서 갔는데 해보니 재밌더라고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온 거예요.


앨범 준비 전부터 실제 플레이어들과 서는 무대에 매력을 느꼈다면 2집 앨범 준비할 때 객원 멤버 영입을 고려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네요. 2집 앨범에서도 드럼비트를 컴퓨터로 직접 찍었고.
조 ― 라이브에서의 재미가 따로 있고, 레코딩에서 우리 둘이만 하는 것도 다른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둘이서만 하면 모든 걸 우리 스스로가 직접 컨트롤해야 하는데, 그게 힘들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재밌기도 해요. 사운드적으로도 리얼 드럼보다 그 리얼을 흉내 내 시퀀싱 한 것, 그 자체가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색깔이 될 수 있는 것 같고. 어떤 사람들은 앨범 들으면서 “이걸 리얼로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약간 어색한 그게 재밌는 거죠.


앨범에서 묻어나는 색깔이나 질감이 라이브에서 실제 플레이어들의 연주를 통해 느껴지는 질감과는 많이 틀리죠.
조 ― 그렇죠. 그게 또 라이브의 재미죠. 앨범은 앨범만의 질감대로 라이브는 라이브만의 질감대로.


2집 앨범 <우정모텔> 반응이 좋았는데, 본인들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조 ― 사실 우리 음악이 대중적이지 않잖아요. 시대적으로 히트 치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런데도 우리 음악을 듣고 좋아해 주는 분들을 볼 때 ‘아~ 이 사람들 진짜 멋있구나, 뭘 아는 사람들이구나’ 생각해요. (웃음) 요즘은 워낙 월드와이드하고 네트워킹이 잘 되어있는 세상이라 세계적인 트렌드를 동시대 사람들이 큰 시차 없이 동시에 경험하잖아요. 대세라는 이름으로 비슷하게 같이 움직이는 사람들 중에서도 자기 걸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창작자들에게도 그걸 소비하는 소비자들에게도 그런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꽤 의미 있는 일이죠.


2집 앨범을 통해 관객들과 소통이 잘 되는 것 같아요?
조 ― 그런 것 같아요. 우리가 무슨 콜드플레이(Coldplay) 같은 음악을 하는 것도 아닌데 좋아해 주는 걸 보면… 우리가 아직 배가 덜 고파서 그런 건지, 사실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게 있거든요. 그걸 알아주는 게 고맙죠.






# 그들만의 음악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에 등장하는 ‘스텔라’라는 자동차 이름을 아는 세대는 조브라웅과 임꼭병학처럼 삼십 대 초·중반을 지나고 있을 것이다. 참 애매한 세대다. 어린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만지며 자란 것도 아니요, 무선 네트워크 시대를 갑작스럽게 맞이한 건 20대가 되어서였다. 유선 집 전화와 공중전화를 지나 호출기와 PCS, 휴대폰을 한꺼번에 겪었다. 아날로그적인 향수를 어설프게 간직한 채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막연하게 품은 '옛날’ 정서가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음악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세련된 기술로 잘 다듬어진 음악들과 비교하자면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는 최대한 손을 덜 대려 한 것 같아요. 어딘가 빈 듯한 느낌을 억지로 채우려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대로 두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조 ― 2집 앨범에 들어간 전 곡의 보컬 녹음도 하루 만에 한 번씩 부른 거예요. 연주도 한 번씩 하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려고요. 어떤 작업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고치고 고치고 하는 거죠. 우리는 ‘최대한’의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 ‘최소한’으로 하는 게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레코딩 스타일이 본인들에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조 ― 물론 틀리지 않고 레코딩을 한 번에 끝내기 위해 사전에 엄청나게 연습을 했죠.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영화에서 편집이나 카메라 앵글 변형 없이 한 컷으로만 쭉 가는 롱 테이크(Long Take) 느낌처럼. 음악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호흡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앨범 안에 담으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원 테이크(One Take) 레코딩 방식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건가요?
임 ― 우리가 그때그때 느끼는 것도 있고, 시간이 지나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겠죠. 지금까지 해보면서 느낀 건 일단 이거예요. 이번에 녹음을 빨리 끝내면서 좋게 가졌던 기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건 최대한 가져가되 뭔가 더 좋은 느낌이 있으면 시도해 봐야죠. 다른 친구들이 함께 하게 되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변할 수도 있고.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음악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뭐라고 생각해요?
임 ― 이번 앨범은 ‘흥’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라이브를 하면서도 ‘흥’이 없으면 무대에 서는 재미가 덜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노력을 많이 했어요.


