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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Jun 27. 2024

김사월 x 김해원|우리는 모두 섬이다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한 남녀가 바싹 마른 햇빛과 모래바람에 타는 목과 부르튼 입술로 마주쳤다. 이곳은 오아시스일까, 신기루일까. 노래 속 남녀의 목소리는 대화일까, 메아리일까. 무엇도 분명하지 않다. 두 개의 섬을 이은 다리는 화려하고 선명하지 않지만 깊고 짙은 여운을 남긴다.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JDZ Chung  


언젠가 알딸딸해진 술자리에서 “한국 포크에는 ‘엣지’가 없다”는 우스꽝스러운 주장을 펼친 적이 있었다. 이 ‘엣지’라는 표현을 대체할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여태 그런 음악을 만나본 적이 없었기에. 하지만 김사월 x 김해원의 EP 앨범 <비밀>을 듣고 알았다. 이 앨범은 충분히 그 설명이 된다는 걸. 이 앨범을 듣는 동안 마음은, 살얼음판이었다가 야속한 태양만 영원히 타고 있는 사막이었다가 아련한 불빛이 번지는 초여름 밤이었다가 햇살이 아릿한 꽃길이었다가 비릿하고 컴컴한 바다 깊숙한 어느 바닥이었다. <비밀>의 일곱 트랙 때문에 한동안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은 무엇일까. 남자와 여자, 사람과 사람, 뮤지션과 뮤지션, 영원히 절대로 어떻게든 섞일 수 없는 자신만의 외딴섬을 가진 두 사람이 각자의 결핍과 욕망을 갈구한다. 이들이 동시에 스며든 노래는 대화인 듯하면서도 그렇지 않다.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는 엇갈린 시선처럼, 포근한 소통보다 서늘한 어긋남이 돋보인다. 사랑하면서 미워하고,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내버려 두길 바라는 양가의 감정이 정제된 앨범 <비밀>은 그래서 아름답고 신비롭고, 또 거대하다.




김사월 x 김해원 '사막 part2'




각자 음악 생활을 이어왔는데 김사월 x 김해원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된 건가?

사월: (지금은 결국 그만뒀지만) 직장 생활을 하며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해원: 그때 나도 여러 가지를 병행하다 보니 결과물이 잘 안 나오는 것 같아 음악에만 최대한 집중하며 공연하던 시기였다. 그러다 이 친구(김사월)를 만난 거지. 준비 중이었던 솔로 앨범에 넣을 ‘사막 Part 2’란 노래를 함께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작업 이후, 우리 둘 다 만족감이 굉장히 컸다. 작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눠 보니 이 친구 역시 솔로 앨범 작업을 하고 있었고. 이후 서로 공연을 서포트해 주는 과정이 있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작업하는 곡 수가 늘었고 앨범으로 이어지게 됐다.


그 과정에 ‘레코드폐허’에서 1백 장 한정으로 판매한 싱글 ‘비밀’이 히트한 공도 크다.

해원: 그때쯤 외부적인 자극들이 느껴졌다. 둘이 앨범을 내긴 내야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시기에 대한 감은 없었다. 창작자들을 사실 기획자들에 비해 앨범 발매시기를 훨씬 더 여유롭게 예상하는 편이다. 사실 그게 실현될 거라는 생각이 잘 안 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립음악생산조합의 기획하는 친구가 우리에게 자극을 줬다. 물론 ‘레코드폐허’ 공연을 준비하면서도 결과물을 좀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사월: 짧은 시간에 최대한 공을 들여 만들었다. ‘레코드폐허’에서 싱글 ‘비밀’을 공개한 게 작년 여름이었고, 계절이 바뀐 가을에 EP <비밀>이 나왔으니.

해원: 싱글 ‘비밀’을 제작하는 과정에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앨범이 한 달 만에 다 팔렸다고 하니, 우리 손으로 만들고 그게 판매되고 그 가치가 돌아오는 과정이 피부에 와닿은 거다.




김사월 x 김해원 '비밀'




이전까지는 정신적, 혹은 물질적 피드백의 가치에 대해 체감하지 못했던 건가?

해원: 그랬다. 결과물을 던지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으니까. 공연을 꾸준히 이어가는 피드백은 받아봤지만 형태를 갖춘 음악의 결과물, 즉 앨범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피드백은 처음이었다. ‘레코드’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러니하게 첫 번째 개인 앨범을 준비하고 있던 두 싱어송라이터가 만나 작업한 결과물이 먼저 발표됐다.

해원: 김사월 x 김해원 앨범을 발표하면서 생각했다. 이걸 냄으로써 우리 각자의 원래 계획은 어느 정도 조정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고. 각자 그동안 가져온 소망을 생각했을 때는 쉽지 않은 큰 결심이었다.


둘 중에 하나라도 ‘나는 김사월 x 김해원 앨범보다 독집을 내는 게 먼저야’ 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인데.

해원: 사월 씨가 상대의 생각을 많이 수용하거나 일단 듣고 난 다음에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배려를 좀 해준 것 같다. 나도 그런 부분을 배려하려고 노력했고.

사월: 감정적으로 둘의 스타일이 비슷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겠다는 주의는 아닌 것 같다. 어떤 흐름을 거스르면서 자기 것만을 고집하는 편은 아니다. 그 시점에서 김사월 x 김해원이 우리에겐 굉장히 중요하면서 애착이 가는, 한번 잘 만들어보고 싶은 대상이었고 적당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이 많이 커졌다.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신인’과 ‘올해의 최우수 포크 음반’ 부문에서 2 관왕을 차지했다. 사람에겐 이상하게도 양가의 감정이 존재하잖나. 좋으면서 두려운 감정. 많은 걸 쏟아 만든 앨범이 사람들에게 외면당할 때의 상실감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좋은 평을 받고 수상할 때 느껴지는 두려움도 있을 거고.