1집에는 그 ‘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임 ― 아무래도 무대에서 컴퓨터랑 연주를 했으니까요. 첫 앨범은 라이브를 생각하면서 만들지 않았죠. 2집 앨범은 장르적인 부분보다는 느릿하면서 신나는, ‘흥’에 신경을 썼어요.


빈틈없이 꽉 채워진 완벽한 느낌 없이 여유 있는 구조를 유지하는 게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음악의 질감일까요?
조 ― 네. 비우면 비울수록 곡이 보이는 거죠.


그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비우면 되레 휑한 느낌만 남는 음악도 있는데….
조 ― 의도적으로 비웠느냐가 문제죠. 아무리 꽉 채우려고 해도 빈 느낌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어요. 의도를 갖고 비우고, 그 의도가 음악을 통해 드러난다면 된 거죠.


비워내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오던가요?
조 ― 우린 엄청 오래 걸렸죠. 일단 공연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앨범은 4년 만에 나왔지만 그동안 쉼 없이 계속 공연을 해왔으니까. 그러면서 공부를 많이 했죠. 한때는 내가 ‘이런 느낌을 내고 싶다’ 했을 때 그런 요소들을 막 채워보기도 했어요. 근데 그게 더 안 되는 거예요. 오히려 더 윤곽이 없어지고 흐물흐물해지더라고요. 오히려 덜어내니까 윤곽이 더 선명해지고. ‘덜어내니까 허전한데? 그럼 뭐만 남겨야 될까?’ 이런 고민들을 했죠.






# 그들만의 삶


고향인 충주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 선후배로 만나 지금까지 함께 음악을 해오고 있는 두 멤버는 2005년과 2006년, 경희대 앞에서 ‘구남’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며 현재 그들의 레이블인 카바레 사운드에 데모를 보냈다. 조브라웅이 해외에 나가려 마음먹고 한국 생활 정리할 무렵에야 레이블에서 앨범을 내자는 연락이 왔다. 데모를 보낸 지 1년 만이었다. 그동안의 음악 생활을 정리하는 기념품을 남기자는 의미로 앨범 준비를 위해 주저앉고 보니 2년이 훌쩍 지났다. 앨범이 나와 공연을 하는데 자존심이 확 상했다. 학예회 발표 무대에 선 것처럼 어색한 자신들의 모습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무대에서 쌓은 경험으로 자신들의 모습에 스스로 만족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그렇게 그들은 점점 음악 하는 사람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가 되었다.