해원: 물론. 많지.

사월: 요즘 우리가 그런 걸 많이 느끼는 것 같다.

해원: 매 단계가 우리에겐 극복해야 하는 과제 같은 거다. 앨범을 낸 이후 이어지는 다양한 형태와 종류의 공연들, 그 모든 게 우리에겐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즐겁고 좋아서만 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그 양가의 감정들이 들어섰다.

사월: 지금까지 속도가 좀 빨랐다. 가파른 길을 빠르게 계속해서 올라갔던 것 같다. ‘한국대중음악상’에 대해서도 우리가 좀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해원: 우리가 앨범을 내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계속해서 뭔가를 던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와닿는 피드백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었거든. 앨범이 나온 이후에는 우리가 던진 신호를 사람들이 캐치해서 다시 그게 우리에게 돌아오니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다.


한국의 포크 신 자체가 워낙 활발하지 않으니까. <원스>나 <비긴 어게인>, 혹은 <슈퍼스타K> 할 때나 좀 잠깐.(웃음)

해원: 그래서 팝적인 포크와 좀 더 폐쇄적인 느낌의 포크가 양분되는 현상이 심화됐다. 어쿠스틱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는 마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너무 나뉜 상황이 됐다.


홍대마저도 포크 뮤지션들이 공연할만한 좋은 공연장이 드물다.

해원: 맞다. 포크라는 장르를 보여줄 방법이나 ‘텔링’ 할 상황이 애매했다.

사월: 그래도 포크는 매력적인 장르다. 장르 특성상 악기와 목소리만으로 포맷이 완성되기 때문에 혼자 곡을 쓰고 노래하는데 통기타를 다루는 게 가장 편하기도 했지만, 이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해원: 나는 밴드 음악도 굉장히 좋아한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엔 곡의 편곡이나 장르적인 부분이 결국은 보컬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런 의미에서 내 형식을 포크라고 생각하는 거다. 나는 목소리를 가지고 노래하고 싶은 사람인데 일단 좋은 결과물을 만들려면 노래를 해야 하고 그 노래가 공연되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 목소리로 표현하되 관객, 혹은 리스너와의 거리에도 신경을 쓴다는 말인가?

해원: 그렇다. 결국 우리가 칼을 한 자루 골라야 하는데 이 칼이 어떤 형태여야 할까 고민하는 거다.


칼을 골랐으면 갈아야 한다.(웃음) 꾸준히 공연 활동을 이어왔기에 알겠지만 인디 신 활동은 엄청난 지구력과 근력이 필요하잖나.

사월: 그렇지. 게다가 우리는 각자 혼자서 공연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모든 걸 스스로 기획하고 구성하고 보여주고, 이후의 감당도 자신이 해야 한다. 그게 좀 외로운 일이었지.

해원: 맞다. 지친다기보다 외로운 일에 가깝지.


김사월 x 김해원의 만남이 각자 개인적인 음악 커리어에서도 하나의 지점이 되었겠다.

사월: 물론. 중요하다.

해원: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생긴 거고 어떤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도 서로에게 책임이 지워지기 때문에 모든 걸 혼자 겪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사월 씨가 이전에 발표한 ‘접속’을 들어보면 김사월 x 김해원의 <비밀>과는 다른 사람의 숨이 느껴질 정도다. 물론 근본적인 결은 같겠지만. 같은 사람이 옷과 화장을 완벽하게 바꿔 입은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이런 극단적인 변화의 이유는 무얼까 생각해 봤다. 여자가 혼자 노래할 때와, 누군가 바라봐주는 시선이 생기고 나서 노래할 때의 차이가 아닌가, 했다. 사람들이 이 앨범을 이야기할 때 ‘관능미’ 혹은 ‘섹시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여기서 오는 게 아닐까. <비밀> 안에서 사월 씨의 관능미 넘치는 캐릭터는 결국 해원 씨의 존재로부터 출발한다는 생각도 들고…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이다!

해원: 처음엔 그렇게까지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있었지. 이 친구가 뭔가를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데에 있어 내면에 있는 깊은 감정의 결이나 질감이 나의 그것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





ARENA HOMME+, April 2015

이 콘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아레나 옴므 플러스와 조하나 에디터에게 있습니다.





Behind Story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아이돌 음악의 밀도가 짙고 짙어지다 못해 끈적거릴 때 즈음, 홍대 구석진 작은 라이브 클럽에 일부러 찾아가지 않고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면 기타 하나에 목소리를 얹은 음악을 찾기 힘들었던 시절, 김사월 x 김해원의 등장은 그야말로 끝없는 사막을 걷다 만난 오아시스였다. 뮤지션의 손가락에 튕겨지는 기타 선율과 목소리만 울려 퍼지는 스무 명 남짓 들어가는 작은 공연장에서 나는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가 시간 여행을 하는 듯했다가 공간 이동을 하는 듯했다. '곡을 직접 쓰는' 뮤지션과의 인터뷰를 고집하는 이유였다. 작품으로 공간과 시간을 창조했다 어그러뜨리고 소멸하게도 만드는 그들의 시리도록 아름다운 음악은 사랑받아 마땅하다. 



김사월 x 김해원 '지옥으로 가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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