고등학교 스쿨 밴드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음악을 해오면서 드는 생각들이 조금씩 바뀔 것 같아요. 지금 음악에 대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요.
조 ― 뮤지션이 앨범을 내는 걸 데뷔라고 쳤을 때 우리는 데뷔 때부터 갖고 있던 의지가 있었어요. 사실 많은 음악들이 장르적으로 엮이고 관계되어 있잖아요. 물론 우리 역시 그런 부분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순 없겠죠. 음악을 하다 보면 의도적으로 어떤 루트를 따라가게 되는 게 보통이잖아요. 사실 저는 지역적으로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가 되게 외진 곳이라는 생각을 항상 하면서 자랐거든요. 서구의 것들을 듣고 보고 자라면서, 나는 정말 철저하게 메인스트림이라 불리는 곳에서 떨어져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왔어요. 우리가 ‘음악을 하자’ 했을 때 우리는 ‘그들과 관계가 없는 걸 해보자’ 했어요. 그래서 1집에 <우리는 깨끗하다>라는 타이틀을 쓴 거고, 그게 지금도 우리 음악의 핵심이에요. 우리는 하얀 애들, 까만 애들이 주도하는 메인 스트림과 다른 데에 있다는 걸 우선 인정하자. 찾아보면 우리의 베이스도 있다 사실은. 여기도 여기만의 음악이 분명 있다는 거죠. 할머니가 어렸을 때 날 재우면서 불러준 노래도 있고. 정서적으로, 필요하다면 실질적인 고증을 통해서라도 우리 뿌리를 찾아보자는 입장이에요. 그걸 바탕으로 우리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어요. 우리도 이제 더 이상 젊다고는 할 수 없지만 (웃음), 젊은 사람들이 그런 노력을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몇 년도 어떤 페스티벌 헤드라이너가 누구다, 뭐 이런 트렌드를 모르지는 않지만 우리만의 것에 대한 자존심이나 자부심, 자존감 같은 걸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변방에서 변방의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은 점점 더 견고해지나요?
조 ― 우린 변방에 있으니 우리 걸 더 선명하게 해야 메인스트림과 동시성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있는 거죠. MGMT가 한국에 왔어요. 근데 우리가 걔네들 거랑 비슷한 거 하고 있으면 그저 우리는 MGMT 변방의 애들인 거죠. 우리가 우리 걸 하고 있으면 MGMT가 한국에 와도, ‘한국엔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가 있어!’ 하는 동시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구가 요만한데, 동시대에 같이 살고 있다는 문화적 자존심을 가지려면 어렵더라도 스스로의 것을 자꾸 찾아야 한다는 판단이 있는 거고, 작업도 그렇게 해나가고 있는 거죠.


음악에 대한 이런 가치관이나 확신들은 사람들의 서포팅을 통해 더욱더 힘을 받는 거겠죠?
조 ― 그러니까 지금 제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죠. 물론 우리와 교감하는 집단의 사이즈가 크진 않지만, 그 사이즈를 키우는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요. 우리가 그동안 생각하고 의지하고 다짐해 왔던 것들을 놓지 않으면서 경계선을 잘 넘는 방법이요. 근데 쟁점은 이거예요. 집단의 경계선을 내가 벗어날 거냐, 아니면 집단의 경계선 자체를 더 키울 거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되 내가 커지고, 또 그런 걸 가치 있게 여기는 집단이 같이 커져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렇게 되는 게 풍성하고 탄탄한 문화 구조일 거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이런 입장을 갖는 뮤지션이나 이런 입장을 소비하는 집단이 더 커지길 바라죠.


한국 음악 씬 안에서도 인디 밴드 음악은 변방의 위치일까요?
조 ― 개인적으로 인디 씬에 대한 반감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300~400명 정도 관객 동원이 가능한 밴드들이 한 200여 팀 정도는 되어야 상황이 달라지겠죠. 작년만 돌아봐도 그렇잖아요. 한국의 갖가지 페스티벌 라인업이 계속 겹쳐요. 그게 문제죠. 공중파 TV에 편중된 시스템도 문제고요. 장사에 의지가 있는 포맷들이 좀 정리되어야겠죠.


긍정적인 희망을 갖고 있나요?
조 ― 의지가 있죠.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생각도 있지만. 정치적인 입장이 조금은 있어요. 음악을 하나의 시장에 비유하면 재래시장이 대기업 마트에 영향을 받아 무너지는 구도와 똑같이 지금 음악 시장도 그렇게 되고 있는 거거든요. 영화판도 마찬가지고요. 돈 있는 애들이 조그만 나라, 조그만 문화 안에서 장터를 다 죽이는 꼴인 거죠.


거대 자본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형마트에 밀리는 장터민의 입장이 곧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입장인가요?
조 ― 대형마트에서 파는 호박보다 더 신선한 호박을 내가 팔 수도 있어요. 근데 이 시장에서의 쟁점이 신선한 호박이 아니라, 가격, 혹은 편리성, 혹은 호박을 사면 가지를 덤으로 주는 것 때문이라면, 그래서 장터민들이 다 죽는다면? 장터민이 대형마트에 맞서 무언가를 획득하고, 뺏기지 말자는 게 아니에요. 그냥 다들 장터민이어야 된다는 거죠. 그게 가장 이상적인 거고.


장터민으로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는 계속해서 그 삶을 건강하고 길게 유지해야겠네요.
조 ― 그렇죠. 비즈니스적으로 ‘나는 이만큼만 벌면서, 만족하면서 살 거야’가 아니에요. 그 과정이 명료하고 선명하고 깔끔해야 하는데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대형마트에 입점을 해야지’ 하는 생각은 안 하겠다는 거예요.


음악 하는 자신들의 삶을 멀리 보고 있나요?
조 ― 우리는 사실 공연하는 사람의 입장에 가까워요. 공연이 너무 즐겁고, 또 그게 내 직업이에요. 레코딩은 공연을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소스들을 어느 지점에서 기록해 앨범으로 남기는 거고. 우리의 최종적인 입장은 구멍가게에서 공연을 하더라고 할배가 될 때까지 연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예요. 다만 쉼 없이요. 2000년에 활동하다 2020년에 나와서 복귀하고 그런 게 아니라 꾸준히 하는 게 꿈이에요.






F.OUND magazine, April 2012

이 콘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파운드 매거진과 조하나 에디터에게 있습니다.





Behind Story

2010년대, 국내외 인디 뮤지션들을 부지런히 만나 인터뷰했던 나에게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는 유난히 특별하다. 그 당시 나는 직접 곡을 쓰고 연주하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음악으로 세상에 드러내는 인디 뮤지션들의 예술에 매료되어 있었고, 동시에 그 가치를 알아주는 이가 없어 사그라져가는 빛과 열정을 소중히 품고 텅 빈 라이브 클럽을 전전하는 이들이 애달프고 안타까워 내가 무슨 인디 뮤지션의 수호자라도 되는 듯 일부러 더, 보란 듯이 매일같이 홍대 라이브 클럽 구석구석을 오가며 그들의 관객이 되고, 인터뷰어가 되고, 또 팬이 되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에 출연하는 성은이라도 입지 않고선 성공한 인디 밴드 다섯 손가락에도 들기 어려운 현실에서 K-팝으로만 과대 포장된 한국 음악계는 기형적으로 변해갔고, 나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만나 인터뷰했던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조웅이 했던 '대형마트'와 '장터민' 이야기는 인디 음악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에디터로서의 애티튜드와 마음가짐에 시원한 바람을 일으켰다. 사진을 봐도 알겠지만, 2010년대 초엔 어느 카페나 실내 흡연이 허용됐고, 담배 한 갑을 다 태우며 그들과 길고 긴 대화를 나눈 후 며칠이 지나 지인을 통해 "조웅이 지금까지 한 인터뷰 중 가장 좋았다"라고 했다는 말을 들은 나는 또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매번 다른 뮤지션들을 만나 해결되지 않을 한국의 인디 씬 문제와 시스템을 고민하다 자가당착에 빠져 무기력해져 있던 나는 앞으로 독자가 아닌, 뮤지션을 위한 인터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사석에서 가끔 조웅을 만나면 술잔을 기울이고 음악을 듣고 춤을 췄고, 우리는 많은 말을 하지 않고 그렇게 서로를 응원했다. 해외 뮤지션을 만나 인터뷰할 때면 "한국의 좋은 인디 뮤지션을 추천해 달라"는 말에 늘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로 자신 있게 답했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는 한국에만 있고, 한국인만 표현할 수 있는 '흥'과 '장단'과 '한'을 표현할 수 있는 밴드라고.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는 나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꾸준히 멋있게 음악을 하겠다"는 말을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위해 지금껏 지켜왔고, 얼마 전 정규 5집 <1969>를 발매하고 여전히 라이브 공연을 이어가며 장터민으로 건강하고 길게, 음악하는 중이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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